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박종민 기자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가 28일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계엄 선포 2시간 전 미리 알고도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조 전 원장은 역대 국정원장 중 처음으로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됐다.
특검은 이날 조 전 원장을 직무유기와 국정원법상 정치관여금지 위반, 증거인멸, 위증,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박지영 특별검사보는 브리핑에서 "국정원장의 보고 의무를 직무유기로 의율한 첫 사례"라며 "국정원장의 보고 의무를 충실화, 실질화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12·3 당일 저녁 윤석열 전 대통령은 조 전 원장과 소수의 국무위원을 먼저 대통령실로 불렀다. 이에 조 전 원장은 계엄이 선포되기 약 2시간 전에 미리 윤 전 대통령의 계획을 알게 됐지만, 이를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다.
국정원법 15조는 '국정원장은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한 경우 지체 없이 대통령 및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 전 원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으로부터 '계엄군이 이재명·한동훈을 잡으러 다닌다'는 내용까지 보고 받고도 국회에 알리지 않았다.
박지영 내란특검보가 28일 특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초구 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박 특검보는 "국정원장은 특정 정파나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입지가 아닌, 국민을 우선에 두고 국가 안위를 지켜야 하는 자리"라며 "조 전 원장은 방첩사의 정치인 체포 활동을 지원하라는 윤 전 대통령의 지시를 보고받아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폭동이 일어난 것을 인지하고도 국정원장으로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조 전 원장은 홍 전 차장의 동선이 담긴 CCTV만 국회에 제공함으로써 윤 전 대통령 등을 위한 정치활동에 관여해 국정원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는다. 당시 국민의힘은 홍 전 차장의 진술과 영상 속 동선이 맞지 않는다며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나온 홍 전 차장 진술을 공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조 전 원장의 동선이 담긴 CCTV도 요구했지만, 조 전 원장은 이를 제공하지 않았다.
특검은 조 전 원장이 지난 2월 국민의힘 성일종·유용원·윤상현 의원과 통화한 다음 날 국정원 내부에서 계엄 당일 홍 전 차장의 동선이 촬영된 CCTV를 반출하기 위해 다운로드 작업이 이뤄진 정황도 포착했다. 성 의원이 조 전 원장과 통화한 이후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김석우 당시 법무부 차관에게 '국정원장 공관 앞 CCTV를 빨리 압수수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은 사실도 확인했다.
박 특검보는 "(체포 지시 관련 보고를 받고도 조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부하를 거짓말쟁이로 치부하고, 이를 은폐해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활용했다"며 "정치적 중립성은 국정원의 핵심 가치이며 국가 안전 보장은 어떤 경우에도 보호돼야 할 최우선의 목표"라고 말했다.
다만 특검은 조 전 원장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직접 가담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내란 관련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박 특검보는 "조 전 원장은 계엄 당시 홍 전 차장의 보고를 받고 내일 아침에 결정하자며 미루는 등 내란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체포 지시 등을 본인이 듣지 않은 것처럼 진술해 탄핵심판 과정에서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본인이 인지한 정보를 사실대로 국민과 국회에 보고했다면 내란이 빨리 수습될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사후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은 있지만 죄를 구성하는 건 아니어서 별도로 의율하지 않았다"며 "양형에 있어선 충분히 참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류영주 기자특검은 조 전 원장이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허위 증언을 하고 국회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등에 허위 답변서를 제출한 점에 대해서도 기소했다.
조 전 원장은 앞서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증언과 답변서 등을 통해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계엄 관련 지시는 물론 문건을 받은 적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대통령실 CCTV에는 조 전 원장이 집무실에서 문건을 챙겨 나오는 장면이 담겼다.
특검은 조 전 원장이 계엄 해제 이틀 뒤 박종준 전 대통령 경호처장과 공모해 윤 전 대통령 등의 비화폰 정보를 삭제해 증거를 인멸한 혐의도 적용했다. 홍 전 차장이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 내역을 공개한 이후 조 전 원장과 박종준 전 대통령경호처장 간 통화가 이뤄졌고, 이후 비화폰 기록이 삭제됐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다.
특검은 이 같은 혐의로 이달 7일 조 전 원장에 대해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해 지난 12일 발부받았다. 법원은 조 전 원장이 청구한 구속적부심도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