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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삶의 터전이기 전에 자연철학의 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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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이 만난 사람] 전통 한옥호텔 '락고재' 안영환 대표

락고재 안영환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계동에 위치한 락고재에서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안대표는 "한옥의 진가는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닌 '백견이 불여일험', 즉 백번 보는것 보다 한번 경험해봐야 진가를 알수 있다"고 말한다. / 이명진 기자 mjlee@nocutnews.co.kr

 



"한옥의 아름다움은 '차경(借景)'에 있습니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가지려 하지 않고 잠시 풍경을 빌려서 즐긴다는 의미죠."

전통 한옥호텔 락고재를 운영하는 안영환(57) 대표는 지난 6일 "한옥의 장점은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에 있다"고 귀띔했다. 안 대표는 "지붕과 추녀를 구성하는 서까래의 길이와 모양새가 모두 다르고 대들보도 그러하다"면서 "최대한 있는 그래로의 모습을 추구하지만 집을 지을때는 다 법칙이 있고 철학이 있다"고 말한다.

락고재를 운영하기 전까지 안 대표는 서울서 식당을 했다. 지금도 명동에 한정식집 '진사댁', 목동·영등포·명동에 제주 고등어와 갈치 회 전문점 '제주미항(구 제주물항)', 신갈에 고기집 몽인각을 운영한다. 그 이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1982년 이후 10여년간 미국 회사(EDS)에서 통합관리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다. 한옥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가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함께 하자며 그를 불러들였다. 안 대표도 미국 생활엔 큰 미련이 없었다. 안정된 생활은 보장되었지만 꿈이나 희열을 느끼며 살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말이 좋아 부동산 개발이지 목 좋은 땅을 사들여 빌라 짓는 정도 수준이었다.

안 대표가 한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2년쯤이다. 마포에서 한옥을 허물고 빌라를 짓겠다는 사람을 만났는데 위치가 문제였다. 전혀 집을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냥 헐기엔 한옥이 너무 아까우니 차라리 한정식집을 차려보라고 조언한 것이 계기가 됐다. 마포 황부자가 살았다던 그 집은 보면 볼수록 정이 갔다. 그래서 안 대표가 집주인으로부터 아예 임대받아 직접 식당일을 시작했다.

유교 가풍이 엄격한 집안의 맏아들이 음식점을 한다니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끈질긴 설득에 아버지는 결국 한번 해보라고 허락했다. 조상 3대가 성균관 진사를 한데서 착안해 '진사댁'이라는 가게 이름도 지어주었다. 진사댁이 잘되자 제주에서 식당을 하던 사촌동생을 꾀어 '제주물항'이라는 음식점을 새로 냈다. 매일 비행기로 고등어·갈치를 공수해 싱싱한 생선 회를 내놓으니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안 대표는 "먹는 것과 자는 것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인데, 그런 면에서 식당과 호텔은 상호 보완적인 부분이 많다"면서 "한정식을 하지 않았더라면 전통호텔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옥의 진가는 백문이 불여일견이 아닌 '백견이 불여일험', 즉 백번 보는것 보다 한번 경험해봐야 진가를 알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옥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에서 볼 때 진정한 멋이 우러난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1995년부터 안동 하회마을 담연재와 병산서원, 경주 독락당 등의 전통한옥에서 숙박과 함께 풍류를 즐기는 양반문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주 고객층은 미국에서 근무하던 당시 직장동료나 친구 등 주변 지인들이었다.

"숙박과 함께 풍류를 맛보는 프로그램이었어요. 달밤 병산서원 만대루에 앉아 소반 술상을 앞에 두고 대금 연주를 듣게 했습니다. 은은한 달빛을 타고 흐르는 대금 소리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파란눈의 아가씨를 보고 '바로 이거다' 확신을 했지요."

안 대표는 "당시 한옥호텔이 없던 터라 지방의 고택을 임대해 외국인들을 재웠는데 화장실 문제 등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게다가 투어를 한번 할 때마다 이불과 식기류를 따로 준비해 선발대가 먼저 지방으로 내려가 모든 세팅을 새로해야 했기 때문에 거의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거점공간이 절실했다. 그때 마침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재동초등학교 후문에 위치한 '옛 진단학회'가 쓰던 낡은 한옥이 곧 헐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그날로 주인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업자에게 팔려 소유권이 넘어가 버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일. 업자를 찾아가 며칠을 설득한 끝에 한옥을 사들였다.

