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1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가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심문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삼성 반도체 파업 시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정부에서도 분출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지급 관련 핵심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추가 대화마저 어렵다며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성과급 목표를 최우선에 둔 채 갈등 조정 과정이 담긴 녹음파일까지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정부의 중재 시도조차 신뢰할 수 없다는 노조의 '직진'에 반도체 파업 위기는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나선 막판 중재 시도가 통할지 주목되는 가운데, 정부 내에서조차 최악의 경우 파업을 제한하는 긴급조정 조치 필요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성과급 제도화 요구 수용돼야"…대화에 선 그은 노조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조가 예고한 파업이 6일 앞으로 다가온 15일 사측과 정부는 대화 테이블에 노조가 다시 한 번 앉을 것을 제안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반도체 사업 담당 DS부문 소속 조합원이 대다수인 초기업노조는 자신들의 핵심 요구에 사측이 긍정적으로 응하지 않을 경우 파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노조의 요구는 영업이익의 13~15%를 떼어내 상한 없이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걸 제도로 못 박자는 것이다. 반도체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앞서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상한 없이 지급하기로 고정한 만큼, 유사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요구이다,
앞서 사측은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기존 성과급 제도를 유지하되, 초호황을 맞은 DS부문은 기존 성과급 상한을 두지 않고 실적과 연계해 특별포상제를 실시하는 보다 유연한 제도화 방안을 제시했다.
노조의 성과급 고정화 요구가 그대로 관철되면 올해 성과급 재원은 40조 원이 넘고, DS부문 메모리사업부 직원의 경우 평균 6억 원의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사측이 이 핵심 요구를 긍정적으로 반영한 안을 들고 오지 않는 이상,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거듭 강조하며 공문으로 보내온 사측의 추가 대화 제안을 일축했다.
초기업노조의 최승호 위원장은 고용노동부 장관 소속 기관으로서 노사 분쟁을 조정하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추가 사후조정 요청에 대해서도 "중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노조는 나아가 중노위의 입장이 사측에 기울어져 있다는 취지로 비판하며, 조정 과정을 담은 녹음파일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관련 기사: 정부 중재 시도에 '녹취 공개'로 선 그은 삼전 노조…강경대응 일관)고용부 장관까지 평택 노조 사무실行…대화 불씨 살리기 '안간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이처럼 노조가 대화의 벽을 치자 삼성전자 반도체 사장단에 이어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노조 사무실을 처음 찾아 손을 내밀었지만 교섭 재개로 곧바로 연결되진 않았다. 삼성전자 전영현 DS부문장 겸 대표이사 부회장을 비롯한 해당 부문 핵심 임원들은 이날 오후 삼성 평택캠퍼스에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에 방문해 최승호 위원장과 만나 "열린 자세로 대화하겠다"며 교섭을 이어가자는 뜻을 밝혔다.
이에 최 위원장은 "핵심 요구에 대한 안건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경영진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가 전혀 없기에 성과급 투명화, 상한폐지, 제도화 안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장단에 이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노조 사무실에 방문해 최 위원장으로부터 교섭 상황 전반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최 위원장은 이 면담 결과 공지를 통해 "김 장관이 조합의 입장에 깊이 공감했으며, 노조의 뜻을 사측에 분명히 전달하겠다고 말했다"며 "노조는 교섭 재개를 위해 사측 대표교섭위원을 교체할 것, 사측의 실질적인 입장 변화가 선행될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직접 상황 중재에 나선 김 장관은 16일에는 삼성전자 경영진과도 만날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가 주목된다. 노사 간 접점이 마련될 경우 가까스로 막판 교섭 테이블이 마련될 수 있다.
파업 위기 최고조 달하자…정부 내에서도 '긴급조정 불가피론' 고개
삼성전자 DS부문 경영진이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와 만나 대화하는 모습. 사진 왼쪽 위부터 투쟁본부 정승원 국장, 이송이 부위원장, 최승호 위원장, 김재원 국장. 사진 오른쪽 위부터 삼성전자 박용인 사장, 한진만 사장, 전영현 부회장, 김용관 사장. 삼성전자 제공다만 최근 노사 갈등 조정 과정에서 노조는 중노위의 대안(검토안)도 수용할 수 없다며 결렬 선언을 했던 만큼, 파업 가능성과 맞물린 반도체 산업 타격 우려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생산 차질에 따른 손실액만 최소 수십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간접 손실까지 고려하면 그 규모는 더 불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실제 올해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694%로, 주요국 가운데 1위를 차지한 동력으로는 '반도체 수출 호조'가 꼽힌다. 최근에도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전체의 4분의 1 이상이다.
때문에 정부 측에서는 고용노동부의 막판 대화 노력과 동시에 '긴급조정 불가피론'도 공개 거론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을 결정하면, 즉시 파업 등 쟁의행위를 중지해야 하며 공표일로부터 30일이 경과할 때까지 재개할 수 없다. 중노위의 분쟁 조정도 즉각 개시된다.
헌법상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조치라는 논란도 불가피하지만 정부로서는 노사 갈등의 파장이 심각하다고 판단될 때 쓸 수 있는 사실상 '최후의 카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전날 SNS에 노사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파업이 발생한다면 긴급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처음 밝혔다. 김 장관은 "삼성전자는 국내 GDP 대비 매출 비중 12.5%, 고용 인원 12만 9천여명에 달하는 국가대표 기업이다. 우리 국민 열 명 중 한 명이 주주인 국민기업이기도 하다"며 "삼성전자의 실적과 주가는 460여만 주주를 비롯해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기금을 통해 국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해당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의 갈등 해소 노력마저 최종 불발될 경우 2005년 이후 21년 만에 해당 조치가 발동될 수 있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긴급조정 조치가 이뤄진 적은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 1993년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 2005년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 등 총 네 차례밖에 없다.
한편 삼성전자 사장단은 이날 노조 사무실 방문 전 "노사 문제로 국민들과 주주, 그리고 정부에 큰 부담과 심려를 끼쳤다"며 "성취가 커질수록 우리 사회가 삼성에 거는 기대가 더 엄격하고 더 커지는데,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깊이 고개 숙여 사과 드린다"고 대국민 사과문을 냈다. 이들은 "노조를 한 가족이자 운명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조건 없이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할 것"이라며 "노조도 국민들의 우려와 국가 경제를 생각해 조속히 대화에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