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우경화 속 민주주의 지킨 한국, 그 의미와 과제[오목조목]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0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지금 이 순간 뜨거운 소식을, 오목교 기자들이 오목조목 짚어 봅니다.

전 세계가 우경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12·3 불법 계엄을 시작으로 탄핵과 조기 대선을 지나 '국민주권정부'가 탄생했습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뒤흔든 사건에서도 국민은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새 정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위기는 존재하는 만큼, 민주주의를 공고히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2024년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탄핵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2024년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탄핵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지난해 12·3 불법 계엄을 시작으로 탄핵과 조기 대선을 지나 '국민주권정부'가 지난 4일 탄생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뒤흔든 사건에서도 국민은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새 정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위기는 존재하는 만큼, 민주주의를 공고히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전 세계 우경화 속 한국 민주주의 위기 극복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5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자유 대한민국 재건"과 "반국가 세력 척결"을 내세우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이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다.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내란 국면은 곧바로 탄핵 국면으로 바뀌었고,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8명의 재판관 만장일치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인용했다. 헌법재판관들은 당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윤 대통령은 파면됐고, 공직선거법에 따라 60일 이내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지난 6월 3일 치러졌다. 내란을 종식하고 계엄을 심판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던 조기 대선에서 국민은 이재명 대통령을 차기 대통령으로 낙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진입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이 과정과 결과가 의미 있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우경화되며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한국은 국민의 힘으로 내란을 종식하고 민주 정부를 세웠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로스앤젤레스(LA) 시위대에 군대까지 동원한 강경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비상계엄 선포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유럽도 극우 정치세력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독일은 지난 2월 총선에서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된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AfD)이 제1야당이 됐고, 이탈리아는 2022년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가 세운 국가파시스트당(PNF)의 후신이라는 '이탈리아형제들'(Fdl)이 집권당이 됐다. 지난 5월 포르투갈 총선에서는 극우 성향 '셰가'가 50년 만에 양대 중도 정당 대결 구도를 깨고 제1야당 지위를 탈환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세계정세 속에서 한국이 민주주의를 회복한 데에는 역사적인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윤 전 대통령이 취한 불법적인 계엄 선포가 우리가 극복한 군부독재를 너무 정확하게 떠올리게 한 측면이 크다"며 "1987년 민주화의 경험을 매체, 교육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다시 떠올려 왔다. 이럴 때 거리로 나가서 막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훨씬 많다. 즉, 87년의 학습효과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1987년 이후 자신의 힘으로 평화롭게 정권을 교체해 본 경험이 있는 세대가 아직도 활발하게 운동하고 있다"며 "이 사람들이 세대를 넘어서서 광장에서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 존중하고, 배우고, 자기 세계관을 확장했다. 이런 게 서구 다른 어떤 나라도 가질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저항하면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있고, 또 실제로 해봤다. 즉 정치적 효능감이 있다"며 "대한민국 사람은 존재 자체가 더 이상 정치가 시민을 배반해선 안 되며, 배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란 걸 지속해서 정치권에 경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2024년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탄핵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2024년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탄핵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특히 이번 내란과 탄핵 정국 속 광장은 이전보다 '열린 광장'으로 변하며 다양성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발전했다. 일부 알려진 인물이 광장 무대에 나서 발언했던 박근혜 정권 탄핵 시국과 달리 이번에는 다양한 시민이 주체가 되어 무대의 중심에 섰다.
 
