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좀비딸' 필감성 감독. NEW 제공※ 스포일러 주의 어느 날 딸이 좀비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좀비가 되어 버린 내 딸이 춤도 추고, 어쩐지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 할머니의 효자손에는 두려움마저 느낀다. 함께 갔던 놀이동산에서 사줬던 추로스를 기억한 좀비딸은 "그으으으" 대신 "추~로~스"를 발음한다. 어쩌면 좀비가 되어 버린 딸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아빠 정환은 좀비가 된 딸 수아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기 원작 웹툰을 스크린에 옮긴 '좀비딸'은 한 편의 동화로 재탄생했다. 그 안에는 아기자기한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고 감동도 있다. 가끔 스릴과 공포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동화의 미덕은 해피엔딩이다. 영화 '좀비딸'은 상업영화이자 동화로서 원작과 다른 엔딩의 길을 간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화 '인질'(2021)로 데뷔한 필감성 감독은 '좀비딸'을 통해 코믹 드라마란 맞춤옷을 입고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이처럼 '좀비딸'에는 그의 취향과 기억, 그리고 원작을 향한 마음이 담겼고, 그 결과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며 순항 중이다. 영화 개봉 전, 필감성 감독을 만나 지금의 '좀비딸'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 '좀비딸' 스틸컷. NEW 제공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같은 '좀비딸'
▷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다 보고 난 후 든 생각은 서정적이고 사랑스러운 동화책의 마지막 장을 잘 넘겼다는 것이었다. 원작을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미지는 무엇이길래 지금의 톤앤매너로 영화를 연출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필감성 감독(이하 필감성)> 원작을 처음 덮고 생각한 게, 정말 사실적인 터치의 동화로 만들고 싶었다. 동화책 보는 느낌이랄까.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동화를 보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가위손' 같은 현대적인 동화라고 할까? 그 느낌을 꼭 지키고자 노력했다. 처음 채경선 미술감독님을 만나서도 동화책 느낌으로 만들고 싶다고, 색감도 그렇고 따뜻한 이야기 톤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인질'도 봤지만, '좀비딸'을 보면서 감독이 맞춤옷을 입었다, 하고 싶은 걸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코믹 드라마,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나?
필감성> 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알고리즘을 보면 스릴러와 코미디가 같이 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선택을 하게 되고, 또 너무 한쪽으로 가는 것보다 섞여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인질'에도 은근히 코미디를 시도했는데 많이 몰라 주셨지만….(웃음) '좀비딸' 안에서도 좀비의 쫄깃한 스릴도 존재해야 하기에 그런 에너지를 넣고자 했다. 예측 불가한 에너지가 계속 존재했으면 해서 따뜻한 코미디지만, 스릴러를 좋아하는 성향도 조금씩 반영된 것 같다.
▷ 원작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지점 중 하나가 엔딩 아니었을까 싶다. 상업영화라는 틀 안에서 적절한 엔딩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엔딩에 이르기까지 어떤 질문들을 던졌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필감성> 이 영화가 가진 주제는 '과연 좀비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란 질문이다. 좀비가 아니라 어떤 재난이 있더라도 이겨내고 극복해 내는 힘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정환이 그런 일을 겪었을 때 이겨내는 건 사랑일 거고, 그게 주제를 지키는 일이라 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의 엔딩이 생각났다. 그래야 주제에 걸맞은 귀결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 '좀비딸' 현장 비하인드 스틸컷. NEW 제공 'No.1'부터 놀이동산의 추로스까지
▷ 밤순의 집은 정말 동화 속에 나오는 집 같았다. 은봉리를 찾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은 무엇이었으며, 밤순의 집을 영화 속 형태로 만들어 나갈 때 콘셉트는 무엇이었나?
필감성> 원작은 산촌인데, 난 어촌의 이미지를 선택했다. 여름 방학 할머니 집에 놀러 갔을 때 느낌, 힐링하는 느낌이 들길 바랐다. 그리고 평화로운 어촌 마을에 좀비가 숨어 있는 이미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바닷가였으면 한 거다. 또 하나 내가 요구한 조건이 마루에 앉았을 때 오션 뷰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장소 섭외팀이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다행히 남해에서 발견했다. 우리가 직접 집을 짓고 소품 하나하나 다 마련했다.
그리고 주변엔 집이 별로 없어야 고립돼 보이고 좀비가 된 딸을 숨겨놓을 수 있었다. 그런 여러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다. 그걸 이루는 가장 주요한 키콘셉트는 역시 동화책이었다. '옛날 옛적 바닷가 마을 빨간 지붕의 예쁜 집에 좀비 딸 한 명이 숨어 있었다'는 느낌으로 영화가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영화 '좀비딸' 스틸컷. NEW 제공 ▷ 가사를 생각해 보면 이야기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 세대에게 익숙한 노래는 아니다. 보아의 'No.1'이 어떤 지점에서 '좀비딸'을 더 빛나게 해줄 노래라 생각해 선곡했나?
