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윤한홍 의원·명태균씨. 연합뉴스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국민의힘 중진이자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인 윤한홍 의원(3선, 경남 창원마산회원)이 구속 전 명씨를 회유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당시 후보)이 명씨에게 전화해 "내 마누라랑 장모와 통화하지 말라"고 화를 낸 적이 있는데, 윤 의원이 명씨에게 이 통화 녹취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해당 요구가 있던 시점은 윤 대통령이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는데"라고 말한 육성 녹취가 공개된 직후로, '대선 경선 이후 명씨와 연락 한 적 없다'던 대통령실의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나 여권이 몰매를 맞고 있던 때다.
윤 대통령이 명씨에게 화를 내며 결별을 선언하는 내용의 녹취가 공개되면 '명씨와 인연을 끊었다'는 대통령실 해명에 힘이 실릴 것이라 보고, 분위기 반전을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명씨가 요구한 조건과 맞지 않으면서 거래는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통령이 명씨에게 화를 낸 뒤, 다음 날에도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한 시간가량 추가 통화를 했다는 점이다. '사과 통화'엔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더욱 짙게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아 공개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윤 의원은 명씨에게 '사과 통화'는 빼고 화를 낸 부분만 공개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여기에는 '용산'의 의중이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명씨는 대가로 '불구속 수사' 등 본인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언급했다. 정부 차원에서 명씨와 '거래'를 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19일 CBS노컷뉴스는 명씨가 구속되기 전인 이달 3일 여권 핵심 관계자 A씨와 통화한 녹취를 단독 입수했다. 명씨는 A씨에게 "윤한홍이가 지금 뭘 하고 있는데, 조건을 얘기해보라고 하더라"라며 "나를 인신 구속시키지 말고, 먹고 사는 것 해결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근데 대통령이 나한테 야단치는 거를 좀 어떻게 터트려 달라고 하더라"라며 "딱 한 번 나한테 화내는, 야단치는 거를 좀 어떻게 틀어달라더라"라고 했다. 명씨는 또 "그래서 내가 (윤 의원에게) 하는 말이 그러면 딱 정리해라(라고 했다)"며 "돈 1원 받은 것도 없고, 김영선이한테 못 받은 게 1억 5천만원"이라고 덧붙였다.
윤 의원이 명씨에게 대통령이 화내는 통화 녹취를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고, 명씨는 그 조건으로 불구속 수사 등 본인에 대한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과 경제적인 지원까지 언급한 셈이다.
법원 나서는 명태균. 연합뉴스다만 거래는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명씨는 이유에 대해 "나는 음성을 터뜨리거나 뭘 터뜨린 것이 없지 않나. 여사가 (나를) 칭찬하는 것과 여사가 엘리자베스 (장례식과) 관계 없다. 그것만 (공개)한 것이지. (여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한 것이지"라며 "내가 (폭로하고) 그러면 나는 다른 놈(하고 똑같아 지는 것) 밖에 안 되는데, 거래가 되겠나"라고 말했다.
명씨는 A씨에게 "윤한홍이가 장난치면 그냥 내가 음성 다 터뜨려버릴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명씨가 이같이 말한 배경에는 당시 대통령의 육성 녹취가 '화내는 통화' 말고도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명씨는 A씨에게 해당 녹취에 대해 "한 번 (윤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와서 '우리 장모하고 우리 집사람 전화하지 마라'했다"며 "(그래서) 내가 '장모님 전화번호를 몰라요' 그랬거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다음 날에 자기(윤 대통령)가 또 사과하러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라며 "한 시간 (통화 했는데), 정권 교체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런 상황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앞서 공개된 2022년 3월 초 명씨가 또 다른 지인과 나눈 대화 녹취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당시 명씨는 지인에게 "(윤 대통령이) '명 박사, 우리 마누라하고 장모한테 전화하지 마', (내가) '장모님 전화번호 모르는데예' (그랬더니) 그 다음 날 미안하다 또 전화왔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레이스 도중 명씨에게 최소 두 차례 전화를 했는데, 한 번은 대통령이 명씨에게 화를 내며 결별을 선언했고, 다음 날 다시 전화를 해서 사과하면서 한 시간가량 통화하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한편 윤 의원은 "(대통령과의 통화 녹취를) 터뜨려 달라가 아니고, (명태균씨가)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부하고 통화하고 문자 보내고 주고 받은 거 자랑한다고 장사를 하지 않았나. 그러면 대통령께서 혼내는 전화도 했다고 우리가 들었지 않았나 국회에서"라며 "그러면 혼내는 것도 한 번 녹취를 틀어봐라. 그거는 안 하고 왜 니 좋은 것만 하느냐 그 말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통령실 정진석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명씨에게 화를 내며 끊어냈다"고 언급한 것을 보고 해당 녹취도 틀으라고 했다는 취지다. 윤 의원은 "(명태균씨 쪽) 사람들한테 맨날 너 장사하고 좋은 것만 하지 말고 대통령께서 혼냈다고 하니까 혼낸 전화도 녹취가 있을 거 아니냐 그 이야기한 것"이라며 "그걸 누가 부탁을 왜 하나 내가. 부탁한 게 아니다. 너네가 장사할거만 까지 말고 대통령한테 혼난 전화가 있다니까 혼난 전화도 밝혀라 라고 한 것뿐"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