그중에서도 2030 여성이 K-팝 팬덤의 상징인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모습은 국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여성들은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었고, 이를 본 시민은 저마다 빛나는 물건을 들고나오며 '응원봉 시위' 문화가 확산했다. 이들은 남태령에서는 한겨울 칼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은박 담요를 둘러 '인간 키세스'라는 진귀한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이 나온 배경에는 2030 여성만의 문화와 학습된 경험이 존재한다. 이나영 교수는 "한국 K팝과 팬덤 문화 주도해 온 2030 여성은 자기가 응원하는 대상을 어떻게 응원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며 "응원 감각은 운동 감각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다. 이게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당시 2030 여성이 주도한 미투 운동, 혜화역 시위 등 운동을 계속해 왔기에 여성들은 이미 운동 감각이 몸에 배어 있다. 그 운동 감각이 살아난 것"이라며 "586세대가 진보적인 것도 몸에 각인된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연히 나오고, 나와봤으니 두려움이 없다. 이처럼 학습되어 있고, 운동적 감각도 쌓여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외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원명초등학교에 마련된 서초4동제3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윤석열 전 대통령 내외가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원명초등학교에 마련된 서초4동제3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 

민주주의 지켜냈지만…민주주의 공고화 과제

내란 이후 국민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집회 문화의 탄생과 함께 광장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12·3 불법 계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견고하지 않음을 증명한 사건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상계엄 이후 한국 민주주의를 진단한 책 '광장 이후'에서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을 '친위쿠데타'로 규정하며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 자체의 중대한 함의, 즉 87년 이후 3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매우 취약하며 전혀 '공고하지 않다'는 사실은 커다란 경종"이라고 짚었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가 지난 3월 발표한 '민주주의 리포트 2025'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179개 국가 중 41위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 아르헨티나,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의 국가에서 독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발표에서도 한국은 '민주화에서 독재화(autocratization)로의 전환이 진행되는 국가' 중 한 곳으로 꼽혔다.
 
지난 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에서도 한국은 민주주의 성숙도에서 전 세계 167개국 중 32위로 10단계 떨어졌고, 최상위 단계에서 탈락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됐다.
 
내란 이후 광장에서는 전광훈 목사 등 극우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지난 1월에는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구속 반대를 외치던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21대 대선 결과도 마냥 낙관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내란으로 인해 치러진 6·3 조기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를 득표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보이콧하고, 내란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음에도 40%가 넘는 지지를 받은 것이다.
 
신진욱 교수는 '광장 이후'에서 보수정당과 정치인이 아직도 계엄 선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거부하고 있으며, 보수정치의 중심으로 극우 사회세력이 향후 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했다.
 
서울 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월 5일 아침 서울 용산구 관저 인근 '노동자 시민 윤석열 체포대회' 농성장에서 은박 담요를 뒤집어쓴 시민들이 농성하고 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제공서울 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월 5일 아침 서울 용산구 관저 인근 '노동자 시민 윤석열 체포대회' 농성장에서 은박 담요를 뒤집어쓴 시민들이 농성하고 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제공
전문가들은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파괴하는 근본적인 토대의 원인을 분석해 바로잡고 해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민하 평론가는 "윤석열 정권이 왜곡하고 잘못 설정한 정치적인 구도를 재정렬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구도 자체를 만드는 걸 넘어서서 개헌이나 정치 개혁 등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제도나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한 발 짝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2030 남성 전체를 '이대남'이라는 틀 안에 묶어 놓고, 이들 전체를 '극우'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2030 세대를 여성은 '진보', 남성은 '보수' 내지 '극우'로 규정하며 단순화하거나 '이대남'은 '극우'로 나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혐오와 차별을 정치화해 성장한 정치인도 있다.
 
이나영 교수는 "2030 남성이 페미니즘에는 극렬하게 저항하지만, 민주주의 등 다른 영역의 설문을 넣으면 민주주의 수호에 응답하는 비율이 훨씬 많다는 보고서 내용이 있다"며 "그들의 정서를 읽어야지 하나로 묶어서 극우화됐다고 진단하고, 한쪽으로 몰아가는 방식의 진단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2030 남성이 왜 박탈감을 느끼고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는지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파악해서 2030 세대가 극우로 가지 않고, 안전한 언어로 자신의 욕구를 설명할 수 있는 장을 열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22

4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