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안경을 올리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을 앞두고 대선주자 지지율 선두자리를 놓고 다퉈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은근한' 견제에 들어갔다.
본격 레이스도 시작하지도 않은 반 전 총장을 집중 타격 할 경우 오히려 반 전 총장에 대한 관심만 부각시킬 수 있는 만큼 문 전 대표 측은 당분간 '문재인 대 반기문' 구도를 부각시킬 수 있는 맹공은 자제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대선레이스가 본격화될 경우 '비장의 카드'를 꺼낼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문재인 "潘風차단? 충청권 대선 승부처라 찾은 것"
문재인 전 대표는 반기문 전 총장의 귀국 전날인 11일, 반 전 총장의 지역기반인 충청을 찾았지만 반 전 총장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충북도청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반 전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력으로 UN사무총장이 되신 분"이라며 "반 전 총장이 정치를 아는 분이라면 우리와 함께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민주당 세력과 연대설에 대해서는 "친박·비박 혹은 제3 지대와 연대해 정치한다면 박근혜 정권의 연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일축했다.
이날 충북행이 '반풍(潘風)' 차단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에 대해서도 문 전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오늘이라는 데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하며 "원래부터 충청권은 대선의 승부를 좌우하는 곳이어서 중요성을 고려해 찾은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문 전 대표는 반 전 총장 귀국 당일인 12일에도 서울 종로의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현장 간담회를 갖고 최근 중국의 한류콘텐츠 규제로 인한 관계자들의 어려움을 듣고 대책을 논의하는 등 반 전 총장과는 무관한 행보를 진행할 예정이다.
◇위안부 피해자 묘소 참배…潘 "위안부 합의는 올바른 용단" 발언 상기용?직접 공격은 자제했지만 문재인 전 대표가 이날 위안부 피해자 묘소를 참배한 것을 두고는 반기문 전 총장의 역사인식을 상기시키기 위한 '한 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충남 천안시 '망향의 동산'을 찾아 위령탑을 참배하고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묘소를 참배한 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 속에서 이뤄진 위안부 합의는 돈 10억 엔만 받았을 뿐 공식적인 사죄조차 받지 못한 무효 합의"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새롭게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의 핵심은 일본이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하는 것"이라며 "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위안부 문제를 해결을 해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망향의 동산은 일제의 침략으로 고통 받다가 국외에서 숨진 해외동포, 특히 재일동포 영령들의 안식을 위해 만들어진 국립묘원이다. 30여위의 위안부 피해자들의 묘가 있긴 하지만 대선 행보를 하는 정치인들이 흔하게 방문하는 장소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문 전 대표가 이날 충청 지역의 위안부 피해자 묘역을 참배한 것은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인 지난해 1월 1일, 반 전 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전화를 하며 "박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렸다.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극찬한 것을 상기시키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문 전 대표는 그러나 반 전 총장에게 대형악재가 될 수 있는 동생과 조카의 미국에서 뇌물죄 피소는 직접 언급하지 않으며 '강 대 강 충돌'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文측 "반기문 공격계획 없어"…민주당도 "여권후보 만들어줄 일 있나"
문재인 전 대표 측은 당분간은 반기문 전 대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치부를 들추는 식의 공격은 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문 전 대표 측 관계자들은 "우리가 나서서 공격하지 않아도 자신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들어 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참배도 하지 않은 기회주의적인 행태나 위안부 합의를 호평한 권력지향적 태도를 보인 반 전 총장을 국민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복수의 민주당 지도부 인사 역시 "반 전 총장이 여권의 후보로 결정이 되면 당이 대응하면 되지 막 귀국한 반 전 총장을 난타하면서 그를 여권후보로 만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문 전 대표와 민주당이 반 전 총장에 대해 신중한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노이즈 마케팅'을 차단하겠다는 목적 외에도 반 전 총장 신상에 대한 공격을 집중할 경우 그를 외교통상부 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든 '참여정부의 인사검증문제'가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문 전 대표 측 핵심관계자는 다만 "반 전 총장에 대한 검증이 본격화되면 역풍 가능성이 있더라도 국민들의 제대로 된 판단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은 공개해야 하지 않겠냐"며 '비장의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