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저자 인터뷰…''''젊은이들, 왜 침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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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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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에셀 파리 현지 인터뷰

지난해 10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후 200만부가 판매되고, 한국을 비롯해 이탈리아·미국·일본·브라질 등 세계 21개국으로 번역 출간된 <분노하라>(Indignez vous!·앵디녜 부)의 저자 스테판 에셀(94). 그를 한국 언론 중에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현지에서 만났다.

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14구 앙투안 샹탱 거리. 에셀은 고풍스러운 아파트 문을 직접 열고 나와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반겼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그의 얼굴엔 세파가 할퀴고 갔을 주름과, 노인만이 갖는 인자로운 미소로 가득했다. 책과 그림이 빼곡한 그의 서재는 청아한 새 소리와 창을 통해 흘러드는 행인들의 목소리로 찰랑거렸다. 초여름의 따사로운 햇볕이 흘러드는 그곳, 에셀은 ''''여기서 <분노하라>를 썼다''''고 했다. 경향신문 1면(6월6일자)에 난 자신의 기사를 보여주자 ''''오, 신기하네요''''하며 수줍어했다. 인터뷰를 시작할 무렵 프랑스 인권자문위원회에서 일하는 지인이 방문했다. 에셀은 ''''한국에서 취재진이 와 있고, 조금 있다가 튀니지행 비행기를 타야 하니 다시 연락을 하자''''면서 그와의 약속을 미뤘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ㄴㄴ

 

- 저희가 전화로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요청할 때, 정말 많이 바쁘신 듯 보였습니다. 스케줄이 꽉 차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토록 열정적으로 일을 하며 사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우선 제 책에 대해 언급해야 할 듯합니다. 이 소책자는 짧은 내용을 담고 있고, 저렴한 가격(프랑스 현지 가격 3유로)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저는 예상하지 못했던 이 책의 흥행에 크게 놀랐습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21개 국가에 이 책이 출간되었는데, 현지 출판사의 초청으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를 방문하기도 했죠. 또한 프랑스 내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사고를 고무시키는 이러한 종류의 책이 출판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죠. 그래서 책의 독자들이 저를 만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그곳이 어디라도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분노하라>가 통제가 강한 중국에서까지 출판된다고 합니다. 이 책이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강렬한 제목과 저렴한 가격에 힘입은 바 클 겁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다양한 고뇌 문제도 있겠네요. ''''미래,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고뇌''''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고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질문과 선택에 있어서 생각하고 또 고민하겠지요. 중요한 건 이런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안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따라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변화를 꿈꾸기도 합니다. 아마 미래에는 오늘날과는 다른 좀 더 진보된 민주주의와 함께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꿈꿉니까? 바로 우리가 참여하고 살아야 할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 작은 책이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고령에도 불구하고 ''''분노''''하고 ''''참여''''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은 마치 유언장처럼 작성되었지만, 사실 저는 여전히 참여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전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이러한 힘은 제가 살아온 삶으로부터 나옵니다. 60년 전에는 전쟁을 경험했고,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가 거느렸던 다양한 식민지의 해방을 위해 제 삶을 바쳤습니다. 또한 유엔에서도 많은 일을 했었죠. 이러한 삶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사회가 가진 문제에 참여할 수 있을지 많은 번민과 고민, 고뇌를 반복해왔습니다. 한국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분노할 수 있는 문제가 있겠지요. 어떻게 사회문제에 참여할 수 있을지를 탐구하고 고민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 제가 유엔에서 일을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현재 반기문씨가 유엔사무총장으로서 많은 일을 해 내고 계시는 점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운이 좋게도 반 총장을 뵐 기회가 있었지요. 그래서 더욱 한국인들이 제 책을 읽는다는 게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마땅히 분노해야 할 과제로 첫째, 빈부 격차와 둘째, 인권 문제를 꼽으셨습니다. 또 다른 과제는 없습니까.

''''제가 걱정하고 있는 세 번째 문제는 개인 간을 넘어선 국가 간의 빈부 격차입니다. 이 격차가 좀 더 심화되고 있는 것에 주목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마땅히 음미해야 할 민주주의적 가치와 동떨어지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유한 국가는 빈곤한 국가에 좀 더 현실적인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불공정함, 나아가 부유한 국가와 빈곤한 국가 사이의 불공정한 분배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눈을 돌려보면 얼마든지 분노해야 할 일이 많은데, 왜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까. 테러리스트들은 부유한 국가들을 증오합니다. 부유한 국가는 다시 이들을 증오하고요. 이런 악순환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테러 행위는 이런 격차가 없어질 때 근절될 수 있습니다.''''

- 책에서 비폭력, 평화로운 봉기를 말씀하셨습니다만 분노는 곧 과격한 행동으로 연결되기가 쉬운데요. 평화롭게 저항하는 노하우가 있습니까.

''''저는 최근에 있었던 튀니지와 이집트의 평화적인 저항들에 대해 민주주의의 진보라 말하고 싶습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일까요? 바로 시민들이 그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할 수 있는 체제를 의미합니다. 많은 이집트 사람들은 독재자 무바라크에 대해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그들이 느끼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저는 책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야기했습니다. 시민들의 참여야말로 평화롭게 저항하는 노하우가 아닐까요. 시민들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정당을 지지하고, 적극적인 투표행위 등에 동참해야 합니다.''''

