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진환 기자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무죄 선고를 받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그간 'VIP 격노설'을 시작으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이 벌였다는 '구명로비' 의혹까지 논란도 줄줄이 불거졌다.
군사법원은 '항명' 혐의와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대령의 혐의에 대해 모두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첩 중단 명령은 정당하지 않은 명령이라고 못 박았다.
1년 6개월 만 '무죄'…'보류 명령' 명시적 아냐
사건은 2023년 7월 19일 해병대 채상병이 순직하면서 시작됐다. 경북 예천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 중 고(故) 채모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수사단장이던 박 대령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해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 민간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장관은 7월 30일 수사 결과 보고서에 결재까지 하지만, 하루 만에 돌연 이첩을 보류시킨다. 박 전 대령은 경찰에 사건에 넘겼고 보직해임이 됐다.
중앙지역 군사법원은 지난 9일 1심 판결에서 박 대령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채 상병 사건 수사기록의 경찰 이첩을 보류‧중단하라는 지시를 받고도 항명했다는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군검찰은 징역 3년을 구형했었다.
재판부는 그해 7월 31일부터 8월 1일 사이 있었던 '이첩 보류 명령'과 8월 2일 있었던 '이첩 중단 명령'을 나눠 봤다. 애초에 이첩 보류에 대해 명확한 명령이 없었고, 이어서 내린 중단 명령은 정당하지 않아 따르지 않아도 항명이 아니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기록 이첩 보류 명령을 '분명히' 했다는 진술과는 배치되는 사실들이 많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군검사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해병대 사령관이 구체적, 개별적으로 이첩 보류 명령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박 대령 측은 그간 명령이 아닌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이첩을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나 토의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이첩 중이라는 피고인의 보고를 받고서도 당황해 그 시 중단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부분과도 일관되지 않아 선뜻 믿기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병대 사령관은 8월 2일 10시경 박 대령으로부터 '이첩 중이다'는 보고를 받고도 즉시 조치를 하지 않고 50여 분이 지난 후에야 전화로 '이첩 중단' 지시를 했던 점 등으로 볼 때 김 사령관이 이첩 보류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박 대령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박 대령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왜곡해 부당한 지시를 한 것처럼 상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도 무죄 판단을 받았다. 박 대령에게 이 전 장관의 명예를 훼손할 고의가 없고, 표현 또한 가치 중립적이라고 봤다.
'이첩 중단'…목적 따져봤을 때 '부당한 명령'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진환 기자재판부는 이 이첩 중단 지시는 명령이 맞고 박 대령이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정당한 명령인가'란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2022년 7월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은 군 사망·성범죄·입대 전 범죄에 대해 민간법원이 관할하도록 한다. 이 때문에 군이 초동조사에서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사건을 민간에 이첩해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를 막고 수사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보장하려는 조치다.
재판부는 기록 '이첩 중단' 명령을 하게 된 동기와 목적, 국방부 장관 지시의 의도 등을 따져봤을 때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수사 투명성 보장과는 거리가 먼 명령으로, 해병대 사령관의 지휘·감독 범위는 수사단이 기록 이첩을 지체하거나 중단할 경우 기록을 이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중단을 명령할 권한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해병대사령관의 기록 이첩 중단 명령은 정당한 명령이라고 보기 어렵고 달리 정당한 명령이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종섭은 왜 부당한 명령했나…'윗선' 향하나
재판부는 김 사령관의 이첩 중단 명령의 배경에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부당한 외압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해병대사령관의 기록 이첩 중단 명령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단지 국방부장관의 지시를 따르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며 "국방부 장관 지시의 목적은 피고인이 7월 30일 보고한 '해병대 사단 故 상병 채수근 사망원인 수사 및 사건처리 관련 보고서'의 결과와 다른 내용으로 기록이 이첩될 수 있도록 사건인계서의 내용을 수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종섭 전 장관의 이첩 중단 지시는 이른바 'VIP 격노설'과 맞닿아있다. 2023년 7월 31일 '윤 대통령이 박 대령의 초동 수사결과를 보고받은 뒤 격노했다'했다는 'VIP 격노설' 직후 이 전 장관이 김 사령관 등에게 이첩 보류 등을 지시한 정황이 있다.
다만 재판부는 수사 외압설의 윗선이 누구인지까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이첩 중단 명령 등이 왜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해병대 사령관 등을 거쳐 내려왔는지는 추가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해당 수사를 맡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현재 '12·3 내란사태' 수사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에서는 당장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채상병 특검법' 재추진이 진행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한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측은 "사실인정 및 법리적 측면에서 수긍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임 전 사단장 측도 '박 대령은 항명이 맞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