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서 한 발달장애인이 기본 검사를 마치고 채혈하고 있다. 의료진이 수차례 상황을 설명하고 안심시키는 모습. 김지은 기자"행복했어요. 주사 맞을 때 무섭긴 했지만…" 발달장애인 김홍태(32)씨는 생애 첫 내시경 건강검진을 마친 소감을 묻자 행복이란 말을 꺼냈다. 혼자가 아닌 부모님이 함께라 가능한 대답이었다. 김씨의 아버지 김모(61)씨는 "평소에는 병원에 데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의료진이) 하나하나 도와줘 마음이 편했다"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 4일 아침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에는 김씨 같은 발달장애인과 가족 20여 명이 특별한 나들이를 위해 모였다. 지앤엠글로벌문화재단 기금으로 푸르메재단과 산하 복지관 세 곳, 서울의료원이 공동 주관한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 사업은 의료 시설과 사회적 인식 부족 등을 이유로 건강검진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과 그 가족의 건강 관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올해 처음 진행됐다.
자폐 스펙트럼이나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낯선 환경을 불편해한다. 불편함은 두려움이 돼 종종 돌발행동으로 이어진다. 체중이나 키, 시력 등 기본적인 검사도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들기 마련이다. 서울의료원은 이날 오전 8시 검진을 통째로 비우고 장애인 눈높이에 맞춰 검진 순서와 동선을 바꿨다. 주삿바늘 자극을 최대한 나중에 맞도록 채혈을 내시경 직전 순서로 넣는 식이다. 2주 전쯤에는 각 복지관에서 사전 예행연습도 했다. 발달장애인들에게 검진 절차와 주의 사항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한다.
이날 오전 8시 20분쯤 의료원 안에 울려 퍼지던 '띵동' 소리가 멈춘 것도 의료진의 빠른 판단에서 나온 조처였다. 장애인이 방해 요소를 최대한 없애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검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환복도 거부하던 오모(26)씨는 어머니의 설득으로 2시간 만에 기본 검진과 골밀도 검사, 채혈까지 진행하고 귀가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전승완(30)씨 어머니는 "같이 검진을 받아서 엄청 좋다"며 "건강검진 후 쓰러진 적도 있었다. 오늘은 승완이도 많이 편안해하고 나도 옆에 있을 수 있었다"고 웃어 보였다.
이날 의료진이 한 발달장애인의 위 내시경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모습. 김지은 기자발달장애인 절반은 건강검진을 받지 못한다.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통계를 보면 2023년 발달장애인 수검률은 54.6%에 불과했다. 전체 장애인 수검률 63.5%보다 10%포인트나 낮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8년째 50%대에 머물러 있다.
비장애인보다 질병을 일찍 발견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병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국민 평균 기대수명은 83.5세이지만 지적장애인은 57.8세, 자폐성 장애인은 28.1세에 그쳤다. 발달장애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인데, 암 검진 수검률은 30%대다.
전문가들은 검진 기관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의료원 이현석 의료원장은 "전국 100여 개 병원이 장애인 검진 기관으로 지정돼 있지만 서울만 보더라도 실제 2곳만 운영되고 있다"라며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나 구로, 은평에서 찾아오는 것은 쉽지 않다. 민간 병원도 장애인 검진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푸르메재단 관계자는 "인프라 개선도 필요하지만 의사소통 등 장애인이 실제 검진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번처럼 검진 동선과 금식 시간을 최소화하고 의료진의 의사소통 노력이 필수"라는 것이다. 서울의료원은 내년에도 장애인과 보호자 건강검진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