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뉴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승리기념일(전승절)을 맞아 일방적으로 사흘간 휴전을 선언한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를 "또 다른 속임수"라고 비판하며 즉각적인 휴전을 거듭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러시아는 지금까지 우리의 휴전 제안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세계와 미국을 기만해왔다"며 "이제 다시 속임수를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두가 5월 8일까지 휴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면서 "이는 푸틴이 전승절 퍼레이드를 조용히 치르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겉으로는 평화를 원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국제사회를 속이고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주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퍼레이드가 아니라 인명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5월 8일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며칠만 지속돼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소 30일간의 무조건적 휴전을 거듭 제안했다.
앞서 크렘린궁은 이날 텔레그램 성명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인도주의적 고려에 따라 승전 80주년을 기념해 휴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휴전 기간은 5월 8일 0시부터 10일 자정까지다. 러시아는 5월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공휴일을 맞아 연휴에 들어간다. 푸틴의 이번 휴전 선언은 이 연휴 일정에 맞춰 이뤄졌다.
백악관은 "푸틴 대통령이 잠정적 휴전을 제안한 것으로 이해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살상을 멈추고 유혈사태를 종식시킬 항구적 휴전을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요구한 '30일 휴전' 제안을 거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브라질 매체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불법 점령 중인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의 국제적 인정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는 미국 측이 제시한 '크림반도 인정과 나토 가입 제한' 조건보다 훨씬 과도한 수준이다.
다라 마시코트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가 진정으로 협상이나 즉각적인 휴전을 원했다면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이번 조치는 5월 9일 전승절 퍼레이드를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냉소적인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일시 휴전을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달 중순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중재에서 발을 뺄 수 있다"고 경고하자 하루 만에 "부활절 30시간 휴전"을 선언한 바 있다. 미국의 압박이 있을 때마다 일시적 휴전 카드를 꺼내며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히지 않게 하려는 '임시방편' 전략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