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지난 주말 약사 A(33.여)씨는 인터넷 쇼핑을 하다 깜짝 놀랐다. 타이레놀과 아스피린 등 진통제가 해외 직구로 불법 판매되고 있어서다. 그것도 국내 대형 오픈마켓인 11번가에서 말이다.
A씨는 "Q&A 게시판에 불법 의약품 판매를 지적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는데도 판매자가 유통기한을 묻는 질문에 답변하는 뻔뻔스러운 태도를 보고 놀랐다"면서 "무엇보다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11번가에서 이런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번달 초 직장인 B(44)씨는 딸의 어린이날 선물을 검색하다 네이버 스토어팜에서 인형을 구매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배송이 되지 않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인형은 'KC 인증' 문제로 판매 불가 상품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B씨는 "네이버에서 하는 스토어팜이기 때문에 믿고 샀지만 판매자는 연락을 받지도 않고 판매자를 중개한 네이버 측에는 연락할 방법도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오픈마켓 "우리는 온라인매매 '중개자'…법적으로 소비자 피해 책임 없어"대형 소셜커머스 업체들마저 오픈마켓으로 업종을 전환하며 오픈마켓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오픈마켓이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소비자 불편을 증대 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오픈마켓은 말 그대로 판매자와 이용자에게 모두 열려 있는 '온라인 장터'다. 이 오픈마켓 업체들은 개인과 소규모 판매 업체 등이 온라인 상에서 자유롭게 상품을 거래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한다.
11번가, G마켓, 인터파크, 네이버 스토어팜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대형 소셜커머스 업체인 쿠팡, 위메프 등도 오픈마켓을 선언했다. 이들은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자임을 강조하며, 자신들의 사이트에서 이뤄진 구매에 대한 책임을 미룬다.
11번가의 경우엔 홈페이지의 가장 아래 부분에 작은 글씨로 "SK플래닛(주)는 통신판매중개자로서 오픈마켓 11번가의 거래당사자가 아니며, 입점판매자가 등록한 상품정보 및 거래에 대해 SK플래닛(주)는 일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네이버 스토어팜도 "네이버(주)는 경제정보의 중개 또는 결제대금예치 서비스의 제공자일 뿐이며, 통신판매의 당사자가 아닙니다"라고 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고지는 11번가 등 오픈마켓에서 불법 의약품이 판매됐다고 해도 11번가를 처벌할 수 없는 근거가 되고, 소비자 피해 사례가 접수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명분으로 작용한다.
11번가는 이번 불법 의약품 판매에 대해서도 잘못을 인정했지만 이에 대한 사후적 조치만 취할 뿐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11번가 관계자는 "판매자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 의약품 등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데 실수로 잠시 동안 노출됐다"면서 "발견한 즉시 상품을 내렸고 이를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전량 회수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판매자에 대해서도 내부방침상, 1차 2차 경고를 하고 3차 적발 됐을 때가 되어서야 모든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아이디가 정지될 뿐이다.
네이버스토어팜을 관리하는 네이버 측 관계자 역시 "우리는 온라인 매매를 중개 해주는 '플랫폼'일 뿐, 상품에 대한 불량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서 "사후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품을 파는 판매자에 대해 신고가 들어오면 필터링하고 제재를 가하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해명했다.
◇ '법의 사각지대' 오픈마켓 이용한 소비자 피해 사례 급증
문제는 이처럼 판매에 대한 '책임'이 없는 오픈마켓에서 불법이 자행되고 있고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3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인터넷쇼핑의 소비자피해신고를 분석한 결과, 오픈마켓을 통한 소비자 피해신고 사례는 다른 소셜커머스나 종합쇼핑몰의 피해 신고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픈마켓을 포함한 온라인쇼핑 사이트들 중에는 11번가가 총 801건으로 가장 많은 피해신고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G마켓 771건, 옥션 613건 등으로 피해신고를 가장 많이 받은 상위 업체 모두 오픈마켓이었다.
이에 대해 약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오픈마켓에서 불법의약품 등 적절치 못한 물건을 판매할 수 도 있는데 판매 과정이나 조건 등을 통해 관리를 해야 한다"면서 "의약품 판매는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벌칙 강화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 피해에 대해 오픈마켓이 법적 책임이 없더라도 빠른 시정 권고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 통신판매중개업자에 대한 제재 법령이 없다는 것을 소비자도 명심하고 오픈마켓을 이용할 때는 판매자의 정보까지도 세세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소비자의 경각심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