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스타벅스 홈페이지 캡처"책상에 탁!" '5/18 탱크데이'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벤트 후폭풍이 거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폄훼한 데 대한 공분이 가라앉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쇼박스 제공 그날 광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광주 돈 워리, 돈 워리. 아이 베스트 드라이버." _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택시운전사' 중서울에서 광주까지 가자고 하는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에게 택시기사 김만섭(송강호)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광주로 향한다. 김만섭은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만섭과 피터가 도착한 광주, 시민들은 두 사람을 열렬히 환영한다. "여기가 뉴스에 나오지 않아요. 꼭 뉴스에 내 보내주세요"라며 말이다.
김만섭이 광주에서 마주한 건 폭도들이 아니었다. 학살의 현장이었다. 모든 진출입로가 통제된 광주에서는 신군부가 보낸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무력 진압하고 있었다. 택시가 고장 나 어쩔 수 없이 광주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만섭은 어쩔 수 없이 피터의 취재 여정에 동행한다.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이 광주 금남로에서 한 시민을 연행해 탱크 앞에 무릎을 꿇리고 있다. 연합뉴스그곳에서 만섭이 만난 건 '폭력'이었다. 방송과 신문에서 '폭도'라고 부르던 광주 시민들은 무장한 군인들의 발길질에 맞서고 있었다. 최루탄 가스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그들을 향해 공수부대원들이 달려들어 때리고 걷어차고 심지어 총까지 쏜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여전히 광주가 폭도들에게 점령됐다는 보도만 나올 뿐이다.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평범한 광주 시민이자 대학생 구재식(류준열)은 재섭과 피터에게 나라가, 군인이 왜 자신들을 향해 총을 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5·18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현재 무등빌딩) 앞에서 최루탄이 터진 상황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벌어진 광주민주화운동은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1995년 7월 18일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 검찰부 발표에 따르면 그때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93명이다. 이 중 민간인 사망자는 무려 166명에 달한다. 부상자 역시 852명으로 확인됐다.
영화 '1987'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어?" _'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1987' 중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언 22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박처원 처장(김윤석)의 주도하에 경찰은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 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경찰은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거짓 발표를 이어가지만, 현장에 남은 흔적들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리킨다. 사건을 취재하던 윤상삼 기자(이희준)는 '물고문 도중 질식사'를 보도한다. 이에 박 처장은 조 반장(박희순) 등 형사 둘만 구속시키며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
영화 '1987'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그러나 중앙일보에 경찰조사 받던 대학생이 사망했다는 단편 기사가 나온다. 이로 인해 파문이 일자 안기부와 치안본부에서는 긴급하게 기자회견을 연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우현)은 "제가 경찰에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지만 가혹 행위는 일절 없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쩌다 죽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자 박처원이 직접 나선다.
"거 학생이 겁이 잔뜩 질려가지고 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어? …쓰러졌답니다." 이후 동아일보 사회부장(고창석)은 윤 기자에게 "경찰이 대학생을 죽였는데 뭐? 보도지침? X 까라 그래!"라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보도하라고 한다. 그렇게 사건의 진실이 알려진다.
영화 '1987'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알려지며 곳곳에서 이를 규탄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연희를 찾아왔던 남학생 이한열(강동원)도 그중 한 명이다.
연희는 독재 정권을 반대하는 외삼촌을 향해 늘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툴툴거렸다. 대학생 고문치사 사건에 참여한 박처원 등이 구치소에 수감된 날로부터 얼마 뒤, 연희는 가게에 배송된 신문을 보다가 자신이 만났던 이한열이 시위 도중 머리에 맞은 최루탄에 피를 흘리며 죽어간 사진을 보게 된다.
이에 연희는 신촌을 지나 시청광장으로 향한다. 그 길에서 시위 구호를 외치고 있는 수많은 시민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을 바라보던 연희는 눈물을 흘리며 함께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기 시작한다. 박종철의 죽음은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어 민주화운동을 촉발했다.
당시 사건 은폐를 주도했던 박처원 치안감은 1996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관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