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계엄이라니…석달 전 모두가 들었잖나[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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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기자수첩'은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지난 2024년 10월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전 대통령(오른쪽)과 김용현 전 장관. 연합뉴스지난 2024년 10월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전 대통령(오른쪽)과 김용현 전 장관. 연합뉴스
"야권에서 나오는 얘기 전해드릴게요. 옛날에 추미애 대표가 제기했던 계엄령 있잖아요. '윤석열 대통령도 탄핵을 걱정해서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원식 장관은 원칙론자적인 사람이어서 그걸 딱 안 받을 수 있으니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자기편 김용현으로 갈아치운 것이다'(라는 해석이 제기돼요)"

기자가 지난 2024년 8월 13일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연장방송 중 무심코 꺼냈던 말이다. 석연찮은 안보라인 교체의 배경을 취재하다 들었지만 지상파 본방송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일종의 '썰'을 유튜브에서 편하게 풀었던 것이다. 이 뒷얘기는 앞서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방첩사령관 등을 '충암고 라인'이라고 지목했던 것과 맞물려 비교적 진지한 토론 주제가 됐다.

윤석열이 계엄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제도권 언론에서 처음 소개된 건 바로 이때였다. 워낙 생경한 소식이었던 탓인지, 댓글 반응은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 "음모론 아니냐" 등의 지적이 빗발쳤다. 부연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던 기자는 결국 "저도 야권 의견에 다 동의하진 않는다"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계엄 준비설은 다음 날 이언주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이후 김병주 의원이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언급해 화제가 됐지만 그저 섣부른 음모론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일주일 뒤 김민석 최고위원이 공식 회의 중 "확신한다"고 밝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석 달 뒤 펼쳐진 현실은 상상을 앞질렀다.

오래전 기억이 다시 뇌리에 스친 건 내란수괴 1심 선고를 생중계로 시청하면서였다. 재판부가 판시한 양형 참작 사유의 핵심은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는 얘기였는데 귀에 상당히 거슬렸다. 우발적 범행이라고? 백번 양보해서 적어도 석 달 전에는 계엄 준비가 있었다는 걸 그때는 못 믿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알지 않나.

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를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가 생중계 되고 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박종민 기자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를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가 생중계 되고 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박종민 기자
계엄 이틀 전에야 결심을 굳혔다는 지귀연 판사의 해석은 최소 2023년 10월 이전부터 준비가 시작됐다는 특검의 판단이나 서울중앙지검·공수처 인식과 궤를 완전히 달리했다. 여인형·곽종근·이진우 등 계엄군 사령관들의 진술과도 배치됐다.

그러나 계획이 허술했다고 해서 계획 자체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미수에 그쳤다고 해서 위험이 적었던 것도 아니다. 윤석열은 계엄 선포 한 달 전 군 시설에서 골프를 치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에 발각되자 김봉식 당시 서울경찰청장에게 비화폰을 지급했다고 한다. 작전이 들통날까 봐 공범 간 보안을 강화한 것이다.

사실 '우발'이라는 단어는 참 편리하다. 정치적 파장을 줄이고 사법적 무게를 덜어낸다. 상대의 행동을 '선의'로 해석하면 마음이 편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미치광이가 판쳤을 때, 그게 최고 권력자였을 때는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어느 한쪽은 마땅히 방비해야 한다. 그 최후의 보루가 사법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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