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없으면 유공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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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추자 어민항쟁 옥고 치른 아버지

추자 어민항쟁

 

추자지역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이 뒤늦게 알려지고 항일운동을 기리는 사업이 일부 이뤄졌으나 독립유공자 선정은 판결문이 없다는 이유로 이뤄지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어족이 풍부해 우리나라의 황금어장인 추자도는 일본인들이 오래전부터 탐내어 왔던 곳이다.

한일합방후 일제의 비호를 받는 어업조합은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추자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했다.

이 때문에 1926년 하추자 주민 700여명이 집단 봉기에 나서는 등 추자주민들이 반발을 계속됐다.

특히 1932년에는 ''''사와다 그물망사건''''이라고 불리는 추자어민들의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추자도에 정착한 일본인 澤田(사와다)은 삼치 유자망어업을 하면서 추자주민들의 주 어장터인 추자내수면 어장에 그물을 치고 마구잡이로 어족을 남획할 뿐 아니라 추자도민들의 멸치잡이나 삼치 채낚기 조업을 할 수 없도록 했다.

결국 상추자 영세어민들과 남녀노소 100여명이 벌 때 같이 일어나서 일본인 어선과 어망들을 육지로 인양하는 등 일본인들에게 맞섰다.

이 사건을 주도한 박병석씨(당시 34세)와 김봉수씨(당시 35세·작고)는 징역 7개월형을 받고 광주형무소에 옥고를 치렀으며 11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당시 일제가 언론을 통제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추자주민들의 구전에 의해 전해지다가 지난 77년 지역 유지인 고 추도엽씨가 정리한 ''''추자도명''''에 의해 기록되고 제주도는 1996년 일제에 항거한 어민항쟁으로 개념을 정리했다.

한일합방 후 어업조합, 추자 어민들 생존권 위협

그러나 당시 옥고를 치른 박병석·김봉수씨 등에 대한 독립유공자 인정은 어렵기만 하다.

지난 98·99년 추자중 교장으로 재직했던 현명력씨(68)는 박병석씨의 아들 박완규씨(68)를 도와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했으나 판결문을 첨부하라는 얘기만 들어야 했다.

또한 박방규 북군의원(58·추자면)은 지난해 판결문을 찾기 위해 정부기록보존소를 비롯, 부산·광주 지역 법원 등에 수소문했으나 판결문을 없었다.

현씨와 박 의원은 ''''일제에 항거한 기록이 있으며 당시 총독부 수형인명부에도 기록돼 있는데 백방으로 찾아도 찾지 못하는 판결문을 첨부하라는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병상에 있는 박완규씨는 ''''지난해에 당시 사건을 수록한 표석이 추자도에 설치돼 부친의 의로운 일이 알려지게 됐다''''며 ''''몸이 좋지 않아 자료를 추가로 찾거나 포상신청을 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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