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온다… 라이프치히 30년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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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인구 절벽이라는 피할 수 없는 흐름 속에 수도권 과밀화가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 밖 대부분의 지역이 지방균형발전을 외치지만 고령인구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전남은 지역소멸 위기에 놓였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산업 중심지로 지역경제를 이끌던 전남 동부권도 청년층 유출과 경기 침체로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전남CBS는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도 역사와 문화, 산업의 특색을 살려 다시 살아나는 지역으로 거듭난 일본과 유럽의 사례를 통해 전남 동부권의 지속 가능한 해법과 전략을 모색한다.

[지역은 소멸하지 않는다④]
20년 만에 인구 15만 명 늘며 다시 성장…그중 30%는 청년층
'빈집' 리노베이션 정책이 핵심…공공 인프라에도 1조 6천억 투입
스피네라이', '베스트베르크'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손꼽혀
"정주 여건과 장기 인프라 투자 중요… 원도심부터 채워야"

위에서 내려다 본 라이프치히 전경. 박사라 기자위에서 내려다 본 라이프치히 전경. 박사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인구감소 벼랑 끝 '선택과 집중'이 불러온 日 도야마의 변화
② 철강에서 문화도시로…9월이면 '린츠'가 들썩인다
③ '창조적 과소' 가마야마의 역설이 말하는 소도시의 생존법
④ 청년이 돌아온다… 라이프치히 30년의 '반전'
(계속)

독일 동부의 도시 라이프치히(Leipzig) 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의 대표적 쇠퇴 도시'로 불렸다.

한때 74만 명이던 인구는 통일 이후 44만 명까지 줄었고, 산업은 붕괴했다. 도시는 한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폐허로 변했고, 수많은 공장과 주택은 버려졌다.

그러나 지금 라이프치히는 독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2024년 현재 인구는 약 63만 명, 그중 30세 미만이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어떻게 이 도시는 쇠퇴의 나락에서 '젊은 도시'로 반전할 수 있었을까.

그 중심에는 예술과 시민의 손으로 부활한 민간 주도형 재생, 그리고 도시가 설계한 공공 주도형 도시재생 전략이라는 두 축이 있었다.

스피네라이 전경. 길 위로는 방적공장 시절 트랙터가 지나던 레일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박사라 기자스피네라이 전경. 길 위로는 방적공장 시절 트랙터가 지나던 레일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박사라 기자

스피네라이, 버려진 방적공장이 거대한 예술의 공간으로

라이프치히 서부 플라그비츠(Plagwitz) 지역의 스피네라이는 19세기 말 유럽 최대 규모의 면방적공장이었다.

1884년 설립된 이 공장은 4천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며 한때 라이프치히 산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독일 통일 이후 산업 구조가 무너지고 생산이 중단되면서 10헥타르에 달하는 부지는 수년간 방치됐다.

지난 9월 찾은 스피네라이는 여전히 방적공장의 외형을 간직하고 있었다. 트랙터가 다녔던 레일이 남은 마당과 붉은 벽돌 건물 위에는 예술가들이 그린 그래피티가 다채롭게 덧입혀져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버려진 공장에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100여 명의 예술가, 14개의 갤러리, 디자인 사무소, 전시공간, 카페가 함께하는 복합 예술지구로 탈바꿈했다. 예술이 산업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운영은 민간기업 MIB 그룹이 맡고 있다. 이 회사는 2001년 부지를 매입한 뒤 임대와 전시 수익으로 공간을 유지하며, 예술 활동과 상업 구조가 순환하는 자생 모델을 구축했다. 공공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운영되는 민간형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다.

마이클 루트비히 (Michael Ludwig) 라이프치히 스피네라이 운영 매니저. 박사라 기자마이클 루트비히 (Michael Ludwig) 라이프치히 스피네라이 운영 매니저. 박사라 기자
스피네라이 운영 메니저 마이클 루트비히(Michael Ludwig)는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저렴한 임대료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작업부터 전시, 판매까지 가능한 '원스톱 창작 구조'가 예술가들에게 최고의 매력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입주를 기다리는 예술가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 시스템이 라이프치히를 '음악의 도시'에서 '예술의 도시'로 확장시켰다"고 덧붙였다.

스피네라이는 현재 연간 수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예술 활동을 통해 약 1,2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쇠퇴한 산업시설이 새로운 문화·경제 생태계로 전환된 상징적 공간이 됐다.

라이프치히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인 베스트베르크 앞 거리. 박사라 기자라이프치히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인 베스트베르크 앞 거리. 박사라 기자기계 제조공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베스트베르크(Westwerk). 박사라 기자기계 제조공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베스트베르크(Westwerk). 박사라 기자

베스트베르크, 기계공장이 청년 복합문화공간되다 

민간이 예술로 도시의 생명을 되살렸다면, 공공이 주도한 대표적 성공 사례는 베스트베르크(Westwerk) 다.

