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과 정승윤 전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 박종민·류영주 기자 국민권익위원회가 '김건희씨 디올백 수수 사건' 처리 과정에서 당시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윤석열 대통령 등과 대통령 관저에서 비공식 회동을 가진 뒤 사건 처리에 개입한 정황 등을 확인하고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정일연 권익위원장은 8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권익위 정상화 추진 TF(태스크포스)' 운영 결과를 발표했다.
TF는 지난 3월 16일부터 이날까지 54일간 활동하며, 그동안 국회와 언론 등에서 제기된 △김건희씨 디올백 수수 사건 무마 의혹 및 당시 담당 국장의 순직 사건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 △이재명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헬기 이송 특혜' 논란 △유철환 전 권익위원장의 '대웅제약 민원 셀프접수' 의혹 등 주요 신고 사건 처리 과정을 재점검했다.
'디올백 무마' 정승윤, 尹과 관저 회동서 무슨 말 나눴나…숨진 담당 국장엔 괴롭힘 정황까지
서울의 소리 유튜브 캡처조사 결과 김건희씨의 디올 명품백 수수 사건과 관련해 정승윤 전 부위원장이 담당 부서 의견과 달리 판단 유보와 추가 보완 지시 등을 내리며 사건 처리를 지연시킨 정황이 확인됐다.
특히 사건 처리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등과 심야에 대통령 관저에서 약 1시간 동안 비공식 회동을 가져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TF는 판단했다.
또 관련 전원위원회 회의가 열리기 2시간 전, 권익위 정무직·상임위원 등 전원위원들을 상대로 비공식 회의를 소집해 사건 종결 방향을 직접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칙적으로 담당 부서가 작성해야 하는 의결서를, 정 전 부위원장이 직접 상정 의안에 포함되지 않은 사항과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은 내용을 추가해 작성한 정황도 확인됐다.
김건희씨는 2022년 9월 최재영 목사로부터 약 300만 원 상당의 프랑스 명품 가방을 받은 의혹을 받았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2024년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건을 종결 처리했지만, 이후 '봐주기 논란'에 휩싸였다.
TF는 이 같은 의혹과 관련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또 당시 사건 종결에 반대했던 김모 전 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의 순직과 관련해서도 정 전 부위원장이 연관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의 실무 책임자였던 김 국장은 사건 종결 두 달 뒤 세종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유족이 공개한 유서를 통해 권익위의 사건 종결 과정에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던 사실이 드러났고,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김 전 국장의 순직을 인정했다.
TF는 당시 정 전 부위원장이 숨진 김 국장에 대해 회의 발언권을 제한하고 주요 사건 관련 업무에서 배제한 데 이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토대로 비난한 정황 등을 파악했다.
이에 따라 TF는 정 전 부위원장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인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비위 사실을 통보했다. 또 권익위 차원에서도 고인과 유가족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기로 했다.
'류희림 민원사주' 의혹도 덮었나…정승윤 "기관 송부 보고 거부"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연합뉴스한편 윤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가족·친척·지인 명의로 수십 건의 민원을 접수하게 하고, 해당 언론사들에 거액의 과징금과 무더기 중징계를 내렸다는 이른바 '민원사주' 사건에도 정 전 부위원장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TF는 당시 담당 부서가 감사원과 경찰청 등 제3기관으로 사건을 송부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고했지만, 정 전 부위원장이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또 전원위 안건에 분과위원회의 판단 내용과 결론을 포함하지 않도록 관련 규칙에 어긋나는 부당 지시를 한 정황도 확인됐다.
아울러 방심위가 권익위에서 송부받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방심위원장과 감사실장 등을 사적 이해관계자로 신고하지 않은 사실도 밝혀졌다.
TF는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한편, 류 전 위원장 등에 대해서는 이해충돌방지법상 사적 이해관계자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정황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헬기 특혜' 결론 뒤집은 권익위…"공식 협의 따른 것" 확인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 피습을 당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불거진 '헬기 이송 특혜' 논란과 관련해서도 정 전 부위원장이 전원위 의안과 회의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의결서에 포함해 위반 통보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담당 부서는 부산소방본부 직원에 대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취지의 '기관 송부' 의견을 냈지만, 정 전 부위원장이 이를 '행동강령 위반' 통보로 처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TF는 조사 과정에서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 간 전원 및 헬기 이송이 두 병원의 공식 협의 결과이자 권한 범위 안에서 이뤄졌다는 추가 진술을 확보하고, 이를 '행동강령 위반'으로 본 것은 부적정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TF는 위원회 차원의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사건 처리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인 민원 특혜' 유철환 고발·과태료…'대웅제약 셀프접수'도 부당 지시 확인
유철환 전 국민권익위원장. 윤창원 기자최근 불거진 유철환 전 위원장의 민원 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유 전 위원장이 자신의 부친과 친분이 있는 민원인을 위원장 집무실에서 세 차례 만나 청탁을 받고 담당 국장에게 민원 처리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담당 국장은 이미 소위원회에서 각하된 민원이 재접수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민원 처리 부서와 조사관을 여러 차례 교체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유 전 위원장은 위원장 임용 전 2년 이내 재직했던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를 민원인에게 직접 소개했고, 직무 관련자인 민원 대리인이 사적 이해관계자라는 사실도 이해충돌방지담당관에게 신고하지 않은 정황이 확인됐다.
TF는 이에 대해 유 전 위원장 등이 이해충돌방지법상 사적 이해관계자 신고 의무를 위반하고 부정청탁에 따른 직무를 수행한 의혹이 있다며 수사기관 고발과 과태료 부과 조치를 하기로 했다.
메디톡스와의 분쟁에서 패소한 대웅제약이 권익위에 제기했던 고충 민원과 관련해서도, 이미 각하된 민원을 권익위가 수차례 재접수한 이른바 '대웅제약 셀프접수' 사건에서 부당 지시 정황이 확인됐다.
TF는 당시 담당 국장이 고충민원 조사 권한이 없는 전문위원에게 조사를 지시하고, 비공식적으로 작성된 제도 개선안을 고충민원 의결서에 반영하도록 민원 담당 과장에게 지시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에 따라 담당 국장에 대한 고발과 함께 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한편 권익위 인사 운영 부적정 의혹과 관련해서는 승진 심사와 근무성적평가 운영, 개방형 직위 임기제 공무원의 일반직 공무원 임용 과정 등에서 미비점이 확인돼 관련 절차를 개선하기로 했다.
TF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회의 운영 △사건 처리 △민원 처리 △인사 운영 등 4개 분야에 대한 제도 개선 방향도 제시했다. 또 고발·징계 요구와 제도 개선 등 후속 조치를 최대한 신속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