- 한국인들은 오랜 기간 군부 독재에 저항해 왔습니다. 현 정부 들어 개인이 지닌 표현의 영역이 줄어들고, 정부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구속되기도 합니다. 민감한 주제에 대해 당신은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조언하시겠습니까.

''''우선 모든 문제에 대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조그만 책이 한국인들이 믿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그들을 결집하게 할 수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제도, 교육, 주거 등 이러한 문제들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일 겁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는 불쑥 우리 곁에 나타나고, 또 사람들은 그 문제의 개선을 요구합니다.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데는 지식인층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로부터 나타나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가 좀 더 나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당면한 개인 문제에만 집착한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어떤 것이 한국인에게 최선이고 최악인지 당장 말을 하기에는 힘듭니다. 다만 ''''한국의 시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로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 이주민 문제에 관심이 많고 활동도 활발히 하셨습니다. 유럽에서는 지중해를 건너오는 난민을 막기 위해 셴겐조약까지 고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단일민족 국가인 남한도 다문화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인종적, 사회적, 종교적, 경제적 차별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프랑스는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유럽인들을 포함해 여러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혐오하는 현상 또한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우선 고용 및 실업 문제에 있어 외국인이 프랑스인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민자들이 프랑스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이민자들은 프랑스의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킨 이들이기도 합니다. 외국인 혐오 현상은 마땅히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일입니다. 인간으로서의 가치,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에 대한 부끄러운 모독입니다. 한 국가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 그것은 때때로 이민자의 탓으로 돌리고 부각시키려 하지만, 그것은 이민자의 잘못이 아니라 봅니다. 우리는 셴겐조약을 적극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고, 이것은 유럽연합에 속한 각 국가의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리비아처럼 국가에서 내전이 일어난 경우 우리는 난민과 망명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 정치적 참여의식이 낮았던 한국 대학생들은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면서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OECD 내에서 3번째로 비싼 등록금을 내기 위해 육체노동을 비롯해 갖가지 궂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자살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어떻게 분노하라고 조언하시겠습니까.

''''교육이야말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육에 대한 요구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국가들은 교육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국가는 많은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과도한 등록금 문제 역시 국가가 직접 제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대학생들의 시위는 분명 한국 정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확실한 결의와 냉정한 판단을 거쳐 시위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분노는 참여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분노하십시오. 참여하십시오.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 한국 대학생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많은 젊은이들은 ''''나 혼자로 되겠어?'''' 내지는 ''''일단 나 하나 잘 살고 보자''''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래 걱정하느라 대학생들은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공무원시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속박되어가는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벌과 많은 언론들은 서로 간의 경쟁을 부추깁니다. 경쟁을 이렇게 강요하고 부추긴 사례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매우 처량한 일입니다. 눈을 돌려야 할 곳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인권과 생태, 환경, 빈부 격차 문제, 힘없는 이들에 대한 보호의 문제 등 미래를 위해 뛰어들어야 할 가치있는 일, 새로운 길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생태, 환경 문제에 귀기울이는 일 역시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봅니다.''''

- 책에서 특정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며, 노동계가 창출한 부를 정당하게 분배하는 일을 금권보다 중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초과이익공유제, 동반성장 등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주와 노동자 간의 상생의 길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금융자본주의 시대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실질적인 조치가 가능할까요.

''''정부가 막대한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영향력을 중재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연대의 경제''''를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수익성과 무관하게 상품들이 교환되고, 수익만이 기업의 성공을 점치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익만을 추구하지 않아도 잘 운영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또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만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형태의 경제는 농업 사회나 소규모 기업에 존재하는데, 항상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앞으로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각 구성원의 활동을 통해 발전한다는 점에서 좀 더 인본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책에서 ''''효율적으로 활동하려면 네트워크 단위로 행동하면서 현대적인 소통방식까지 두루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확실해졌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요즘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어떤 방식의 연대와 소통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시대의 기술은 세상을 향한 열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죠.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만약 태양에너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운동을 전 세계인들과 펼치고 싶다면, 다른 도시로 직접 이동할 필요도 없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연락할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연대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 레지스탕스에서 외교관, 인권운동가로 격동의 세월을 살아오셨습니다. 살아오신 역정을 뒤돌아봤을 때 인생의 의미는 어디에 두는 것이 좋다고 보십니까.

''''인간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삶은 시, 예술, 창조적인 행위,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랑과 함께할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삶의 다른 측면에는 이기주의, 탐욕, 질투 등과 같은 요소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좋은 교육만이 제가 앞에서 말한 삶을 극대화할 수 있겠지요. 반면 경쟁만을 부추기는 나쁜 교육은 인간의 의식을 축소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한국의 시를 몰라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독자 여러분에게 시를 읽고 암송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제게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Tempest)에서 프로스페로의 입을 통해 나오는 짧은 시구를 들려드리고 싶군요. ''''We are such stuff as dreams are made on and our little life is rounded with a sleep.'''' ''''우리는 꿈들이 만들어 낸 존재이고 짧은 우리의 삶은 잠으로만 둘러싸여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네 짧은 삶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나요?''''

94세의 에셀은 인터뷰 내내 때로 주먹을 불끈 쥐거나 제스처를 해가면서 열정적으로 질문에 답했다. 그에게서 저항하고 분노했던 레지스탕스 시절의 힘이 느껴졌다. 에셀의 다음 일정에 쫓겨 짧게 끝난 인터뷰가 내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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