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여객기 안을 청소하는 노동자 5명이 지난해 7월 기내 투입 5분 만에 구토를 하며 쓰러져 인근 대학병원에 실려 갔다. 진단결과는 화학물질에 의한 손상 가능성이었다. 항공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편집자주]대한항공 여객기 안을 1급 발암물질이 든 화학물질로 청소해왔다는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문제제기로 벌였던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의 조사결과가 논란을 낳고 있다.
화학물질 제조사의 성분 공개와는 딴판으로 '이상없다'는 결과를 내놓은 데다 일부 발암물질에 대해서는 분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조사보다 50배 낮은 안전보건공단 결론… 1급 발암물질은 검사도 누락
美제조사가 밝힌 템프 내 에틸렌글리콜(0.1~1.5%)과 쿼츠(50~60%) 함량. 에틸렌글리콜은 1%가 넘는 경우 노동자들에게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해야한다. (사진=송영훈 기자)
안전보건공단은 지난해 6월 대한항공으로부터 기내 청소약품인 '템프(TEMP)'와 'CH2200'를 전달받아 분석했다.
기내 식탁과 의자의 얼룩을 지우는 데 쓰인 물질로, 1급 발암물질 등이 포함된 것들이다.(관련기사: 대한항공, 1급 발암물질로 기내 식탁·의자 청소했었다)
템프 제조사가 작성한 MSDS(물질 내 화학성분 등을 다룬 자료)를 보면, 템프의 주성분은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과 쿼츠(Quartz)다.
쿼츠는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유럽연합에서는 금지된 약품이다.
자동차 부동액으로 쓰이는 에틸렌글리콜은 여성의 반복유산과 불임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안전보건공단이 템프를 분석한 결과는, '에틸렌글리콜 0.022~0.03% 함유', '기타 측정 및 특검대상 유해인자 없음'이었다.
안전보건공단의 분석에서는 제조사가 밝힌 함량보다 '에틸렌글리콜'은 50배나 낮았고 발암물질인 '쿼츠'는 아예 빠졌다. (사진=송영훈 기자)
함유량 1% 이상이면 노동자들은 특수검진대상에 해당하는데, 에틸렌글리콜 함유가 소량이어서 문제도 없고, 특수검진 필요도 없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반면, 제조사가 공개한 템프의 에틸렌글리콜 함량은 '0.1~1.5%'다. 공단 분석과 50배의 차이가 난 것으로, 노동자들은 특수검진 대상에 해당한다.
템프 중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1급 발암물질인 쿼츠에 대한 분석은 아예 생략됐다.
◇안전보건공단 "쿼츠 표기없어 몰랐다"지만 제조사 버젓이 공개이에 안전보건공단 측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시 제조사로부터 받은 MSDS 자료에는 쿼츠가 '영업비밀'로 돼 있어 어떤 성분인지 몰랐다"며 "성분을 모르면 분석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템프 제품 표면에는 쿼츠가 성분으로 표기돼있다. 라벨만 읽었어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취재진이 확인한 MSDS자료에 쿼츠는 영업비밀이 아닌 공개된 성분이었다.
안전보건공단은 '영업비밀'로 표기돼 쿼츠를 알 수 없었다고 하지만 제품 표면에는 버젓이 쿼츠가 표기돼있다. (사진=송영훈 기자)
에틸렌글리콜 함유량이 50배 차이가 보인 것에 대해서도 안전보건공단은 "작업현장에서 가져온 시료를 분석하니 실제로 0.022~0.03% 정도로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조사의 홈페이지에도 '0.1~1.5%'로 설명돼있다. 공단 측은 "몰랐다"며 이에 대한 경위를 확인해보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안전보건공단은 제조사보다 함유량이 낮고 중요 성분마저 빼먹은 보고서를 만들었고 대한항공 측은 '템프'를 다시 써도 좋다는 취지의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한항공 측도 노동자들의 문제제기 등으로 인해 지난해 7월부터 사용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기내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특수검진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8월 청소노동자 5명은 평소처럼 기내 청소를 위해 화학약품이 뿌려진 항공기 안에 투입된 지 5분 만에 쓰려져 '화학물질에 의한 손상 가능성'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