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사기 이용계좌 통보 문자, A씨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평택시 수원지방법원 송탄등기소 근처에서 촬영한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정상적으로 중고 물품을 판매한 뒤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계좌라는 이유로 모든 계좌가 정지되는 사례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중고거래 직후 계좌가 정지됐다는 사연이 게시됐다. 작성자 A씨는 보유 중이던 금 15돈을 중고로 870만원에 판매했는데, 거래 직후 보이스피싱 연루 계좌로 분류되어 모든 계좌가 정지됐다고 밝혔다.
A씨는 "아파트 잔금 마련을 위해 금거래소보다 높은 값으로 판매할 수 있는 중고거래를 이용한 건데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신생아 특례대출로 아파트 입주할 예정이었는데 통장이 다 막혀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금 거래를 하고 왠지 모르게 증거 사진을 찍고싶어서 뒷모습 찍어놨다"며 "나이대는 20대 중반정도고 왼쪽 팔에 잡다한 타투가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어 "가족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 같아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했다.
연합뉴스이런 피해는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2년 12월 중고거래 플랫폼에 20돈 순금 팔찌를 643만원에 판매한 또 다른 피해자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이 피해자는 구매자 B씨와 직거래를 통해 팔찌를 건네고 계좌로 입금을 확인한 뒤 귀가했으나, 몇 시간 후 계좌가 정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 2023년 9월에는 서울의 C씨가 당근마켓을 통해 금목걸이를 판매한 후 중고거래 20분 만에 은행으로부터 사기 의심 연락을 받고 모든 계좌의 입출금이 정지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6월에는 배달 기사가 커피와 빵을 배달하고 요금을 계좌이체로 받은 후 보이스피싱범으로 몰려 금융거래가 정지되는 사건도 있었다.
중고거래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자금세탁 방식. 장윤우 기자범죄자들의 수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보이스피싱으로 피해자를 속여 자금을 확보한다. 이후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골드바 같은 고가 물품 중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대 이상의 물건을 골라 구매하겠다고 연락한다.
대면 거래를 통해 만나 물건을 감정한 뒤 이상이 없으면 계좌이체로 물건값을 지급한다.
표면상으론 정상적인 거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으로 물건을 구매한 것으로 며칠 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해당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선의의 판매자가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다.
최악의 경우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물건 판매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이 경우 판매자는 물건을 빼앗긴 데 그치지 않고, 물건값까지 이자를 붙여 피해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계좌의 해지 과정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로 신고된 계좌는 지급정지 처리된다.
정지된 계좌의 명의인은 보이스피싱 이용 계좌가 아니라는 사실을 소명하는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범죄 혐의가 없음을 증명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의제기를 해도 계좌 지급정지가 해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자금 세탁에 연루될 경우 사기이용계좌로 지정돼 2~3개월간 계좌 지급 정지나 거래 제한, 외화 판매대금 강제 반환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될 수 있다. 실제로 해제까지 7개월이 걸린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금융감독원은 개인 간 거래를 이용한 범죄자금 세탁 시도가 늘고 있다며 금융소비자 주의보를 내렸다.
금감원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외화 거래시 높은 환율이나 웃돈을 제안하는 경우 보이스피싱 범죄를 의심하라고 당부했다. 또 귀금속, 고가의 중고 명품 및 상품권 등도 자금세탁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유의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