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ㆍ달러 환율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연중 최고치에 가까운 102엔대로 치솟으면서 '2차 엔저공습' 경보를 울리고 있다. 문제는 간신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우리의 수출이다. 엔ㆍ달러 환율이 110~120엔대에서 형성되면 수출회복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다.
2013년 상반기 글로벌 주식시장은 강세를 띠었음에도 국내 주식시장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유는 '엔저'에 있었다. 최근 엔ㆍ달러 환율의 급등으로 엔저 공습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12월 10일 엔ㆍ달러 환율은 102.82엔을 기록하며 지난 5월 17일의 연중 최고치인 103.21엔에 바짝 접근했다.
시장의 관심은 엔저추세 자체보다는 속도와 수위에 맞춰져 있다. 2012년 말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나타났던 것처럼 엔ㆍ달러 환율이 수개월 안에 20% 상승하는 2차 엔저 공습이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100엔대 초반에서 단기 상승한 후 다시 100엔 안팎으로 하향 안정될 것인지가 관건이란 얘기다.
만일 전자라면 국내 주식시장은 상반기처럼 글로벌 증시의 흐름과 무관하게 부진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외국인 자금도 국내 시장을 이탈한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후자라면 외국인 투자자는 선진국 경제의 회복에 비중을 두고 한국시장에 안착할 것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최근 엔ㆍ달러 환율 상승을 발생시킨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지금의 엔ㆍ달러 환율 상승이 일본은행(BOJ)의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에 따른 것이라면 2차 엔저 공습의 시작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 경제지표의 회복에 따른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과 이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원인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 연준(Fed)이 12월에 양적완화 축소를 단행하지 않으면 엔ㆍ달러 환율이 100엔 내외 수준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 연준은 2014년 중반에 양적완화 조치를 종료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 달러화 가치의 상승을 통해 엔ㆍ달러 환율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적지 않다. 하지만 미 달러화 가치 상승에 따른 엔ㆍ달러 환율 상승은 완만한 엔저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반대로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조치가 이뤄지면 엔ㆍ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는 2014년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일본경제의 방향성에 달려있다.
일본의 경기침체가 심각하지 않은 이상 일본은행이 제2의 금융완화조치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5월 23일 급격한 엔저의 후유증 때문에 일본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민간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2조5000억엔 규모의 긴급 유동성을 공급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완화조치의 시기도 상반기보다는 하반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실시 전제조건인 일본경제의 침체 확인이 상반기보다는 하반기 경기 흐름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올 12월은 물론 최소 2014년 1분기까진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엔저추세보다 속도가 더 중요
그럼 엔저의 2차 공습이 한국 수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올초 한국 수출 침체에 대한 우려가 높은 가운데 '극복할 수 있다'는 의견과 '극심한 침체가 우려된다'는 견해가 엇갈렸다. 엔ㆍ달러 환율의 급격한 상승이 한국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사례가 극명하게 엇갈렸기 때문이다.엔저에 따른 수출 침체를 주장했던 진영은 한국의 수출이 세계경제보다 엔ㆍ달러 환율에 의해 완전히 좌우되던 1990년대의 사례에 무게를 뒀다.
엔ㆍ달러 환율이 145엔에서 79엔으로 하락했던 1991~1995년 한국의 수출은 연평균 14% 증가했지만 1995~1997년 엔ㆍ달러 환율이 79엔에서 125엔으로 상승한 기간에는 연평균 3% 증가에 그쳤다. 이후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회복됐지만 한국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반대로 엔저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한국 수출이 엔저 충격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던 2000년대 사례에 비중을 둔다. 2005~2007년 엔ㆍ달러 환율은 103엔에서 125엔으로 상승했지만 그 기간 한국의 수출은 연평균 14% 증가했다. 2000년대 수출지역과 품목 다변화를 통해 경쟁력이 향상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경제 확장에 따른 세계경제 호황이 강력한 수출물량 확대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의 상반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0.6% 증가에 그치며 부진했다. 하지만 3분기 2.9% 증가하며 회복세를 띠기 시작했다. 4분기에는 5%대 증가로 회복세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상반기에 나타난 급격한 엔ㆍ달러 환율의 상승이 시차를 두고 하반기 수출의 급격한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관론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런 맥락에서 1차 엔저 공습을 극복한 경험이 '2차 엔저 공습도 이겨낼 것'이라는 의견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엔ㆍ달러 환율이 110엔대에 진입하는 2차 엔저가 진행되면 엔저 공습의 영향을 극복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2차 엔저 공습이 1차 엔저에 비해 환율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반기 1차 엔저 당시에는 우리 수출가격 경쟁력 지표인 원ㆍ100엔 환율이 급격히 하락했지만 원ㆍ달러 환율은 마지노선인 1000원선을 웃돌았다. 그러나 엔ㆍ달러 환율이 110엔대로 상승하는 2차 엔저가 진행될 경우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대로 상승하지 않으면 원ㆍ100엔 환율은 900원대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수출가격 경쟁력의 마지노선으로 알려진 원ㆍ엔 비율 1대10의 관계가 무너진다는 얘기다.
둘째, 올해 상반기에는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시행 우려의 영향으로 동남아와 신흥국가의 위기가 확산되면서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대 중반 수준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2014년 원ㆍ달러 환율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상반기 1000원선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다. 엔저와 원고라는 수출여건 최악의 환율 조합이 발생할 가능성 있다는 얘기가 된다.
2014년 엔ㆍ달러 환율이 105~110엔 수준으로 완만한 상승세를 보인다면 한국 수출의 회복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하지만 110~120엔대의 급격한 상승세가 나타난다면 수출 회복은 어려워지고, 그 결과 국내경제 회복 가능성 역시 희박해진다.
이에 따라 우리 외환당국은 원고 방어라는 소극적 단계를 넘어 원저 유도라는 적극적 외환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외환당국의 환율정책은 두가지다. 하나는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원ㆍ달러 환율 상승유도이고 다른 하나는 기준금리 인하라는 금리정책을 통한 원화 약세를 유도하는 것이다.
원저 유도정책 필요해
CBSi The Scoop 이상재 현대증권 이코노미스트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