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에 돈 거는 '토익펀딩' 성행…스펙 광풍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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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시내의 한 토익(TOEIC) 학원가는 겨울방학을 맞은 대학생들로 북적댔다.

학생들은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수업 시작 전부터 앞 다퉈 교실로 밀려들었다.

새해와 아울러 방학이 되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영어 공부에 다시 열을 올리는 것.

지난해까지 소홀했던 토익 성적을 조금 더 올리고자 학원을 등록했다는 최모(24) 씨도 "900점 이상은 맞아 둬야 취업 시장에서 밀리지 않을 것 같다"며 강한 포부를 드러냈다.

◈목표점수 달성하면 참가비 몇 배 '성과금'

스펙 열풍, 토익 광풍이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토익 학원가는 성수기면 경쟁에 불이 붙어 각종 이벤트와 강의 '세트메뉴' 등을 구성해 선보이고, 온라인 강의 시장 규모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토익 점수에 돈을 거는 '신개념'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이용 방법은 먼저 이전에 받은 토익 점수 이상의 목표 점수를 설정하고 2000원~1만 원 상당의 금액을 건다. 만일 다음 시험 때 이 목표 점수 이상을 달성하면 걸었던 금액의 최대 5배에 이르는 성과금을 환급받는 것.

이 같은 토익 목표달성 서비스는 이른바 '토익펀딩'이라고 불리며 토익 응시자들에게 학습동기를 부여하고 흥미를 돋궈준다는 이유로 성행하고 있다.

대학생 조모(26) 씨는 "점수를 1점이라도 올리려면 방학밖에 시간이 없다"면서 "목표 점수를 놓고 용돈 벌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열공' 의지가 더 생긴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앱은 스마트폰 앱 이용을 통해 일정한 금액을 보상받는다는 점에서 '리워드 앱'으로도 분류된다.

스마트폰 앱에 뜨는 광고를 확인하거나 특정 페이지에 댓글을 다는 등의 활동을 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적립금이나 쿠폰 등을 지급받는 앱들을 가리킨다.

한 때 주부들 사이에 열풍을 불러일으킨 리워드 앱은 앱을 통해 돈을 번다는 의미의 신조어인 '앱테크'(앱+재테크)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보상'이란 유혹을 내세워 학생들의 노력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일침도 나온다.

또 다른 대학생 이모(22) 씨는 "토익이나 토익 스피킹 점수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사회에서 대학생들은 극심한 압박감을 느끼는데, 이런 잘못된 문화를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져 심경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스펙 사회 그림자? 자기주도의 실종?

이 같은 현상이 모두 나날이 거세지는 취업 준비와 스펙 갖추기 경쟁체제 속에서 등장한 나름의 신(新) 생존 방식이라는 변도 가능하다.

토익펀딩과 비슷한 예로 한 때 '취업펀딩'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구직 기간에 드는 토익 응시료나 인적성 시험 교재비 등이 부담스러운 취업준비생들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방식을 이용, 불특정 다수로부터 필요한 금액을 지원받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토익펀딩 앱에 대해 "이 같은 앱이 등장한 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개인의 능력이 하나의 수치로만 표시되는 과잉 경쟁 사회에서는 토익 성적에 돈을 배팅하는 앱이 만들어진 것 역시 사회적 현상이라는 얘기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영어 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뤄지지만, 교육의 성과가 단순히 입시와 취업 성적으로만 환산되다 보니 학생들이 외국어 공부에 대한 진정성을 갖기조차 어렵다는 것.

사행성 논란도 불거졌다. 기본적으로 참가비를 결제하고 해당 금액의 몇 배에 해당하는 성과금을 돌려받는 방식은 결국 도박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도박'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에 규정된 카지노, 경마, 경륜·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 등으로 한정돼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토익펀딩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위법성"이라면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큰 금액이 아니니까 안이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행심을 조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도 "일종의 도박이자 상업주의의 극단적 예"라면서 "사행심을 어느 정도 이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를 두고 "사행심을 이용하는 업체와 영어 성적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학생들의 경향이 결합돼서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꼬집었다.

토익 성적 등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가시화된 점수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사회의 탓이 크다.

그러나 진정한 실력이나 자기주도적인 진로 고민을 수반하지 않고 표준화된 점수에만 목매게 된 대학가 분위기도 일면 씁쓸하다는 것.

김중백 교수는 "학업과 교육의 의미는 자기에게 필요한 지식이나 능력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데 있는 것"이라며 "학생들로 하여금 영어 성적을 위해 돈까지 걸게 만드는 현 사회가 학업과 교육을 동전 넣고 '상품 뽑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바라보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인진 교수도 "기업이든 학생 본인이든 시험을 위한 영어에만 집착하는 게 현실"이라며 "동기 부여를 위해서든 흥미를 위해서든 이보다 더 자극적인 수단이 계속 등장할 소지도 충분히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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