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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란파라치 대박?··카메라값으로 해외여행이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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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법자도 잡고 돈도 벌고" VS "3자는 불가능, 시간 버리는 후회거리"

지난달 30일 오후 란파라치 교육이 있었던 서울 서초구의 한 란파라치 학원 강의실. 김기용기자

 

“여러분들 제가 다 돈 벌게 해드리겠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김영란법 위반자를 적발해 포상금을 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예비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 8명이 서울 서초구의 한 란파라치 학원에 모였다.

이들 중 7명은 50대 이상의 장년층이었다.

한 수강생이 강의실 유리장 선반에 진열된 각양각색의 몰래카메라를 들여다보자 나머지 수강생들도 다가와 파파라치용 장비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수강생들은 명함지갑 깊숙이 숨어있는 초소형 카메라 렌즈를 찾느라 열심이었다.

학원 강사 문 모씨가 "오늘은 특별히 1시간 동안 김영란법 특강을 하겠다"며 강의를 시작하자 강의실 내부는 수강생들이 강의 자료를 넘기는 소리로 가득찼다.

신문에서 부고를 보고 장례식장을 찾아가 경조사비를 10만원 넘게 지급한 조문객을 찾아내는 방법부터, 경찰관이 민원인으로부터 3만원 넘는 식사를 제공받는 현장을 포착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사례가 소개됐다.

란파라치 학원 강의실에 있는 캐비닛. 안경과 시계, 자동차 열쇠 등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를 비롯해 다양한 증거확보용 기기가 진열돼 있다. 김기용기자

 

무엇보다 수강생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던 부분은 ‘최대 30억 보상금, 2억원 포상급 지급’을 소개하는 뉴스 동영상이었다.

강사 문씨가 수강생 A씨를 지목하며 “1억원 벌고 싶죠?”라고 묻자, A씨는 두 손을 모은 뒤 떨리는 목소리로 “정말 벌게 해 주세요”라고 답했다.

이에 문씨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면서 "란파라치 세계에서는 열심히 움직이려는 '노력'과 상대 앞에서 눈물도 흘릴 줄 아는 '연기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심코 김영란법이 궁금해 학원을 찾았다는 허모(68)씨도 "란파라치가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강사의 말에 월 200만~300만원 정도는 벌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공기업에서 일하다 퇴직했다는 허씨는 “공익을 위해 범법자를 잡으면서 돈도 벌 수 있다고 하니 한번 잘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씨는 최근 란파라치 학원들이 수강생들에게 카메라를 팔아 수익을 올린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카메라는 여러분이 어디에서 구입하든지 상관없다”면서 “하지만 실습교육을 위해서는 구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수강생들은 이번주부터 여러 현장에 나가 개별 실습교육에 나설 예정이다.

대박의 꿈을 안고 활동개시를 선언한 란파라치들은 서울 뿐만이 아니라 정부종힙청사가 있는 세종시로도 속속 집결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 21만명 대부분이 법 적용 대상인 세종시에서는 김영란법 시행 전부터 란파라치들이 배치돼 공무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 "란파라치 대박?’ 카메라 값도 못뽑아"

란파라치 학원에서 강의교재로 쓰인 '김영란법 공개특강' 교재. 김기용기자

 

“장담하건데, 학원에서 산 카메라 값도 뽑지 못해. 그 돈으로 해외여행이나 다녀와”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의 또다른 란파라치 학원 팀장 B씨는 '돈을 벌고 싶다'며 접근한 기자에게 두 손을 내저으며 극구 말렸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색까지 바랜 사무실에는 책상과 의자 세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다른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B씨는 “계속 누군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녹취와 영수증을 확보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김영란법 신고는 동석한 일행이나 할 수 있지 제3자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자칫 확실한 증거 없이 신고할 경우 오히려 신고자가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B씨는 파파라치 경력 10년차 베테랑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10년차 직원들 세 명이서 다방면으로 김영란법을 연구한 결과 결론은 ‘안 된다’였다”면서 오히려 기자에게 “방법이 있으면 수강료를 지불할 테니 알려 달라”고 농담을 던졌다.

몇몇 란파라치 학원에서 카메라 장사로 수강생을 등치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그는 “보통 학원에서 100만~180만원을 받고 파는 카메라는 중국산으로 원가가 20만 원에 불과하다”면서 “스마트폰과 앱만 잘 활용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B씨는 떠나는 기자에게 "란파라치는 시간 뺏기고 힘만 빠지는 후회거리"라고 말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 모니터에서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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