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지난해 말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당시 1학년이던 남학생 A 군이 동급생 B 군한테 몇 차례 맞았다며 학폭위 개최를 요구한 것이다.
해당 학교의 교감이 위원장을, 일반 학부모 5명이 위원을 맡아 학폭위가 개최됐다. 외부 전문가 자격으로 법조인이나 기타 관련 전문가들도 참석할 수 있지만, SPO(학교전담경찰관) 1명만 배석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B 군은 A 군을 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학폭위는 혼란에 빠졌다.
A 군 측은 '거짓말'이라며 핏대를 세웠지만, 폭행 피해 사실을 증명하진 못했다.
학부모들은 고민에 빠졌다. 증거는 없고 주장은 상반된 상황에서 급기야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측 모두 '억울하다'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호소하기 시작했다.
갈팡질팡하던 학부모 위원들은 결국 '조치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피해 학생 측은 학폭위 지역위원회에 회부한 데 이어 결국 행정소송까지 진행했다.
◇ 서초동 학교에는 항상 전문가가 있다?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자료사진)
반면 법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서초동 소재의 학교는 상대적으로 학폭위의 전문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서초동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학부모 위원 중에는 판사나 변호사로 재직하는 사람이 많다"며 "외부 전문가가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초동 소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미 변호사는 "지역의 특성상 일반 학부모 위원이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학폭위와 같이 사안을 판단하고 변론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보니 대화가 잘 통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전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SPO도 "전문가가 많다고 항상 합의가 잘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지식이나 이해가 풍부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싸움이나 언쟁은 적은 편"이라며 "자녀가 재학 중인 학교의 학부모들은 감정이나 선입견에 의해 편향된 판단을 할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안타깝지만 일반 학부모만으로 구성된 학폭위는 반상회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 권위 '뚝' 학폭위 못믿는다…재심청구 해마다 증가관련 법상 학폭위는 위원장(교감)을 포함한 5인 이상 10인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학부모 위원 5~6명 이상을 소집해야만 개최될 수 있다. 반면 외부 전문가의 참석 필수가 아니다.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의 학폭위원 9만 7400여명 중 학부모는 56%, 교사는 28%인 반면 SPO는 11%, 법조인은 1%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소수의 외부 전문가마저 개인 일정 등의 이유로 불참하는 상황이어서 학폭위에 대한 현장에서의 불신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8월에는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해 학생의 징계 조치에 불만은 품은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가 교감에게 흉기를 들이댄 사건도 있었다.
결국 불신은 재심청구로 이어진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재심청구 현황은 2013년 764건, 2014년 901건, 2015년 979건으로 집계됐다.
◇ 학폭위가 '갈등의 마침표'를 찍기 위한 논의들서울시교육청 전수민 변호사는 "학교 차원에서 학폭위를 개최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며 "지방에 있는 학교는 외부 전문가를 등록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들도 학폭위 위원으로 참석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이라면서 "학교 이외의 다른 기관에서 학폭위를 담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화여대 교육학과 정제영 교수는 "교육지원청 수준에서 학폭위가 개최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보다 높은 기관에서 많은 전문가 인력을 모집해 학폭위의 전문성과 공정성 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학폭위를 전담하는 별도의 기구를 신설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면서 "학교가 학폭위 개최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