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계비 폐지, 개악(改惡)인가 개선(改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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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빈곤 복지③] 맞춤형 개별급여 전환의 빛과 그림자

무상 시리즈 등 보편적 복지가 확대되고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빈곤층 복지는 상대적으로 정책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복지 누수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현장에서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복지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혹독한 심사 기준에 갑자기 생계 지원이 끊겨 사망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CBS는 연속기획으로 위기에 처한 빈곤 복지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내년 10월부터 빈곤층 복지의 대대적인 구조 개편이 이뤄진다. 바로 '맞춤형 개별급여'로의 전환이다. 지난 2000년 도입됐던 최저생계비 제도는 1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현재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면 생계, 주거, 의료, 교육 등 다양한 급여를 최저생계비 명목으로 한꺼번에 지급받는다. 최저생계비는 정부 산하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매년 계측해 발표된다.

수급자로 선정되면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탈락되거나 기준이 미달되면 모든 혜택이 사라진다. 차상위계층은 복지 사각지대에 남게 된다.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의 모순이다.

개별급여는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생계, 주거, 의료, 교육을 쪼개 따로 심사하는 개념이다. 또, 절대적 수치에 미달하면 탈락하는 구조가 아니라 중위소득 30~50%를 기준으로 삼는 상대적 빈곤 방식이 도입된다.

이같은 맞춤형 개별급여로의 전환은 십여 년 전부터 시민단체나 학계 쪽에서 꾸준히 논의됐던 과제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비롯한 주요 대선 주자들이 공약했으며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그런데 뚜껑을 열자 정작 찬성해야 할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일제히 우려의 시선을 던진다. 빈곤단체에서는 개악(改惡)이라며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개별급여로의 전환은 빈곤 복지의 획기적인 도약일까, 개악일까?

◈ 정부는 대대적 홍보, 시민단체 반대 일성, 왜?

보건복지부가 10일 사회보장위원회에서 발표한 개편안을 보면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등 급여별 특성에 따라 선정기준이 계단식으로 나뉜다.

생계급여는 중위소득의 30% 수준에서,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3%, 교육급여는 50% 수준에서 결정된다.

현재 최저생계비가 중위소득의 28%를 커버하기 때문에 30~50%로 늘어나면 대상과 지원액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는 개별급여로 전환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40만명(83만 가구)에서 180만명(110만 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했던가. 시민단체에서는 정부안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위험요소가 많다고 지적한다.

◈ 생계급여 보장성 벌써 후퇴 조짐, 현장 인력 부족해 실현 의구심

우선, 가장 비중이 큰 생계급여의 경우 벌써부터 대폭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정부 발표 때만 해도 "중위소득 30% 수준 보장"을 명시했지만 불과 4개월만에 뉘앙스가 바뀌었다.

지난 10일 사회보장위원회에서 통과된 최종안에는 "경제 상황 및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2017년까지 중위소득 30% 수준 조정 검토"라고 돼 있다.

현재 최저생계비(중위소득 28%)도 보장성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4년 뒤에서야 중위소득 30% 수준에 도달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후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은정 참여연대 사회복지팀 간사는 "정권 말에서야 30%를 보장한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사실상 급여수준이 삭감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주거급여의 경우 산정 방식이 한층 복잡해졌다.

국토부는 서울, 경기·인천, 광역시, 기타 등 4등급으로 나눠 가구별로 임대료 지원액을 일괄 적용한다. 지원액은 실비를 고려하지 않고 월 10만원~34만원으로 못박았다. 실제 부동산 시장을 고려했을 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집이 있는 경우는 '유지수선비'를 설정해 주택개량 및 현금지원을 병행한다고 했지만 그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

담당 부처가 쪼개지면서 업무가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도 의구심이 일고있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복지부에서, 주거급여는 국토부에서, 교육급여는 교육부에서 나눠 담당하게 돼 행정 집행 과정에서 혼돈이 우려된다.

현재의 열악한 행정 인력으로 제도 운영이 가능할지는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복지 공무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심사 기준이 다원화되면 업무가 배로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올해 1500명을 신규채용하고 1200여명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은정 간사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를 관리하는데도 복지 공무원들이 과로로 자살하는 등 인력 부족 상황이 심각한데, 생계 주거 의료 교육을 따로 집행하려면 엄청난 업무가 추가된다"면서 "단순히 사통망(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 의지하는 기계적인 심사가 더 극심해질 것이다"고 우려했다.

◈ 재정 확보가 최대 관건, 기재부 예산 삭감 시도에 복지부 진땀

근본적인 문제는 재원이다. 선의로 출발한 제도가 '악마의 디테일'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재원 확보가 절실하다.

현재 내년도 관련 예산을 두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가 치열한 협상을 벌이고 있어 언제든지 제도 방향이 뒤바뀔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생계급여의 경우 내년 10월부터 중위소득 30% 수준으로 보장하기위해 관련 예산을 편성, 요구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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