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지도부를 강제구인하기 위해 경찰이 진압작전을 벌인 22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경향신문사 앞에서 수색이 종료되자 사무실에 있던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송은석기자
19일째로 접어든 철도파업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서는 노사정 모두 철도 민영화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도노조가 민영화 저지를 내걸고 파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정부와 여야를 막론하고 민영화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따라 철도 민영화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 부채축소 등 공기업 개혁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해법으로 힘을 얻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대통령, 총리, 부처장관이 직을 걸고 얘기하는데 노조가 계속 부정한다면 그 이상 양보를 어떻게 하겠느냐”며 민영화 계획이 없음을 강조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도 같은날 “대통령과 국무총리, 코레일 사장, 여당까지 민영화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며 철도노조의 파업이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쯤되면 철도노조와 야당은 물론이고 정부여당도 철도 민영화 반대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만큼 남은 문제는 믿을 만한 조치로 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해법은 여야 공동으로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공동결의를 합의처리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믿어 달라”는 약속을 하자는 것이다.
반면 야당은 수서발 KTX 자회사 지분의 민간 매각 금지를 법률로 강제하자는 입장이다.
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지난 19일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즉 공공부문만 철도사업 면허를 받는 법인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철도사업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철도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 보유자는 자신의 지분을 공공부분 이외의 자에게 양도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철도사업법 개정안을 26일 발의했다.
야당의 이같은 법률안은 적어도 공공의 영역에서만 주식이나 지분을 보유할 있도록 함으로써 철도사업의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정부는 수서발 KTX자회사의 정관규정과 주식협약, 철도면허 발급 조건 등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해놨기 때문에 입법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또 철도사업법에 매각대상을 공공부문으로 좁혀 민간의 참여를 제한하면 한미FTA의 역진방지조항을 위배할 수 있기 때문에 입법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역진방지조항이란 한 번 개방하거나 자유화한 부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으로, 한미FTA상 지난 2005년 7월 이후 건설된 구간은 이 조항의 적용을 받는다.
따라서 수서발 KTX 경부선 구간 중 수서-평택, 동대구-부산이나 평택-오송을 제외한 호남선 구간은 미국자본이 참여할 경우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야당은 “한미FTA를 근거로 한 정부의 설명에 따르면 정관은 물론 법률로도 미국자본의 참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사실상 민영화의 수순을 밟은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코레일 부채 축소 등 철도개혁에 대해서도 이견이 크기 때문에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여당은 자회사 설립을 통해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경영효율성이 높아지고 전체적으로 코레일의 경영이 합리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과 노조는 수서-평택 구간을 제외하면 같은 구간에서 같은 차량을 사용하는 자회사의 설립이 어떤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인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17조원에 이르는 부채의 많은 부분이 용산사업 손실이나 인천공항철도 인수 빚, 세계 최고 수준의 철로 사용료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한다는 것이 야당과 노조의 주장이다.
다만 공기업 개혁이라는 명분에는 반대하지 않기 때문에 노사정, 이용자가 함께 하는 대화기구를 만들어 개혁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야당과 노조, 시민사회의 제안이다.
이런 가운데 코레일 노사는 26일 오후 철도민영화 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논의하는 실무교섭을 약 2주만에 재개하는 등 대화로 접점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인명진 목사와 조계종 도법 화쟁위원장 등 ‘철도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사회적 대화모임’도 이날 오후 황우여 대표를 만나 “정치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이번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주문했다.
황 대표는 이 자리에서 “민영화가 아니다”는 점을 거듭 확인하고 “다만 노조가 자회사 설립 뒤 근로조건 악화 등의 우려를 갖고 있다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CBS노컷뉴스 조근호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