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류영주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비상계엄 숨은 공범 찾아낼까…내란특검이 맞춰야 할 퍼즐들 ②김건희 의혹 '총정리' 특검…양평道·인사개입 '쟁점화' 주목 ③채상병 특검 '尹 격노설' 실체 밝힐까…진실 은폐 규명도 관건 (계속) |
"누가 진실을 은폐하는지 다 나와 있어서 그 부분만 밝히면 된다." 채상병 특검을 진두지휘하게 된 이명현 특별검사(군법무관 9회)는 지명 후 처음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특검의 핵심을 '거짓말 규명'으로 정리했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과 그 반대편에 선 당시 군 수뇌부들이 수사외압과 항명이라는 정반대 주장으로 맞서는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진실 규명의 대상은 크게 3가지다. △채상병 사망 사건 관련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등 범인도피 의혹 △임성근 사단장 구명로비 의혹이다. 수사외압의 시작이자 범인도피 행위의 주체, 피의자 구명 로비의 대상 모두 윤 전 대통령으로 지목되는 만큼 특검 수사도 곧바로 윤 전 대통령을 향해 갈 전망이다.
'VIP 격노'로 수사결과 바뀌었나…규명 대상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왼쪽)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윤창원 기자채상병 사망 초동수사를 맡은 해병대 수사단의 박정훈 대령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 총 8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에 보고했다.
이 전 장관이 결재하면서 조사기록은 경찰로 넘어갈 예정이었지만, 이 전 장관은 돌연 입장을 바꿔 사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그러나 박 대령은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했고, 이후 보직해임에 이어 항명죄로 수사를 받게 됐다.
박 대령은 '수사 뒤집기'가 시작된 지점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 이른바 'VIP 격노설'로 주장한 바 있다. 초기 조사 결과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냐'며 격노했다는 이야기를 김계환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첩 보류 지시가 있기 전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용산 대통령실 유선전화(02-800-7070)로 걸려온 전화를 받아 168초간 통화했고, 해당 번호가 대통령 집무실과 부속실 등에서 사용된다는 점을 밝혔다.
유선전화로 이 전 장관과 통화한 주체가 윤 전 대통령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그로부터 이틀 뒤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휴대전화로 네 차례 직접 연락한 사실은 드러났다. 경찰로 넘어간 자료를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하고 국방부가 박 대령을 보직해임, 항명죄로 입건했던 당일이다.
특검은 ①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하고 ②경북경찰청으로 넘어간 수사기록을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 ③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을 재검토한 후 혐의자를 기존 8명에서 2명으로 축소 적시한 것이 부당한 수사외압인지, 윤 전 대통령의 의지였는지, 누가 공모했는지 등을 집중 수사할 예정이다.
"尹과 통화 안했다" 거짓말한 이종섭 도피 의혹
연합뉴스2023년 7~8월 뉴스를 달구던 채상병 사망과 수사외압 의혹은 이듬해 3월 다시 한 번 논란이 된다.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공수처 수사 대상이던 이 전 장관을 윤 전 대통령이 호주대사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약 한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 전 장관은 임명 사흘 후인 3월 7일 공수처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고 10일 호주로 출국했다. 그러나 도피성 임명 논란이 커지자 출국 11일 만에 귀국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 전 장관이 사건과 관련해 여러 차례 거짓말을 한 사실이 확인된 상황이었던 만큼 윤 전 대통령의 인사가 더욱 의심을 샀다. 이 전 장관은 수사외압 사건 당시 윤 전 대통령과 통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통신기록 조회를 통해 네 차례 통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신원식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와도 통화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국회에서 답변했지만, 해당 기간 두 사람은 13차례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고발됐다는 것만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공직 인사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검은 이 전 장관의 도피성 출국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법무부, 외교부 등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등 불법행위가 있었는지를 입증하기 위해 조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임성근 구명에 김 여사 측근 나섰나…남은 의혹들
윤석열 전 대통령 내외. 박종민 기자한편 채상병 사망 관련 해병대 수사단에서 혐의자로 꼽은 임성근 전 사단장을 구명하는 데 김건희 여사까지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특검법상 수사 대상으로 적시됐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김 여사의 계좌관리인으로 나타난 이종호씨가 2023년 8월 임 전 사단장의 사표 소식과 관련해 지인에게 "절대 사표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를 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통화내용이 공개되면서 불거진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씨가 해병대1사단을 방문해 찍은 기념사진과 당시 참석자들에게 돌린 임성근 전 사단장 명의의 초청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이씨의 부대 방문 사실은 물론 모르는 사람이라고 반박하는 등 구명 의혹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외에 수사외압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조력한 공범 의심자들에 대해서도 특검이 폭넓게 수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김용원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겸 군인권보호관은 2023년 8월 국방부의 수사외압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가 일주일 만에 입장을 바꿨다. 이후 김 상임위원이 당시 이 전 장관과 통화한 사실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직접적인 수사 압박을 넘어 관련 의혹을 은폐하고 무마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진행됐는지, 부당한 명령체계가 어떤 식으로 작동했는지 등도 특검의 정리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