전통 한옥호텔 락고재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비몽'(2008년), MBC TV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SBS TV 드라마 '쩐의 전쟁'(2007년) 등에 단골로 등장했다. / 이명진 기자 mjlee@nocutnews.co.kr

 



안 대표는 "마포 고택이 헐리는 것이 아까워 차라리 그곳에 한정식집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한옥에 깊이 빠지게 된 계기였다면, 락고재를 구입하게된 배경은 한옥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자는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역사적 의미가 담긴 건축물이라 원형을 살리고 싶어 해체복원에만 2년여의 시간을 할애했다. 썩은 기둥은 잘라내고 보완하는 동발잇기 방식으로 진행했다. 워낙 낡아 80%는 새 건축자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인간문화재 정영진 대목장이 낡은 고가의 골격을 유지하는 선에서 전통 한옥의 멋을 살려 냈다. 쓸 수 없는 기와도 버리지 않고 담을 쌓는 데 활용했다. 여기에 정자와 연못, 장독대와 굴뚝, 소나무와 대나무 조경을 보완한 것이 '옛것을 즐기는 집'이라는 뜻의 '락고재(樂古齋)'다. 전통 한옥의 원형을 살리면서 화장실 등 호텔의 편리함도 갖췄다. 이외에도 한정식집, 김치·한복 체험 공간 등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락고재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비몽'(2008년), MBC TV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SBS TV 드라마 '쩐의 전쟁'(2007년) 등에 단골로 등장했다. 락고재 대부분의 고객은 외국인이다. 그간 80% 이상을 차지하던 일본인 손님은 50~60% 정도로 비중이 줄었지만 대신 싱가포르, 홍콩 등 중국계 외국인 손님이 늘어 30% 정도를 차지한다. 안 대표가 누마루나 온돌처럼 한국적인 부분에 집중하면서도 '편백 월풀욕조'처럼 새로운 요소를 신경 쓰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안 대표는 "한옥 숙박은 곧 한국의 이미지를 파는 것이잖아요. 가장 좋은 것을 대접해 비싸더라도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락고재는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는 것은 기본이고, 아담한 편백나무 욕조에 고급 한정식으로 아침과 저녁 식사가 나오고 예쁘장한 찜질방에서 진짜 군불에 몸을 지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문객들이 원하면 가야금 병창과 판소리도 들을 수 있는 등 가격은 특급호텔 수준이지만 프로그램은 그 이상"이라고 자부했다.

락고재는 눈보다 귀가 먼저 느낀다. '삐걱'이는 나무 대문 소리. 살짝 발을 들여놓으면 어디선가 새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그리고 잔잔히 흐르는 전통 음악. 그다음은 눈이다. 전통기와 담장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단아한 정자. 자그마한 연못 옆에는 장독대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나같이 곡선의 흐름이다.

현재 안 대표는 4년전 개교한 안동 한옥학교 학생들과 함께 하회마을에 한옥호텔를 짓고 있다. 기와집 10동, 초가집 10동 등 300칸으로 이뤄진 '한옥 호텔'은 2017년 봄 완공예정이다. 한옥호텔은 20평 규모의 독채에 좌식이 아닌 입식거실과 군불을 때 뜨끈뜨끈한 구들장 시설도 갖춘다. 누마루는 목욕탕 겸 찜질방으로 바뀐다. 한옥에 리조트 개념을 도입한 셈이다.

"한옥을 짓거나 살려고 해도 가격 때문에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워낙 변수가 많은데다가 부자재, 인건비를 더하면 거의 양옥의 두 배인 평당 1300만원이나 훌쩍 넘거가니 말입니다. 한옥학교가 자리를 잡으면서 한옥 부자재도 모듈화를 해서 가격을 평당 800만원으로 낮췄습니다."

안 대표의 더 큰 꿈은 한옥을 저렴하게 지을 수 있게 만들어 저변을 확대하는 것. 학생들에게는 자재를 공급해주고 학생들의 작품을 한옥호텔이나 한옥을 지으려는 사람들과 연결시켜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한옥과 호텔이라는 이질적인 접목에 대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한옥이다. 정형화된 틀에서 문화재를 제외한 현대 한옥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건축주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지금 한옥도 고려시대, 조선시대 한옥과는 다른 것처럼 앞으로의 한옥도 시대에 맞춰 조금씩 조금씩 그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다만, 한옥의 전통과 본질만은 지켜야 된다"고 말한다.

그는 눈은 어느새 세계로 향해 있다. "아시아권은 서로 유사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어 단지 문화적인 것으로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얼마나 쾌적하고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에요. 한옥에서 편백나무월풀욕조에 몸을 담글 수 있다면 아마도 한옥에 대한 호감이 더욱 커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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