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입법 공백을 틈타 합성 니코틴을 포함한 액상형 흡연제품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법적 규제를 받는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청소년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다.
28일 현행 담배사업법에 따르면 담배란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말한다. 이를 뒤집어 연초의 줄기, 뿌리 등을 이용하거나 합성·유사 니코틴 등으로 만든 것은 담배로 규제되지 않는다.
이같은 합성·유사 니코틴 제품들은 일반담배, 궐련형 전자담배와 달리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고, 청소년에게 팔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이에 더해 흡연 경고 문구와 그림을 붙이지 않아도 되고 담배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일종의 입법 '사각지대'인 셈인데 합성·유사 니코틴을 사용한 액상형 흡연제품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청소년이 담배를 접할 수 있는 장벽이 매우 낮은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 캡처실제로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 합성·유사 니코틴 액상과 전자담배 기기 등을 찾아보면 간단한 성인인증 절차를 거쳐 구입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성인인증조차 필요없는 곳도 있었다. 무인 자판기를 활용한 판매점도 적지 않다.
합성·유사 니코틴 흡연제품을 판매하는 A사의 경우 1200mg의 고농도 합성 니코틴을 별다른 제약 없이 해외 배송으로 팔고 있었다. 세관에 의해 물품 압수 및 폐기됐을 경우 재발송을 해준다고 홍보하기까지 한다. 니코틴의 치사량은 50~100mg이다.
청소년 담배 입문에 큰 역할 중인 '액상형 전자담배'
중간에 위치한 필기도구 형태의 전자담배. 네이버 블로그 캡처지난 3월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3년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 및 청소년건강행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청소년(중1~고3) 남학생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3.8%로 나타났다. 전년(4.5%)보다는 소폭 감소했지만 2020년 2.7%, 2021년 3.7%였던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적지 않은 수치다. 여학생의 경우 2022년 2.2%에서 지난해 2.4%로 증가했다.
이어 7월 발표된 '청소년 건강 패널 추적조사 결과'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로 처음 흡연을 시작한 학생의 60% 이상이 현재는 일반담배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흡연의 '관문'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청소년들의 담배제품 중복 사용률은 궐련형 및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에서 높게 나타났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경우 중복 사용률은 98.5%였고, 유형별로는 3종 중복사용(일반담배+액상형 전자담배)은 63.5%, 2종 중복사용(일반담배)은 35.0%로 나타났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중복 사용률은 73.8%로 3종 중복사용(일반담배+궐련형 전자담배)은 26.6%, 2종 중복사용(일반담배)은 47.2%로 조사됐다.
관련 업계에선 청소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휴대하기 편하도록 필기도구, 손목시계, USB 메모리, 립스틱 등 다양한 형태로 전자담배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합성 니코틴' 시장 규모 파악도 어렵다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 제세부담금 추정치.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실 제공합성 니코틴을 둘러싼 입법 공백 문제는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8일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이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식약처, 전자담배협회에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에 부과하지 못한 제세부담금은 4년간 3조 389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전자담배용 합성 니코틴 용액(희석제품)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제세부담금 추정치에 합성 니코틴 원액에 대한 제세부담금 추정치를 더한 금액이다. 합성 니코틴 원액 추정치는 관세청에서 제출한 수입량, 전자담배협회에서 제시한 희석비율, 담배수입업체 관계자들의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분석한 수치다.
추정치만 제시된 까닭은 관련 법령이 없다 보니 실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국내 시장 규모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합성 니코틴 수입량을 통해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합성 니코틴 수입 현황.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실 제공28일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관세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수입된 합성 니코틴은 316t으로 확인됐다. 이는 작년 연간 수입량(216t)보다 46.3% 증가한 것이다.
합성 니코틴 수입량은 2020년 218t에서 2021년 98t으로 줄었다가, 2022년 121t 등으로 증가했다. 올해 수입량은 최근 5년 새 가장 많다. 개정안이 발의되기 시작한 올해 7월부터는 합성 니코틴 수입량이 월평균 51.7t으로 직전 월평균(26.8t)보다 92% 급증했다.
박성훈 의원은 "여야 할 것 없이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 보니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규제와 과세를 회피하기 위해 합성 니코틴을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관련 법의 조속한 통과는 물론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담배를 새로 규정하자' 입법 시도는 있지만 통과는 글쎄…
현재 국회에는 합성 니코틴을 포함해 연초의 줄기, 뿌리 등을 원료로 하는 것도 담배로 규정하는 개정안이 모두 6건 발의된 상태다. 다만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실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합성 니코틴 등을 담배로 규정하지 않는 현행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2020년에도 담배의 정의를 확대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해당 개정안은 연초의 잎 뿐만 아니라 줄기, 뿌리 등을 이용하거나 니코틴으로 만든 담배도 규제할 수 있도록 담배의 정의를 수정하고, 니코틴을 이용해 만든 유사 담배를 흡연 및 흡입 용도로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개정안은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 5차례 상정됐지만 합성 니코틴의 유해성과 관련한 논쟁 끝에 통과되지 못하고 21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일부 개정안은 발의 후 15일, 전부 개정안·제정안은 20일의 숙려기간이 지나면 상정할 수 있지만 제22대 국회에서 7월부터 발의된 개정안들 중 단 한 개도 현재 소관위에 상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