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반느'. 넷플릭스 제공파반느. 16세기 유럽 귀족 사회에서 유행한 느린 춤곡이다. 공작새(Pavo)의 우아한 동작에서 유래됐다는 주장과 이탈리아 파도바(Padova) 지역에서 시작됐다는 통설이 전해진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1899년 파리 음악원 재학 당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했다. 제목 탓에 장송곡으로 오해받았지만, 그는 스페인 궁정에서 어린 왕녀가 춤추는 모습을 상상하며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박민규 작가는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를 통해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를 표지와 첫 소제목에 담으며 변주를 줬다. 소설은 198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외모로 상처받으며 살아온 인물과 그의 내면을 사랑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청춘을 그린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원작 첫 장의 문구인 "역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당신을 위해"를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아 원작의 분위기를 이어간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안고 살아온 이경록(문상민)은 스무 살 무렵 유토피아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박요한(변요한)을 만나 친구가 되고, 어둠 속 지하 창고에 있던 김미정(고아성)을 마주한다.
영화 '파반느'. 넷플릭스 제공김미정은 백화점에 수석으로 입사했지만 외모로 인해 '공룡'이라 불리며 남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인물이다. 이경록은 그런 김미정에게 점차 마음이 끌리게 되고, 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듣는 김미정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경록의 마음을 파악한 박요한은 켄터키 호프집으로 김미정을 불러 세 사람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 이어 박요한은 '사랑'에 대해 말한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 사람은 남들과 다르다는 오해. 그리고 영원할 거라는 오해."사랑의 감정을 느낀 이경록과 김미정은 연애를 시작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관계는 이경록의 대학 입학과 박요한의 입원으로 흔들리게 된다. 끝내 김미정은 이경록의 곁을 떠나고 이경록은 비로소 빈자리를 깨달으며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 영혼 빛 밝힌 청춘…어항 속 물고기의 '파반느'
영화 '파반느'. 넷플릭스 제공작품은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낸다. 어둠 속에 머물던 김미정은 지하 주차장을 밝히는 이경록을 통해 점차 빛을 마주하고, 홀로 길고양이처럼 살아가던 이경록도 김미정을 통해 비어 있는 감정을 채운다. "사랑은 서로의 영혼에 빛을 밝혀준다"는 극 중 이경록의 대사처럼 두 사람은 함께 빛을 향해 나아간다.
미장센 또한 눈길을 끈다. 엘리베이터 문과 거울 등을 활용해 김미정의 외모와 내면을 간접적으로 비추고 켄터키 호프집 어항 속 세 마리의 물고기를 통해 인물들만의 '파반느'를 상징적으로 구현했다.
LP 가게에서 이경록과 김미정이 들었던 음악은 기존 곡이 아닌 영화만을 위해 새롭게 제작된 곡이다. 이종필 감독은 음악 감독과 함께 당시 시대의 분위기에 맞춰 곡을 완성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로라 장면 역시 이 감독이 문상민, 고아성만 데리고 가 직접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 '파반느'. 넷플릭스 제공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변요한은 위트와 진지함을 오가는 박요한을 입체적으로 표현했고 고아성은 체중을 10kg 증량하며 어둠 속에 살아가는 김미정을 선보였다. 문상민은 초반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이경록을 구현하기 위해 촬영 전부터 이 감독과 새벽 미팅을 이어가는 등 공을 들였다.
연출을 맡은 이종필 감독은 "'파반느'는 사랑할 자신이 없는 세 사람이 사랑을 하는 멜로 영화"라며 "백화점 지하 어둠 속에 있는 세 사람이 빛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 영화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어둠 속에 방치된 어두운 전구 같은 미정이 사랑을 통해 빛났으면 했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청춘을 비추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는 책 '어린왕자'를 통해 이런 문구를 남겼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이종필 감독 연출. 고아성·변요한·문상민. 113분.
한줄평 : 이종필 감독의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