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오후 5시 미국 워싱턴 DC에서 더그 버검 미국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한미 양국 에너지 분야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한국과 미국이 지난 7월 말 타결한 관세 협상의 후속 조치를 위한 실무협의를 미국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실무협의에서는 미국이 대(對)한국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하면서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 패키지를 구체화하는 문제와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 민감한 문제가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측은 최그 미국 조지아주에서 이민 단속으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구금된 사태와 관련해 우려를 표명하고, 원활한 대미 투자를 위해서는 비자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韓美, 7월 관세협상 타결 후 후속 실무협의 재개
9일 통상당국 등에 따르면 한국 통상 실무 대표단은 지난 7일 미국 워싱턴DC를 비공개로 방문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상무부 등 당국자들과 관세 협상 후속 실무협의를 벌이고 있다.
한국 대표단은 대미 관세 기술협상 실무 대표를 맡고 있는 박정성 산업부 무역투자실장과 안홍상 미주통상과장 등이 주축이 됐다.
한미는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관세 협상을 타결하고 지난달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큰 틀에서 확인했으나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두고는 아직 협의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한국은 상호관세율 인하를 조건으로 3500억달러(우리돈 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1천억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 등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부터 15%의 상호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한국은 대미 최대 수출품인 자동차에 붙고 있는 품목관세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미국과 합의했지만 이는 미국 내 행정절차 등을 이유로 아직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한국이 먼저 약속을 이행하는 '행동'에 나서야 자동차 관세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산업인 자동차를 지렛대 삼아 관세 협상 후속 실무협의에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미 투자 패키지 세부안 두고 한미 온도차 뚜렷
조선소. 연합뉴스이번 실무협의에서는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 패키지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를 두고 양측이 이견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패키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결정할지, 투자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등이 골자다.
한국이 제안한 투자 패키지는 조선 분야에 1500억달러, 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2천억달러를 각각 투자하는 방식으로 투자는 직접 투자(equity)와 대출(loans), 보증(credit guarantees)을 통해 지원하는 개념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는 5% 정도로 한정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투자 프로젝트를 간접 지원하는 보증으로 채워 실질적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만, 미국은 한국이 높은 비율로 자국이 직접 지정한 분야에 지분 투자를 하기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이미 내년 예산안에 대미 투자 확대에 대비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에 자본금 확충, 추가 출자 등을 위한 예산 1조9천억원을 반영하는 등 후속 조치에 나선 상태다.
미국은 투자 대상 선정 역시 자국이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기조다. 이는 투자 대상 프로젝트의 사업성을 따져보며 투자를 결정하고, 사업에 한국 기업도 참여시키길 원하는 한국 측 입장과는 온도차가 상당하다.
투자 이익 귀속 문제 역시 투자 이익의 90%를 미국이 보유하겠다는 것이 미국 측 입장이고, 한국은 '이익의 90%를 미국에 재투자한다'는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한국에 앞서 무역 합의를 타결한 일본의 경우 대미 투자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투자금이 모두 회수되기 전까지는 양국이 수익을 절반씩 나누지만, 투자금이 회수되면 미국이 수익의 90%를 취하는 방식으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산물 분야 개방 두고도 한미 입장 차이 뚜렷
국내에서 민감한 이슈로 평가되는 농산물 분야에서도 미국은 한국에 '선 행동'을 요구하며 비관세 장벽 해소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관세 협상 타결 과정에서 미국에 '과채류 수입 위생 관련 양국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반면 쌀과 소고기의 경우 이번 합의 대상에서 제외됐고, 검역 체계도 기존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농산물 추가 개방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협력 강화'를 통해 사실상 중단 상태인 미국산 농산물의 검역 절차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면 사과, 배, 복숭아 등 미국산 과채류의 한국 수입 일정이 빨라져 실질적인 미국산 농산물 추가 수입 개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특히 1993년 신청한 사과 검역이 20년 넘게 현재 8단계 중 2단계인 '수입 위험분석 절차 착수'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한국이 구체적 '시간표'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 온라인 플랫폼법 도입, 구글과 애플이 요구한 정밀 지도 반출 허용과 같은 디지털 분야의 이슈들도 실무협의 테이블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韓, 한국인 구금 사태 우려 표명…비자 문제 해결 촉구도
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방미 실무 대표단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 대한 이민 단속 작전으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을 포함해 475명이 체포·구금된 사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USTR과 상무부가 이민 정책 관련 부서는 아니지만, 한국 기업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안정적 대미 투자를 위해 한국 기업 관계자들에 대한 비자 발급 확대 등 비자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통상 채널을 통해 전달한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워싱턴DC에서 진행 중인 관세 협상 후속 실무협의가 상당 수준으로 정리된다면 장관급 협의를 통해 논의 내용을 확정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후속 실무협의가 속도를 낸다면 이르면 이달 중 여 본부장이나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직접 미국을 찾아 최종 협의를 마무리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