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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는 '설국'이었다…호남의 심장 광주·전주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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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을 지나자 차창 밖은 서울·경기 등 수도권과 딴판이었다.

익산시부터는 온통 눈세상이었다. 전국 최대인 김제평야는 어디가 논인지, 밭인지, 마을인지, 도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눈으로 덮였다. 특히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전북 정읍시는 호남의 눈 고장답게 새하얀 눈이 집과 대지를 눈 속에 파묻어버렸다. 내장사와 백양사도 눈 속에 잠들어 있을 것 같다.

지난 19일 33중 추돌사고(당시 방송들은 60중 추돌사고로 보도했음)가 난 호남고속도로 정읍휴계소와 호남터널 부근은 사고의 악몽을 재연하지 않으려는 듯 재설작업 차량이 바쁘게 움직였다. 폭설에도 시커먼 검은색 아스팔트가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볼 때 밤새 제설작업이 진행됐을 것이다. 하얀 눈 세상과 바로 대비돼 고속도로임을 알게 하기에 충분했다. 고속버스들이 시속 80㎞이상으로 쌩쌩 달리는 모습이었다.

광주송정역

 

논산시에서부터 광주송정역까지 가는 1시간 동안 눈발은 가늘어질 줄 모르고 쉼 없이 계속됐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눈 구경을 제대로 시켜주려는 듯, 눈은 집집마다, 나뭇가지마다 소복이 쌓였다.

24일 이른 아침 호남선 KTX는 설국열차였다. 눈꽃 구경을 위한 강원도 태백을 여행하지 않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눈이 호남지방을 백색으로 물들였다. 설국열차는 정읍시와 호남터널을 지나자 눈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터널과 눈밭을 반복하며 내달렸다. 그야말로 설국이었다.

호남지방의 폭설로 말미암아 13분이나 지연해 도착한 광주송정역은 플랫폼까지 눈꽃이었다. 역 직원들이 넉가래와 빗자루를 들고 쌓인 눈을 선로로 밀어도 보고, 쓸어도 보지만 뒤돌아서면 쌓이곤 했다. 한 직원은 "이놈의 눈이 얼마나 올라고 이지랄거린디야…"라며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여전히 눈을 뿌려대고 있었다.

광주송정역을 벗어나 대합실 밖으로 나오자 쌓인 눈이 발목을 넘어 장딴지에 다다랐다. 얼추 25㎝쯤은 내렸을 것 같다. 23일(토) 오후 6시쯤부터 쉬지 않고 쏟아졌다고 한다. 싸라기 같은 눈이어서 망정이지 함박눈이었다면 50㎝쯤은 족히 쌓였을 것이다. 호남이 눈 속에 갇혀버렸을 텐데…하늘이 다행스럽게도 주일을 송두리째 삼켜버리진 않았다.

 

호남의 최대 재래시장인 광주 양동시장도 눈에 고립됐다. 주말이나 주일이면 재래시장을 찾는 시민들로 북적거렸을 텐데 찾는 이들이 없었다. 눈의 고요함과 스산함이 시장의 왁자지껄스러움을 쫒아낸 듯했다.

문제는 폭설이 호남의 1번지 광주시와 전주시를 마비시켰다. 눈이 얼지는 않았으나 제설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바람에 쌓인 눈이 도로 한 가운데에 그대로 방치되면서 차들이 헛바퀴를 돌리기 일쑤였다. 광주시에 제설차량이 36대 있다곤 하지만 승용차로 2시간을 돌아다녔어도 제설차량 1대를 보지 못했다. 광주시 고위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공무원들이 제설 작업에 동원된 경우는 볼 수조차 없었다. 광주송정역과 광주공항에서 서창교를 지나 광주도심으로 진입하는 광주의 관문 도로나 광주의 가장 중심도로인 금남로도 제설작업이 안 돼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윤장현 시장을 포함한 광주시 고위 공무원들이 안일하게 대처한 것인지, 제설장비를 미리 갖추지 못해 광주시 도로가 마비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광주시의 폭설 대책은 빵점에 가깝다. 서울시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시장은 책임을 져라는 질책을 받았을 것이다.

 

눈은 이날 오후 3시가 지나서도 멈추지 않고 간간히 내리고 있다. 기상청 예보대로라면 25일 오전까지 더 오다가 그칠 것이라고 한다. 적설량이 아마도 30㎝는 넘을 것이라고 한다.

호남지방을 설국으로 만든 눈의 영향 때문인지, 귀가 떨어져버릴 것 같은 세찬 북풍과 손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강추위는 아니다. 조금 추울 뿐 서울의 매서운 칼바람 한파는 없다.

25일 오전 눈이 그치고 나면 호남,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은 순백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것이다. 광주시와 나주시, 장성, 담양, 화순군의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무등산은 설악산과 태백산의 눈 자태 못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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