필감성> 너무 잘 맞는 노래라 생각한 게, 발랄한 느낌이지만 슬픈 멜로디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가사, '변한 그를 욕하지 말아 줘' 'You're still my No.1' 'Want you back in my life, I want you back in my life' 등의 가사가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병실 장면에서도 'I want you back in my life' 가사가 계속 나온다. 그런 걸 적재적소에 넣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리는 안무 역시 영화에 되게 잘 맞다고 생각했다. 보아님이 거절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다.
▷ 원작에 없던 것 중 하나가 놀이동산 장면이다. 각색 과정에서 놀이동산 에피소드를 떠올린 이유 그리고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필감성>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딸이 어릴 때 츄러스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거들떠보지도 않고 좋아했던 기억을 부정하더라. 그래서 그게 되게 신기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은데, 그 또한 내 딸이니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에게는 중요한 계기였기에 그걸 넣은 거다. 또 기억이 되돌아오는 중요한 장소로서 축제성이 필요했다. 발화되는 불꽃놀이 등 말이다. 정환이 남들은 다 아니라고 세상이 등질지언정 자기는 끝까지 해내려고 한다. 세상이 다 축하해주는 게 필요해서 놀이동산으로 표현했다.
영화 '좀비딸' 현장 비하인드 스틸컷. NEW 제공 토르 경호, 연기 천재 금동이…배우들의 무해한 앙상블
▷ 저항 없이 터진 장면 중 하나가 윤경호 배우의 토르 코스프레 아니었나 싶다. 시나리오에서도 원래 토르 코스프레였는지 궁금하고, 그 장면에 윤경호 배우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필감성> 대본에서는 할리퀸이었다. 할리퀸만 있는 게 아니라 토르, 엘사 등 후보들이 있었다. 윤경호 배우가 감독이 설정한 건 다 해내겠다면서도 내심 걱정을 했다.(웃음) 배우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토르의 에너지가 더 맞을 거 같아서 토르로 바뀌게 됐다. 그래서 윤경호 배우가 나한테 감사하다면서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웃음)
공교롭게 그게 윤경호 배우의 첫 촬영이었다. 토르 분장을 하고 나타나니 너무 충격적인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더라. 분장팀에게 건성으로 하지 말고, 정말 누가 봐도 '저렇게까지 열심히 했다고?'란 느낌으로 하자고 했다. 가발도 굉장히 고퀄리티다. 다들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고, 내 생각보다 잘 어울려서 흡족했다.
영화 '좀비딸' 현장 비하인드 스틸컷. NEW 제공 ▷ 사실 '좀비딸'이 영화로 나온다고 했을 때 가장 기대되면서도 걱정됐던 캐릭터가 고양이 애용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정말 너무 사랑스러웠다.
필감성> 애용이는 '좀비딸'의 정체성이라 생각했다. 나도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원작처럼 갑자기 걸어 다니거나 말하려면 실사의 톤 역시 그쪽으로 맞춰져야 해서 그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내게 내려진 답은 실사였다. 그런데 고양이는 훈련이 어려운 동물이라 주위에서 우려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집사다. 우리 집 고양이도 엄청 개냥이라서 이런 아이를 어디서 또 데려올 수 있을 거라는 근자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는데, 캐스팅만 잘하면 보란듯이 잘해내고 싶었다. 최종적으로 애용이 역에 치즈 고양이인 금동이를 선발했는데, 다행히 너무 잘해줘서 쇼파에서 TV 보는 장면 등 처음에 CG로 하려던 장면도 애용이의 연기로 실사로 촬영했다. 그 친구가 너무 능청스럽게 해내니까 스태프들도 다 놀랐다.
영화 '좀비딸' 스틸컷. NEW 제공 ▷ '좀비딸'의 또 다른 미덕 중 하나가 연기 앙상블인 것 같다. 하나같이 대단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합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모든 장면이 그렇겠지만,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시너지가 더 좋았던 장면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필감성> 사실 작품의 배우가 다 좋은 평가를 받는 게 감독으로서 가장 행복한 지점이다. 원작도 그렇고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가 정부가 사살을 결정했을 때 정환이 삽을 들고 수아를 직접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못하고 결국 수아를 끌어안고 운다. 그러다 갑자기 코미디로 바뀐다.
이처럼 슬픔과 코믹을 넘나드는 게 '좀비딸'을 연출하기로 하게 된 가장 큰 계기다. 웃기다 울리고 다시 웃기다 울린다. 이걸 한 신 안에서 해보고 싶었다. 사실 말이 쉽지, 배우들과 같이 해내야 하는 부분인데, 배우들이 그걸 너무 절묘하게 잘 해내서 그때 내가 박수를 막 치면서 너무 좋아했다.
▷ 원작을 본 팬들과 원작을 안 본 예비 관객들에게 '좀비딸'이 왜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인지 넘버원(NO.1) 포인트를 알려달라.
필감성> 주말 무대인사에 관객분들이 꽉 차 있는 것도 좋았지만 전 연령층이 있는 게 정말 반가웠다. 3대가 왔다는 피켓을 든 분도 계셨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무해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좀비가 나오지만 웃음과 감동이 잘 어우러졌다고 말씀해 주셔서 무척 기뻤다. 극장에서 다 같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나오니 반갑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도 있다. 관객분들께서 '좀비딸'을 통해 오랜만에 극장의 매력을 느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