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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시민군 마지막 방송 주인공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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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재단, 당시 여대생 박영순 씨로 확인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도열한 공수부대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5·18민주화운동기간인 지난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직전 울려 퍼진 마지막 새벽방송의 주인공이 당시 여대생이던 박영순(55·여)씨로 확인됐다.

5·18기념재단은 5·18 당시 마지막 방송 인물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이 제기되자 지난 6월부터 11월까지 이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진실규명작업을 벌였다.

재단 측은 당시 방송활동 관계자 구술 자료와 현장 음성파일 분석, 군법회의재판기록, 진술조서 등을 조사, 분석했다.

지난 10월 3일에는 5·18 당시 방송활동에 참여한 시민들과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관계자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5·18기념재단은 이를 토대로 당시 방송활동이 전남도청 내 방송실을 이용해 도청 상황실에 접수된 내용이나 도청 앞 궐기대회 때 나온 홍보사항 등을 안내한 방송과 차량에 탑승해 확성기와 메가폰 등을 이용해 주로 헌혈이나 항쟁동참을 호소하는 내용의 가두방송이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계엄군 철수 후 수습대책위원회가 활동했던 1980년 5월 22일~26일까지 도청 내 방송은 주로 김선옥 씨 등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5월 27일 마지막 방송은 가두방송이 아닌 당시 전남도청 내 방송실 내부의 방송장비를 통해 새벽 2시쯤 이뤄져 전남도청 옥상에 있던 대형 스피커를 통해 광주시내에 울려 퍼졌다.

마지막 방송 문안은 당시 시민학생투쟁위원회 위원장 김종배 씨가 작성해 방송실에 있던 박영순에게 방송하도록 했고 박영순 씨는 새벽 2시쯤부터 3차례 이상 방송했다.

박 씨는 계엄군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과 계엄군보다 먼저 발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차분한 목소리로 전달했고 10여분 뒤 갑작스런 정전으로 방송은 중단됐다.

방송실에 있던 박 씨와 이흥철 씨, 여중생 등 3명은 진압에 나선 계엄군에 연행됐는데 박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6개월을 복역한 뒤 석방됐다.

가두방송은 5·18 초기인 5월 18일~21일까지는 전춘심 씨와 차명숙 씨 등이 주도했고 5월 21일~26일까지는 박영순 씨와 이경희 씨 등이 주도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다른 사람들도 가두방송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측은 "당시 5·18 방송반은 특별한 명칭이나 조직체계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고 방송반이라는 명칭은 계엄군이 수사 과정에서 편의상 임의적으로 편성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5·18기념재단은 5·18민주화운동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민들이 소장하고 있는 당시 사진과 영상, 음성 자료를 발굴하고 가두방송 차량을 운전한 운전사와 방송활동에 참여한 시민, 5·18사진 속 주인공 등을 찾는 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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