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개회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12·3 내란사태로부터 6개월 만에 출범한 내란특검에 대해 회의론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다. 기존 수사를 재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비상계엄의 준비와 사후 수습 과정에 조력한 숨은 공범들의 책임을 규명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계엄 못 막고, 계엄해제 회피한 장관·의원들…공범 될까
전날(1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내란특검법은 12·3 비상계엄을 통한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 범죄와 그 과정에서 벌어진 국회 통제 및 봉쇄, 군·경 물리력을 동원한 국회 표결 방해 시도 등 11개의 수사대상 혐의를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은 수사가 진행돼 재판으로 넘어가기도 했지만, 아직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혐의도 상당수다.
우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일부 드러난 계엄 당일 국무위원들의 행태가 더 적나라하게 규명될지 주목된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에 앞서 국무회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12·3 저녁 8시 무렵까지 국무위원 6명(김용현·박성재·이상민·김영호·한덕수·조태열)과 조태용 국정원장만 용산 대통령실로 불렀다.
생방송으로 계엄 선포를 예정한 밤 10시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당시 이들 7명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결심을 되돌리지 못했다. 오히려 한덕수 전 총리는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를 거쳐야 한다며 개의 정족수 11명을 맞추기 위해 다른 국무위원들도 소집했다. 계엄을 멈출 기회가 있었던 국무위원들이 상황을 묵인·방조하거나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시도한 것 아닌지 특검이 들여다보게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도 본격적인 조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계엄 해제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권 의원들이 어렵게 국회 경내로 진입하던 때, 국민의힘은 의원총회 소집 장소를 국회에서 여의도 중앙당사로 변경했다가 다시 국회 예결위회의장으로 변경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이에 추경호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국회 계엄해제를 방해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앞선 경찰 조사에 따르면 추 전 원내대표는 계엄 선포 1시간 후인 밤 11시 23분쯤 윤 전 대통령과 한차례 통화했고, 11시 26분쯤엔 나경원 의원이 윤 전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해제 표결과 관련해 추 원내대표 등에 어떤 지시를 했는지, 계엄해제를 방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등이 수사대상이 될 전망이다.
안가 4인 회동, 경호처 수상한 행적…무엇을 대비했나
계엄 해제 이후 12월 4일 저녁 7시30분경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가에서 이뤄진 이상민 당시 행안부 장관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민정수석, 이완규 법제처장의 회동도 규명 대상이다.
모두 전직 판·검사 출신이자 검·경 수사에 개입하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던 이들이 윤 전 대통령을 위한 법률대응 방안을 모색하거나 수사를 방해하려 한 것인지 특검이 조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전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모임 이후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연합뉴스윤 전 대통령이 회동 소집을 지시했거나 내용을 보고 받았는지, 추가 참석자가 있는지, 회동 종료 이후 4인의 구체적인 행적 등이 수사대상이 될 전망이다.
계엄 해제 후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경호처도 수사 대상이다. 특히 경호처에서 관리한 비화폰을 통해 12·3 비상계엄 관여자들의 소통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전례와 다른 비화폰 불출 배경이나 비화폰 데이터 삭제 지시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 여부에 대한 규명이 더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검사 출신으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대리인단에 참여한 이금규 변호사는 "현재까지 수사가 군·경 간부와 지휘관, 계엄 당일 출동 병력 위주로 진행됐는데 국무회의에 참석해 비상계엄 문건을 받고 실행하려 했던 사람들이나 안가회동 당사자, 대통령실 인사들에 대해서도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상민 전 장관은 탄핵심판에서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 등에 대한 단전·단수 관련 문건을 '멀리서 얼핏 봤다'고 진술하기도 했다"며 "계엄 가담 정도를 확실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북한 연루설 확인 넘어…'내란 백서'로 재발방지 해야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3대 특검법'(내란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채해병 특검법)과 검사징계법이 상정되고 있다. 윤창원 기자이번 내란특검법은 국회 통과를 앞두고 수사대상에 '외환죄'도 포함시켰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 선포 전 김명수 합참의장에게 '북에서 오물풍선이 날아오면 경고사격 후 원점을 타격하라'는 언급을 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며 제기된 의혹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에서 '무인기 침투 및 오물 풍선 타격 지시', '북한 공격 유도' 등의 메모가 발견되기도 했다. 외국 세력을 끌어들여 전쟁을 유발케 하고 이를 비상계엄의 근거로 삼으려 했는지 등이 수사선상에 오를 예정이다.
외환유치죄는 법정형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며, 미수에 그치더라도 처벌한다. 또 예비·음모·선동·선전의 경우도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지는 중범죄다. 다만 외환유치죄는 외국 또는 외국인과 통모해 전쟁의 빌미를 마련하는 것이 성립 전제다. 노 전 사령관의 메모 내용이 단순 낙서 이상의 구체성을 갖추고 외국과 합세한 정황이 있는지,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실행을 위한 준비단계를 밟았는지 등을 수사팀이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삼청동 안가 모임에 참석한 박성재 전 장관에 대한 수사와 함께 다른 검찰 수뇌부의 비상계엄 사전 인지 여부나 계엄해제 후 수습작업 관여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 12·3 내란사태 발생 닷새 만이었던 지난해 12월 8일 새벽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돌연 검찰에 자진 출석해 심야조사를 받은 바 있다.
한편 단순히 책임자들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것을 넘어 불법한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전 과정을 철저히 기록으로 남기는 것 역시 내란특검의 또 다른 임무로 보는 시각도 있다.
비상계엄 선포에 반발해 사직한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BS)의 항공 사고 조사 과정을 보면, 책임자 처벌은 물론이고 다시 비슷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라며 "내란특검도 내란의 시작과 진행, 막지 못한 이유 등을 냉정하게 논란의 여지없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겼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