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자료사진
재벌 총수들이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함에 따라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민이 깊은 기업이 바로 현대차 그룹이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혐의 내용보다도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80세가 되는 정몽구 회장의 건강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이 지난 1988년 5공 청문회에 출석했을 때가 73세였고, 한보 정태수 회장이 1997년 한보 청문회에 나왔을 때가 77세였다.
정몽구 회장은 1938년생으로 올해 79세인만큼 국회 청문회에 나온 기업인 중 최고령 기업인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셈이다.
정 회장은 특히 지난 2009년 협심증과 관상동맥경화협착증 등으로 심장막에 물이 고여 있다는 진단이 내려져, 가슴을 열고 심장을 직접 수술하는 개심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도 매년 정밀 심장 검진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하루 종일 진행될 청문회의 중압감을 잘 견뎌낼지 우려하고 있다.
정 회장은 그렇지 않아도 평소 어눌한 말투로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데, 국정조사 분위기가 국회의원들의 막말에 호통 치기, 망신 주기로 흐를 경우 80세의 기업가가 느낄 모멸감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과 면담할 때도 다른 그룹 총수와 달리 김모 부회장을 배석시켜 보필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국정조사 당일인 6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국회 인근에 전문 의료진과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여의도 인근 대형병원과 연락체계를 갖추는 등 긴급 이송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국회 국정조사에 최선을 다해 응하겠지만, 워낙 고령인데다 건강도 좋지 않고, 소통도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실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유라씨의 동창 부친이 운영하는 케이디코퍼레이션이 2년간 10억원 어치 납품을 할 수 있게 지원해준 것과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광고 회사(플레이그라운드)에 광고를 제공한 두 사례 모두 외압에 의해 편의를 봐준 것일 뿐 그룹이 대가를 받은 것은 없으며, 검찰 공소장에도 현대차는 피해자로 적시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할 예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 그룹이 관련된 것은 두 가지 사례 이외에 더 나올 것이 없는 만큼 다른 기업과 달리 매우 ‘심플’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그룹별로 혐의 내용의 차별성을 두지 않고 일괄적으로 총수들을 상대로 증인 출석을 요구한 측면도 없지 않다”며 “트럼프 시대의 출범으로 미국 등 세계 자동차 업계에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데 국내 문제에 발이 묶여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나서야만 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수준이고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를 둘러싼 현실의 씁쓸한 한 장면이 아니겠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