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AI 확산과 맞물려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등 전세계 AI 분야 거물들이 집결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은 한국 반도체(K 반도체)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장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AI 칩 시장의 선두주자인 황 CEO는 이번 방한을 계기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등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도 따로 만날 것으로 알려져 깜짝 '빅 딜'이 발표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도 CEO 서밋 기간 중에 발표될 예정인데 눈에 띄는 호실적이 예상되는 만큼 글로벌 시장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APEC CEO 서밋은 29일 오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의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의 개회사를 신호탄으로 본격 시작한다. 31일까지 이어지는 CEO 서밋에는 국내외 재계 리더 1700여명이 참석해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고 협업 방안도 모색한다. 맷 가먼 아마존웹서비스 CEO와 사이먼 칸 구글 APAC 부사장, 사이먼 밀너 메타 부사장, 안토니 쿡·울리히 호만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도 CEO 서밋 기간 연사로 나서 AI와 디지털 전환의 미래를 제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AI 분야 참석자 가운데서도 주목도가 높은 젠슨 황 CEO는 서밋 폐막일인 31일 기조연설자로 나설 예정이다. 그는 엔비디아를 이끌며 AI의 두뇌를 담당하는 칩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1위를 선점한 인물이다. 15년 만에 공식 방한하는 황 CEO는 기조연설 전날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의 한국 출시 25주년 기념 행사에도 온다.
이처럼 서울에서 경주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황 CEO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도 회동할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이다. SK그룹 최태원 회장과의 만남 가능성도 거론된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집중해 온 HBM(고대역폭메모리) 최대 수요처로 꼽힌다. HBM은 AI가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때 필수적인 부품으로, 그간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대한 HBM 공급 주도권을 쥐어왔다.
삼성전자는 6세대 HBM 신제품인 HBM4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업계 최초로 한 단계 앞선 기술의 1c(6세대) 공정을 적용해 제품 성능을 높였다는 점도 강점으로 거론된다. 내년 출시 예정인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HBM4가 들어갈 예정으로, 황 CEO는 올해 초 삼성전자의 HBM을 테스트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로선 5세대 제품 'HBM3E 12단'의 엔비디아 납품에도 공을 들여온 만큼, 이 회장과 황 CEO 간 회동에서 구체적인 협업 발표가 있을 경우 도약의 주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도 HBM4 양산 준비를 마치고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사 지위를 굳힐 준비를 하고 있는 만큼 물밑 경쟁이 치열한 모양새다. 최 회장은 전날 APEC CEO 서밋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황 CEO가 한국의 많은 기업과 협력 이야기를 할 것"이라며 "SK도 무언가 새로운 얘기를 조금씩 하게 될 것 같다. 황 CEO의 발표를 들어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여러 굵직한 AI 파트너들과 협업 성과를 내면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의 핵심 기업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부각되고 있다. 이는 APEC 기간 중 발표될 3분기 실적에도 반영될 전망이다.
29일 실적을 발표하는 SK하이닉스는 역대급 호실적이 예상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종합한 증권사들의 SK하이닉스 3분기 실적 전망치는 매출 24조8684억원, 영업이익 11조5585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다음날인 30일 확정 실적을 발표하는 삼성전자는 앞서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86조 원, 12조1천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시장 예상을 웃도는 깜짝 실적으로서, 반도체 사업 성과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두 기업의 향후 전망도 긍정적이다. IBK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 시점에서 메모리 수요 증가는 2018년 수요 버블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안정적"이라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실적은 내년에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2025년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 점유율은 60%에 가까울 것으로 예상하지만, 내년에는 50% 내외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비중 증가도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CEO 서밋 부대행사로서 전날 개막한 '케이테크(K-Tech) 쇼케이스'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4를 각각 전시하며 경쟁했다. 삼성전자는 두 번 접히는 폴더블폰 '갤럭시 Z 트라이폴드'도 이번에 처음 공개하며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현대차그룹은 행사가 열리는 경주엑스포대공원 에어돔에 전시장을 조성해 미래 모빌리티로 꼽히는 목적기반차량(PBV)와 로보틱스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LG전자는 무선·투명 TV 'LG 시그니처 올레드 T'로 만든 초대형 샹들리에를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