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부실인사가 아무런 원칙 없이, 전문 분야와 상관없는 곳에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관행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2012년 11월)
"공기업 공기관 같은 곳에서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국민들께도 큰 부담이 되는 거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생각 한다"(2012년 12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도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2013년 1월)
그러나 집권 2년차를 맞이한 지금의 현실은 대통령의 이 같은 약속을 무색게 하고 있다.
한국가스기술공사만 놓고 봐도 정부 역량평가서 탈락한 인사를 낙하산으로 앉히려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
지난해 9월 임기 만료로 공석인 경영지원본부장 자리에 모 사단법인 정책연구실장이던 이 모 씨를 사실상 내정했다.
이 실장은 국회 보좌관, 원내총무 비서실장, 건설교통부장관 보좌관 등을 역임한 정치계 인사다.
이 씨는 지난 1월 산업통상자원부 역량평가에서 탈락했지만 공사는 이 씨에 대한 재평가를 요청할 예정이다.
가스기술공사 관계자는 "이 실장이 본부장 자리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선임했고, 역량평가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3번까지는 재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실장이 본부장 자리를 꿰차면 이 회사의 경영진은 100% 낙하산으로 구성된다.
한국가스기술공사 노조 현지형 지부장은 "강원도 행정부지사 출신의 사장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북도당 사무처장 출신의 감사, 지식경제부 과장 출신의 기술사업본부장 등 경영진 전원이 낙하산 인사로 구성된 상태에서 관련 분야 경험이 전무한 이 실장을 경영본부장으로 선임하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가스공사 뿐 아니다. 부채가 많은 12개 공공기관의 2008년 이후 낙하산 실태를 파악해보니 12명 중 11명이 낙하산이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5명이 새로 낙하산으로 채워졌다.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에 착수한 지난해 11월 이후 공공기관들은 기관장과 감사 40명을 새로 임명했는데, 이 중 15명(37.5%)이 여당인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이었다.
한국도로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투자공사(이상 사장), 한국마사회(회장), 예금보험공사 한국전력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이상 감사) 등의 요직에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 공기업 내부에 야당 없어..이사회 원안 가결 96%
기관장은 물론 야당 역할을 하라며 선임한 감사와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이사까지도 낙하산으로 채워지다 보니 감시도 견제도 없는 상황이다.
최근 3년 동안 산업통상자원부의 41개 산하기관 이사회 상정안건 2,657건 중 95.7%가 원안 가결된 사실도 이 같은 공공기관의 파행적인 운영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부 기관들은 멀쩡한 회의실을 놔두고 해외 관광지나 특급호텔에서 이사회를 연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전하진 의원은 "공기업들의 방만 경영과 공기업 부채가 이 지경까지 온데는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들의 책임도 크다며 "이사회가 경영 감시자로 제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