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또다시 미국이 문제인가?’…한미 FTA 덫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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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국에 철도시장 개방...“철도민영화 금지법안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들어”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철도민영화 저지! 총파업투쟁 승리! 총력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송은석 기자)

 

철도파업이 15일째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철도노조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운영 자회사 설립이 철도민영화를 위한 꼼수라고 주장하고, 정부는 민영화가 절대 아니라며 당초 계획대로 법인설립 등기가 나오면 이번 주 안에 철도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철도민영화를 아예 법률로 금지하면 모든 의혹이 해소될 것이라며 19일 법안을 발의 했다.

철도노조도 민영화 금지 법안이 제정되면 파업철회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정부는 수서발 KTX 운영 자회사의 주식 지분을 민간에 매각할 수 없도록 법인 정관에 명시하거나 면허 발급을 제한하면 충분한데 굳이 법률로 정할 이유가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반대 주장은 얼핏 보면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속사정은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궁여지책일 뿐이다.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었던 한미 FTA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 2012년 한미 FTA 발효…한국 철도시장 개방

2012년 3월에 발효된 한미 FTA는 한국의 철도시장을 개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미 양국은 FTA를 체결하면서 2005년 6월30일 이후 건설된 국내 철도노선에 대해선 미국에 시장을 개방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자료 사진)

 

미국의 민간 철도회사가 직접 우리나라 철도시장에 들어와 철도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양허 내용에 단서가 하나 달렸다.

국내 철도시장에 진출하려는 미국 민간철도회사에 대해선 대한민국 국토교통부 장관이
경제적 수요 등을 종합 검토한 뒤 면허를 발급할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 국내 철도 관련 법률…이미 2004년부터 민간개방 허용

한미 FTA 양허뿐 아니라 국내 철도 관련 법률도 이미 철도 민영화의 길을 터놓고 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개정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철도운영 관련사업은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국가 외의 자가 영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효율적 경영을 위해 특별법에 따라 한국철도공사를 설립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철도사업법’ 2조 8항은 “철도사업자란 한국철도공사법에 따라 설립된 한국철도공사 및 제5조에 따라 철도사업 면허를 받은 자를 말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국내 철도 관련 법률도 한미 FTA 양허 내용과 마찬가지로 철도사업 면허만 받으면 민간법인도 얼마든지 철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지난 20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보고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철도공사가 노선 자체를 중단하든지 (운영권을) 반납하든지 해서 운영이 안 된다면, 국민적 합의를 통해 지방공기업이 하든지 민간도 참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법률을 근거로 정부의 솔직한 속마음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미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FTA 협상을 염두에 두고 국내 철도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며 “법률적으로는 민영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 철도노조 “정부 주장은 민영화를 위한 거짓 변명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정부가 한미 FTA 협정을 통해 철도시장을 모두 개방해 놓고 철도민영화는 절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비록 우리 정부가 단서조항을 달아서 미국 민간철도회사에 대한 철도운송사업 면허 발급을 통제하고는 있지만 앞으로 정치, 경제적인 변화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이 면허를 발급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민영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철도노조 김명환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수한 별도 법인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부터가 민영화라고 봐야 한다”며 “일본의 경우 철도특수법인이 세워진 1987년에 민영화 단계에 들어가 실제로 1990년대 말에 민간에 매각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민주당과 철도노조는 국민들이 믿을 수 있도록 철도민영화 금지 법안 마련이 최상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철도민영화 금지 법안 vs 한미 FTA 협정, 철도사업법

그러나 정부와 새누리당은 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철도민영화 금지 법안이 제정될 경우 한미 FTA 협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의 민간 철도회사가 국내에 들어와 철도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놓고 이제 와서 법으로 금지한다면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미국이 자체적으로 법을 개정해 국내산 자동차와 반도체, 휴대폰 수입을 금지해도 대응논리가 없다”고 항변했다.

정부는 이뿐 아니라, 철도민영화 금지 법안이 기존 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철도사업법에도 정면으로 배치되고, 위헌 소지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사업에 민간 참여를 금지한다면 헌법 119조가 정하는 시장경제 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 화물열차들이 멈춰 서 있다. (윤성호 기자)

 

◈ 정부, “철도운송사업 면허 재량권으로 민영화 통제할 수 있다”

정부는 철도사업법과 한미 FTA 양허 조건에 국내 철도시장을 일반에 개방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철도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입장이다.

이른바 ‘면허재량권’만 가지고도 철도 민영화를 얼마든지 금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21일 수도권 철도차량정비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관이나 면허에 민영화가 안 되도록 하는 조건을 이중삼중으로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에 지분을 넘기지 못하게 하는 조건부 면허를 내줄 것"이라고 말해 수서발 KTX 회사가 민간에 지분을 팔면 면허를 박탈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사업법 5조에 국토교통부장관은 철도사업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부담을 붙일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며 “부담이란 면허 발급 제한 또는 박탈도 포함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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