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돈의동 온기창고에서 쪽방촌 주민이 물건을 사고 있다. 권민철 기자17일 오후 기자가 방문한 서울 종로구 돈의동 온기창고(2호)는 물건을 사려는 주민들로 분주했다. 돈의동 쪽방촌 등록주민 491명이 이용하는 그들만의 편의점이다. 매대에는 김치, 스팸, 즉석요리, 간장, 세면도구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민들은 1주일에 2만 점씩 배정되는 적립금으로 필요한 물건을 직접 고른다. 선착순도, 줄도 없다. 이날 8천 점짜리 김치(3kg)와 1천 점짜리 검은콩두유 1개를 사던 주민 A씨는 "예전엔 주는 대로 받아야 했는데, 이제는 내가 필요한 걸 고를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웃어 보였다.
1주일에 화요일, 목요일 이틀간 문을 여는 이곳의 판매 물건은 전부 기부를 받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B(57)씨는 "내일도 토스뱅크의 기부전달식이 예정돼 있다"고 귀띔했다. B씨는 이날 온기창고 옆 주민공동시설 새뜰집에 마련된 샤워장에 오는 주민들의 출입도 관리하느라 정신없어했다.
서울시는 이곳 외에도 서울역·영등포·창신동 쪽방촌에 온기창고를 운영중이다. 과거 겨울이면 이들 쪽방촌 골목에는 라면박스, 쌀포대, 김치통이 즐비했었다. 또 그걸 받아가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었었다. 그러나 이제 온기창고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줄을 서지 않고 온기창고에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장보듯 사갈 수 있게됐다.
동행식당. 서울시 제공쪽방촌 주민들의 하루 한 끼는 책임진다는 '동행식당'도 쪽방촌 골목의 온도를 끌어올렸다.
추위 속에 따뜻한 국 한 그릇 먹기 위해 이제는 길게 줄지어설 필요가 없다. 현재 서울 시내 49개 식당이 '동행식당'으로 참여하고 있다. 식권 대신 카드로 결제하고, 메뉴는 각자 고른다. 국밥을 먹는 날도 있고, 생선이나 찌개를 선택하는 날도 있다.
창신동의 한 동행식당 사장은 "어르신들 입맛이 다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된다"며 "며칠 안 보이면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먼저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에게는 배달로 식사를 전하면서 안부를 살피는 일도 이어진다. 밥집이 식당을 넘어 골목의 안전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동행목욕탕. 서울시 제공해가 지면 이번엔 '동행목욕탕'이 진가를 발휘한다.
현재 서울 쪽방촌 8곳에 운영중인 동행목욕탕은 목욕 지원은 물론, 혹한기에는 밤추위 대피소로도 운영된다. 이 사업은 한미약품㈜의 후원으로 지난 3년간 이어져 왔다. 쪽방 주민들이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난방이 되는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해 건강 증진에 큰 도움을 줬다는 평가다.
한 주민은 "집에 있으면 너무 추운데, 목욕탕에서 몸 풀고 자면 다음 날이 훨씬 낫다"며 "겨울을 넘길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서울시의 노력이 쪽방촌 사람들에게 겨울을 견디는 시간이 아닌 버틸수 있는 일상으로 바꾸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온기창고는 선택권을, 동행식당은 존중받는 한 끼를, 동행목욕탕은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며 "공공의 역할에 민간의 온정이 더해지면서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쪽방 주민의 겨울을 일시적으로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