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1980년대 에로영화가 탄생하는 충무로를 배경으로, 어두운 현실에 맞서는 톱스타 정희란(이하늬)과 신인 배우 신주애(방효린)의 이야기를 그린다. 넷플릭스 제공이 장면만큼은 반드시 담아내고 싶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 후반부에서 정희란(이하늬)과 신주애(방효린)가 말을 타고 광화문으로 가는 장면에 대해 이해영 감독은 특별한 의도를 전했다.
"원작 영화 '애마부인'(1982)에서 여성이 탈의하고 말을 타는 장면이 시그니처인데, 그 이미지를 정반대로 전복시키고 싶었죠. 이 모습을 담기 위해 '애마'가 존재했어요."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 "1980년대 당시 광화문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아직도 남아있던 때"라며 "권위적이고 남성적인 시대에 두 사람이 무협 영화처럼 말을 타고 역동적으로 달려가는 모습 하나만으로 '애마'라는 주제를 드러낸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시리즈 '애마'. 넷플릭스 제공많은 작품 중에 '애마부인'을 모티브로 선택한 이유도 있다.
이 감독은 "당시 '애마부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아이들까지 키득키득 웃을 정도로 위력을 가진 영화 제목이었다"며 "영화가 개봉한 1982년은 3S 정책의 일환으로 통행금지가 해제된 시기였다. 이 상징성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애마'는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기획된 게 아니었다. 이 감독은 첫 연출작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2006)가 끝난 이후 영화 '애마'의 시놉시스를 정리했지만, 장편 영화로 풀어내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무리 해도 2시간 분량으로 압축되지 않았다"며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가 세상이 달라지고 매체도 다변화되면서 시리즈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떠올렸다.
"폭력적인 시대…대선배 감독 연락와 칭찬해 줬죠"
이해영 감독은 4화에서 신주애가 뛰는 장면에 대해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순간이 있었으면 했다"며 "이전까지 주애가 모멸감도 겪었는데 약간 정화의 시간 같은 느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이해영 감독은 '애마'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1980년대 충무로의 모습을 취재했다. 그는 원로 영화인들과 인터뷰하며 당시 상황을 직접 전해 들었다.
"생각이상으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시대였어요. 너무 험해서 작품에 다 담으면 불편할 거 같았어요. 톤다운 시킨 게 지금의 수위죠."
작품 공개된 뒤에는 한 대선배 감독의 연락도 받았다. 그는 "감독님께서 전화를 달라는 문자를 주셨다"며 "처음에는 긴장하며 연락을 드렸는데 선배 감독님이 너무 잘 봤고, 1980년대 충무로를 훌륭하게 그려줘서 고맙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배우 섭외 과정에 대한 뒷얘기도 전했다. 특히 극 중 신주애 역을 맡을 배우를 찾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독립영화, 단편영화에서 활동했던 친구들까지 2500명 정도 본 거 같아요. '늘 배우 복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나타나지 않아서 '이제 배우 복이 끝났다'고 낙담까지 할 정도로 지난하고 긴 과정이었죠."그러면서 "방효린 배우는 오디션 끝물에 드라마틱하게 만났는데 신주애와 싱크로율이 딱 맞아 떨어졌다"며 "자신만의 감정을 밀도 있게 연기하더라. 굉장히 감격스러웠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제공내성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조현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감독은 "말수가 적고 잔잔해 보이지만, 예전에 찍던 단편영화를 보면 에너지를 파괴적으로 발산하는 모습도 있다"며 "잔잔함과 폭발력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라 '작품을 어떻게 준비했으면 하느냐'라고 제게 물어 '그냥 오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하늬와 진선규 섭외에 대해선 "이 작품을 다시 꺼내 시나리오화 할 때 첫 번째 조건은 이하늬였고, 이 생각밖에 안했다"며 "진선규는 영화 극한직업(2019)에서 이미 이하늬 배우와 호흡을 맞춘 커플로 잘 알려졌지만, 이번 작품에선 저질스럽고 더러운 구중호 역을 충분히 소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안소영 선배님 꼭 모시고 싶었어…희란과 주애 여정 마침표 찍고팠죠"
이해영 감독은 극 중 신주애가 받은 100만 원 지폐 종이학에 대해 "실제 지폐 크기로는 종이학이 잘 접히지 않는다"며 "약간 비율을 바꿔서 만들어 봤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이해영 감독은 1980년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필름 느낌의 색 보정과 함께 고전적인 기법을 작품에 녹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장면은 2화에서 정희란이 권도일(김종수) 감독에게 달려가는 모습이다.
그는 "옛날 영화 초입부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면 좋을 것 같았다"며 "60~70년대의 클래식한 영화처럼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정희란의 장면에선 지금은 쓰지 않는 빠르게 줌하는 기법을 활용했다"며 "두 사람이 포옹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정사로 넘어가는 장면에선 툭 단절되는 느낌을 주는 기법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노출 수위에 대해서도 수개월 동안 고민했다. 그는 결국 영화 '애마부인'을 기준점으로 삼았다.
"놀랍게도 영화를 지금 보시면 깜짝 놀랄 정도로 아무런 노출이 없어요. 당시 검열때문에 성애 묘사가 불가능한 시대였어요. 작품 수위는 '애마부인' 정도예요."이어 "좀 더 노출 수위를 높게 잡는 건 월권인거 같았다"며 "방효린 배우에게는 모든 장면을 사전에 설명하고 콘티를 공유해 어디까지 보여줄 거라는 걸 선명하게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좌측부터 안소영, 방효린. 넷플릭스 제공이 감독은 끝으로 안소영이 극 중 대종상 공로상 시상자인 방연자 역으로 특별 출연한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존경과 응원의 마음으로 선배님을 모시고 싶었어요. 몇 개월 고민 끝에 이 역을 선배님께 드리기 위해 새롭게, 정성껏 쓰게 됐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응원하는 마음을 더 잘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죠."그는 "선배님이 정희란과 신주애가 걸어왔던 여정의 마침표를 찍어주시면 큰 힘이 될 거 같았다"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도 될 거 같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사실 거절하면 어찌할지 겁도 났다"며 "꼭 모시고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선배님이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고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한편, 6부작으로 구성된 '애마'는 최근 공개 이후 넷플릭스 국내 비영어 TV쇼 부문 톱10 시리즈에 오르며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