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한국은행이 지난 9일 기준금리를 또 다시 사상 최저 수준인 1.25%로 전격 인하했다. 한은이 설명한 인하 배경은 하반기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일각에서 금리인하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 왔지만 한은은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들어 1년간 동결을 견지해 왔다. 그런 한은이 인하압력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금리인하를 전격 결정한지 10여일이 지났다.
◇ 기준금리 인하의 양면성금리를 내리면 시중 금리도 낮아져 싼값에 돈을 빌릴 수 있다. 이 때문에 투자와 소비가 늘어난다. 증가한 유동성으로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올라 이른바 '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출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소비와 투자는 기대한 만큼 증가하지 않고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가격만 오를 경우 버블(거품)을 초래할 수 있다. 금리인하로 늘어난 유동성이 산업현장에는 가지 않고 이른바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재테크 시장에 몰리는 경우다. 이 현상이 심화되면 시중에 아무리 돈을 풀어도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함정'에 빠지게 된다.
기준금리 조정이 여러 경로를 통해 실물경제에 파급되는 데는 통상 6개월 정도의 시차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 경제주체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가 중요하다. 시장 참여자들이 금리 인하에 따른 효과를 예상하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소비와 투자를 늘리면 효과가 커지겠지만 그렇지 않고 자산시장의 머니게임에만 돈이 몰린다면 버블을 불러오는 것이다.
◇ 부동산 버블
지난 9일 금리인하 이후 부동산 시장은 금리인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감정원 조사결과 6주간 보합세를 유지해온 전국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13일 기준으로 전주보다 0.01% 오르며 상승 전환했다. 기준금리 인하의 영향으로 재건축 아파트값이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전세가격도 0.04% 상승했다.
그동안 경기부진 속에서도 초저금리의 영향으로 거품논쟁을 일으키며 상승폭을 키웠던 아파트 가격은 지난 2월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보합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정부의 통화정책 완화기조가 확인되자 다시 상승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문제는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의 지나친 상승은 결국 구매력과의 격차를 불러와 거품을 만들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버블은 가계대출과 연관돼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경우처럼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을 초래해 금융시스템 문제로 전이될 수 있다.
신규분양주택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집단대출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집단대출로 10조원이 집행됐다. 작년 일년치 8조7천원을 넘어섰다. 신규아파트 분양의 경우 경기부양효과가 큰 만큼 정부로서도 규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저금리로 전세가격이 상승하면 전세자금 대출도 따라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대출의 경우 올 들어 6대은행의 대출 잔액만 3조5천억원에 이른다.
◇ 가계부채이미 1천223조원을 훌쩍 넘긴 가계부채는 주택담보대출 증가 등으로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주택담보대출은 2월 정부의 대출규제로 증가폭이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예년의 2~3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추가 금리인하로 그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8.4%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3위, 신흥국 중에는 1위다.
전세값이 급등하면서 은행대출을 통해 집을 구입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가계부채의 증가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하가 전세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전세자금과 주택구입 대출을 늘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 은행수익성 악화지난 4월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는 신한, 하나 등 우리나라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했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로 은행 수익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수익의 대부분을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의 차이)에 의존하고 있는데 시중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마진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3년 말 기준 총 수신금리(전체 예금 잔액의 평균금리)는 2.19%, 총 대출금리(전체 대출잔액의 평균금리)는 4.72%로 예대마진은 2.53%였다. 1년 후인 2014년 12월 말에는 수신 1.92%, 대출 4.21%로 2.29%, 2015년 말에는 수신 1.39%, 대출 3.54%로 예대마진은 2.15%로 떨어졌다.
2013년부터 2년 새 예대마진이 0.38%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수익의 80~90%를 이자수익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은행으로서는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은행의 지속가능한 이익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구조적이익률'은 지난해 3분기 0.8%로 떨어져 통계를 작성한 지난 1999년 이후 사상 최저 수준이다. 구조적 이익률은 은행의 수익원인 이자이익, 수수료이익, 신탁이익을 합친 금액에서 운영경비를 뺀 뒤 총자산으로 나눈 것이다.
여기에 최근 기업 구조조정으로 부실채권 문제까지 가세하면서 금융안정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