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가 밥 먹여주냐"던 순천, 어떻게 정원도시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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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투표해 봐야 뭐가 달라지나."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이다. 그러나 정치와 행정의 변화는 때로 거창한 구호보다 집 앞 공원, 출근길 산책로, 아이와 보내는 주말의 풍경처럼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먼저 나타난다. 기획 시리즈 '공약이 바꾼 세상'은 선거 공약이 실제 행정으로 이어졌을 때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추적한다.

[공약이 바꾼 세상③]순천을 탈바꿈시킨 정원 공약

동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순천 시가지 전경. 순천시 제공동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순천 시가지 전경. 순천시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투표해 봐야 안 바뀐다고?… 일상이 콘텐츠가 된 동네의 비결
②가장 작은 지자체가 쏘아 올린 '돌봄 모델' 희망
③"생태가 밥 먹여주냐"던 순천…어떻게 정원도시가 됐나
(계속)
전남 순천시 도심을 가로지르는 동천(東川)을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잔디광장이 펼쳐진다. 축구장 12개 규모(10만㎡)의 오천그린광장이다. 지난 주말 오후에도 잔디광장 곳곳에 돗자리를 편 시민들과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202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조성된 오천그린광장은 이제 시민들의 대표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정원과 동천을 잇는 이 공간은 공연과 축제, 야외 행사가 열리는 도심 속 광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순천시는 국가정원과 오천그린광장, 동천 일대를 연결하며 '도시에 사는 것이 아니라 정원 속에 산다'는 도시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풍경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전에는 순천만국가정원 부지는 논밭이었고, 지금의 오천그린광장 일대 역시 홍수 예방을 위한 저류지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생태·정원도시라는 개념은 낯설었다. 
오천그린광장. 순천시 제공 오천그린광장. 순천시 제공 

"생태? 동태·명태 말고 생태는 뭐예요?"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추진 과정에 참여했던 순천시 관계자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산업단지 조성, 기업 유치, 개발사업이 지방도시 성장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시절, '생태도시'는 낯선 개념이었다.

당시 순천만은 개발과 보전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제방 공사와 골재 채취, 농경지 개발 논의가 이어졌고, 습지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논쟁이 거셌다.

그러나 국제적 희귀 조류와 천연기념물이 확인되면서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주민과 시민단체, 행정은 순천만을 개발 대상이 아니라 보전 자산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순천시는 생태를 도시 전략으로 끌어올렸다.

이후 나온 해법이 정원박람회였다.

순천만 관광객 증가로 습지 훼손 우려가 커지자, 순천시는 도심과 순천만 사이에 완충 공간을 만드는 방안을 고민했다. 그렇게 시작된 구상이 국제정원박람회, 국가정원 조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공약과 정책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논을 왜 갈아엎느냐."
"농약 쓰다가 순천만 오염되면 누가 책임지느냐."
"수천억 원 사업비 감당하다 결국 빚만 남는 것 아니냐."

반대는 현실적이었다. 실제로 순천시의회가 지원 조례를 통과시키지 않으면서 조직위원회 출범이 1년 넘게 지연되기도 했다.

당시 생태수도사업소에서 실무를 맡았던 황학종 순천시 과장은 "시민들은 3천억 원이 넘는 사업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며 결국 빚을 지게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며 "환경단체에서는 농약이 순천만을 오염시킬 수 있다며 반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상황에서 주민들이 토지 매입에 협조해 주지 않았다면 정원박람회는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특히 평촌마을과 오산·오림 일대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내주면서까지 행정을 믿고 협조해 준 점이 가장 큰 힘이었다"고 말했다.

박람회 조경 조성을 맡았던 이강진 국장은 "당시만 해도 전체 부지가 대부분 논이었다"며 "나무와 자연석 등을 전국 공사 현장과 도유지·시유지 등에서 옮겨오며 예산을 최대한 줄였다"고 말했다. 이어 "준공을 제때 할 수 있을지 걱정할 정도로 현장 공무원들이 밤늦게까지 일했다"고 떠올렸다.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백서. 순천시는 박람회를 계기로 생태·정원도시 전략을 본격 추진했다. 순천시 제공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백서. 순천시는 박람회를 계기로 생태·정원도시 전략을 본격 추진했다. 순천시 제공 
우려 속에 시작된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440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생산유발효과를 1조3천억 원 규모로 분석했다. 이후 박람회장은 상설 정원으로 전환됐고, 2015년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10년 뒤 열린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도시 공간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목표치였던 800만 명을 넘어 약 980만 명이 방문했다. 관람객 만족도는 91.8점, 응답자의 41.6%는 순천의 도시 브랜드를 '생태·정원도시'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오천그린광장과 국가정원은 시민들의 대표 산책·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순천의 생태·정원 전략은 관광 정책을 넘어 시민들의 생활 공간과 도시 이미지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순천에서 '생태'는 도시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공약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생태도시 완성과 정원산업, 정원박람회 성공 개최 등은 지방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공약이 됐다.

동시에 순천의 지방선거에서는 생태와 개발 방향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져 왔다. 후보자들은 순천만 보전과 도시 개발 사이 균형, 생태도시 확장 방향 등을 두고 토론을 벌여 왔다.

지방선거와 총선 과정에서도 생태·정원 전략은 이어졌다. 순천시장 후보들은 '생태도시 완성'과 박람회 성공 개최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회의원 후보 역시 정원박람회 특별법 개정과 국비 예산 확보 등을 약속해 왔다.

'생태로 먹고 사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선거를 거치며 순천의 대표 정책 방향으로 자리 잡았고, 정치권 역시 이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경쟁해 왔다.

이상석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명예교수는 "순천처럼 생태와 정원을 지속적으로 도시 어젠다로 가져가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며 "지방선거를 거치면서도 도시 방향성이 유지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20일 열린 순천시장 후보자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 박사라 기자 20일 열린 순천시장 후보자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 박사라 기자 
최근에는 생태·정원도시를 기반으로 문화콘텐츠와 체류형 관광, 반도체·방산산업 등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 전략까지 논의되고 있다. 지방선거 후보들 역시 도시의 미래 방향과 성장 전략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다만 생태·정원도시라는 브랜드가 확고해진 만큼, 인공적인 시설 확대보다 생태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는 앞으로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이 교수는 "국가정원에 머무르지 않고 정원 문화가 도시 전역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며 "문화와 하이테크가 결합한 새로운 시도가 이어진다면 순천만의 도시 경쟁력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약은 도시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 순천은 이제 치유산업부터 반도체·방산산업까지, 생태도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도시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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