원래 이 부지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기계 제조공장으로 가동되던 산업시설이었다. 통일 이후 산업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공장은 폐허로 남았고, 오랫동안 방치됐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 지역 예술가들이 이곳을 임시 작업실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변화의 시작점이 됐다.

이후 시정부와 민간 단체가 협력해 단계적인 리노베이션이 진행됐고, 지금은 라이프치히 서부 재생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베스트베르크는 예술가와 디자이너, 공예가, 음악인 등이 입주해 창의산업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시와 공연, 커뮤니티 행사를 통해 시민과 방문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베스트베르크는 단순한 건물 복원이 아니라 도시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행정과 시민의 협력 모델로 평가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들의 창의 활동이 공공의 영역 안으로 확장됐고 문화가 지역 회복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슈테판 가이스(Stefan Geiss) 라이프치히 도시재생국 국장. 박사라 기자슈테판 가이스(Stefan Geiss) 라이프치히 도시재생국 국장. 박사라 기자

인구의 30%는 청년… 라이프치히가 택한 해법

라이프치히의 회복은 결국 젊은 세대의 유입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2023년 기준 18~34세 인구는 전체의 25.5%, 그중 30세 미만은 약 30%에 이른다. 2005년 이후 약 15만 명이 늘었는데 그 대부분은 청년층의 순유입 덕분이었다.

슈테판 가이스(Stefan Geiss) 라이프치히 도시재생국장은 "대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도시가 문화, 예술, 클럽 등에서 청년들에게 매력적이다. 다른 대도시는 고령층이 많은 역삼각형 구조지만 라이프치히는 20~30대가 중심인 역동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층의 유입은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주택 수요가 급증하고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유치원과 학교 수요도 폭증했다. 이에 시는 20년 동안 15개의 학교를 신설, 최근 15개의 유치원을 추가 개설했다.

가이스 국장은 "청년 인구 유입이 도시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주 여건 개선과 일자리가 동시에 추진돼야 하며, 장기적 관점의 인프라를 투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프치히 구시가지 거리. 박사라 기자라이프치히 구시가지 거리. 박사라 기자

그 많던 '빈집'은 어디로 갔나

독일 통일 이후, 라이프치히는 인구가 서독으로 빠져나가며 '빈집의 도시'로 불렸다. 한때 전체 주택의 5분의 1 이상이 비어 있을 정도로 공실 문제가 심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는 장기 주택정책 차원에서 빈집 리노베이션 보조금 제도를 시행했다.

수년간 비어 있던 주택을 리노베이션해 시장에 재공급하는 방식으로, 연방정부·주정부·시정부가 각각 3분의 1씩 비용을 분담했다.

최근 30년간 약 1조6천억 원을 투입해 극장, 문화공간, 유치원 등 사회 인프라를 조성했다.

가이스 국장은 "1995~2015년 부동산 시장을 보면 리노베이션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며 "허름한 집을 싸게 사서 고쳐 되파는 것이 더 이익이었다. 시는 강제하지 않았지만 공원과 학교, 보육시설 같은 인프라 투자를 통해 주민들에게 리노베이션의 동기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라이프치히의 빈집은 거의 사라졌다. 도시는 이제 기후변화 대응형 주거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지열·태양광 기반의 난방으로 전환하고, 남은 150여 개 산업 유휴공간 중 일부는 주택으로 재개발되고 있다.

쇠퇴의 도시에서 살고 싶은 '친환경 도시'로 라이프치히는 이제 단순한 복원을 넘어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결합한 '두 번째 재생 단계'로 접어들었다.

가이스 국장은 "라이프치히는 완전히 무너졌던 도시였기 때문에 도시재생의 필요성과 시민 동의가 높았다"며 "도시를 재생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점을 시민 모두가 이해했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 63만 명 중 30%가 청년층인 라이프치히. 박사라 기자전체 인구 63만 명 중 30%가 청년층인 라이프치히. 박사라 기자
가이스 국장은 지방 도시의 소멸 위기에 대해 세 가지 조언을 제시했다.

먼저 지역의 문제를 공론화해 모든 이해관계자가 그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만큼이나 정주 여건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인 인프라 투자를 이어갈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원도심 공동화 현상과 관련해 그는 "신도시 개발보다 도심의 중심부를 먼저 되살려야 한다"며 "원도심을 재개발해 정주 여건을 개선하면 젊은 세대가 돌아올 주거와 일자리가 생긴다"고 조언했다.

*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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