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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교 실습생 사망은 '구조가 만든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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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취업지원관 제도 폐지…고교 실습생 노동환경 점검 못해

산업체 실습 현장에서 지게차를 몰고 있는 고 이민호(18) 군. (사진은 민호군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동영상 일부 모습)

 

제주에서 산업체 현장실습 사망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점검해야 할 취업지원관이 제주에 단 한명도 없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구조가 만든 사고'라는 지적이다.

지난 19일 오전 9시쯤 제주시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서귀포시내 모 특성화고등학교 학생 이민호(18)군이 숨졌다.

민호는 지난 9일 오후 1시 50분쯤 제주시 구좌읍 용암해수산업단지 내 음료 제조회사인 ㈜제이크리에이션에서 현장 실습을 하다 제품 적재기 벨트에 목이 끼어 중태에 빠졌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민호는 열흘 만에 끝내 숨을 거뒀다.

◇ 누가 18살 민호를 죽음으로 내 몰았나

3학년이던 민호는 지난 7월 말 해당 업체로 현장실습에 나갔다. 학교와 업체는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작성했다. 이 협약서에는 현장실습 기간과 장소, 방법, 사업주의 의무와 현장실습생의 권리, 의무와 수당 등이 자세히 명시돼 있다.

업체는 이와 별도로 민호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일반 직원과 동일하게 업무를 시켰다.

자동화 설비 시설 흐름을 파악해 오류를 발견하는 일부터 지게차로 제품을 옮기는 일도 민호가 도맡았다.

민호 학부모는 "민호가 기계가 오류가 많이 나 본인이 직접 수리를 하고 기계를 돌린다는 말을 했다. 추석 전에는 작업장에서 기계를 고치러 올라갔다 떨어져서 갈비뼈를 다쳐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연장근무도 잇따랐다.

당초 학교와 업체가 맺은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 따르면 민호는 1일 7시간 일하도록 돼있다. 사업주가 실습생의 동의를 얻은 경우에는 1일 1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

지난 19일 열린 민호 군의 장례식장 (사진=문준영 기자)

 

하지만 따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민호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일했고, 심지어 오후 8시 30분까지 12시간가량 연장 근무를 해온 날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산업체 현장 모니터링하는 '취업지원관' 제주에는 0명

서울시는 70여 개 전체 특성화고에 지난 6월부터 전담 취업지원관을 배치했다. 특성화고에 취업지원관을 1명씩 배치하고, 주중 매일 8시간 학교에 상주하며 취업 상담을 하고 현장실습 모니터링 등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이들은 현장 배치 전 학생들에게 부당한 처우를 당하지 않도록 노동상식과 인권 등을 교육한다. 특히 실습이 시작되는 9월부터는 현장실습표준협약서 작성 여부를 파악하고 위험업무 배치 여부 등을 확인한다.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고용노동부에 근로감독을 요청할 수 있는, 사실상 현장실습 학생들을 위한 감시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취업지원관이 제주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0~2015년도 까지 도내 특성화고등학교에 취업지원관이 1명씩 배치·운영됐지만 예산 문제로 사라졌다. 그 자리는 모두 진로진학 상담교사로 교체됐다.

제주에서 30년 넘게 특성화고에서 일해 온 김영보 교사는 "지난 2015년도에 특성화고등학교에 배치된 취업지원관을 도교육청이 없앴다. 2년 동안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고민 끝에 해고라는 카드를 쓴 거다. 학교들이 반대 의견을 냈지만 결국 모두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취업지원관은 학생 취업과 관련한 모든 일을 했다. 취업 상담과 면접, 현장 실습 교육을 비롯해 가장 중요한 산업체 현장 모니터링을 했다. 오전에는 학교에 나오지 않고 현장 실습을 나간 학생들을 면담했던 게 취업지원관들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일반 교사들이 할 수 없는 업무를, 한계가 있는 일들을 취업지원관들 맡아서 해줬지만, 이들이 사라지면서 현장 실습생들에 대한 모니터링이 제대로 안됐고 결국 이런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주도교육청 (사진=자료사진)

 

김 교사는 "학생들이 교사한테는 말하지 않아도 취업지원관들에게는 현장이 어떤지, 무슨 일이 힘든지 말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그런 기회가 전혀 없어졌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제주지부도 "제주도 교육청이 수년 전에 모든 특성화 학교에 있던 취업지원관 11명을 해고한 것이 이번 사고의 원인의 일부"라며 "10개 특성화고등학교에 있었던 취업지원관은 현장실습처를 수시로 방문해 부당노동행위는 없는지, 열악한 근무환경은 아닌지 등을 조사해 해결했다"고 밝혔다.

또 "지금은 취업담당교사가 실습처를 방문하기는 하지만 수업 때문에 수시로 방문을 할 수가 없고, 하루 종일 실습처를 방문하면서 문제점을 찾거나 해결할 염두를 못내는 실정"이라며 "교육청은 취업지원관 등 현장실습관련 전담인력 부재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억울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5년 교육공무직 노조는 "도교육청이 교육부 사업이라는 핑계로 취업지원관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지 않고 있다"며 방안 마련을 촉구했지만 모두 좌절됐다.

제주도교육청 학교 교육과 관계자는 "지자체에 취업지원관과 관련해 예산을 요청한 적 있지만 잘 되지 않았다”며 “현재 어떤 형태와 유형으로 운영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교육청 인사과 관계자는 "취업지원관은 매년 계약을 하는 방식이었다. 적을 두다 학교를 떠나면 그분이 가지고 있던 모든 노하우가 사라졌고, 그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교사에게 업무를 일정부분 맡도록 한 것이 지금의 진로진학 상담 교사"라고 설명했다.

도내 특성화 고등학교는 6곳, 특성화 학과가 있는 일반고 4곳을 합하면 모두 10곳이다.

현재 이곳 가운데 5개 학교에 진로진학 상담교사가 배치됐다. 현직 교사가 진로상담교사를 지원하면 연수를 이수하도록 해 학교 진로 상담업무를 보는 것이다. 이들의 업무는 진로, 진학, 상담, 취업 관련 등이다.

제주도교육청에는 2명의 취업담당관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취업처를 발굴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민호처럼 현장실습에 나간 학생들에 대한 모니터링은 각 학교 일반 교사가 담당하고 있다.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민호가 다녔던 서귀포시 특성화고 학교 교사도 사고 발생 전 업체 점검에 나갔다.

당시 점검에 나선 학교 관계자는 "노동인권과 안전, 계약 준수 여부 등을 포괄적으로 확인했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음료 제조 회사라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고, 공장장과 유리창으로 민호의 모습을 봤다. 1시간 정도 업체에 체류해 학생들도 면담했다"며 점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석문 교육감은 기획조정 회의를 통해 애도를 표하"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현장실습 안전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또 "안전 인증제 도입을 고민하고, 안전 인증이 된 실습체에서만 현장실습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도내 특성화고등학교에서 현장실습 중인 학생은 370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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