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의 비극'…일가족 살해 후 자살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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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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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고민' 30대 남성 처자식 살해 후 교통사고 내 숨져
장애로 거동 못하는 아들과 목숨 끊기도…"왜곡된 가족주의 원인"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가족을 살해하고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가족은 하나'라는 왜곡된 가치관이 혈육 간 비극을 낳는 원인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40분께 금산군 제원면 한 펜션에서 충북 청주에 사는 이모(33)씨의 부인 A(33·여)씨와 그들의 자녀 2명이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A씨와 두 자녀의 시신에서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펜션 한쪽에는 타다 만 번개탄도 함께 발견됐다.

이들의 시신이 발견되기 직전 같은 날 오후 8시 13분께 금산 제원대교 인근 도로에서 A씨 남편 이씨가 운전하던 BMW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스타렉스 승합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이씨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찰은 가족을 살해한 이씨가 고의로 교통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펜션에서 발견된 유서 형태의 메모를 이씨 혐의에 대한 중요한 단서로 보고 있다.

이씨 부인과 자녀가 숨진 채 발견된 펜션에서는 '1억5천만원 가량 되는 빚을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다. 혼자 가면 가족들이 더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지 4장 분량의 유서가 나왔다.

이 유서는 이씨가 직접 쓴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교통사고 직전 이씨가 다른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수차례 미안하다고 말하고 끊기도 했다"며 "빚 문제로 고민하던 이씨가 가족을 살해하고서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대전에서는 부채에 시달리던 김모(41)씨가 차량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졌다. 차 안에서는 '집에 부인과 딸이 숨져 있을 것'이라는 메모가 발견됐다.

경찰은 그의 집에서 숨져 있는 김씨 부인과 중학생 딸의 시신을 확인했다.

시신 발견 당시 집의 문틈은 테이프로 밀봉돼 있었고, 가스배관은 잘려 있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주식투자로 수천만원의 빚을 진 김씨가 가족을 살해하고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 결과 김씨 부인과 딸은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며 "가족을 살해한 혐의가 있는 김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고 말했다.

병시중 문제로 아들과 함께 삶을 정리한 아버지도 있었다.

지난달 18일 당진 송악읍에서 식물인간 아들을 돌보던 아버지 김모(55)씨가 집에 불을 질러 목숨을 끊었다. 아들도 함께 숨졌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는 6살 때 교통사고로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아들을 25년 동안 병시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평소 김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말을 자주 했다는 유족 진술 등으로 미뤄 김씨가 집에 불을 질러 아들을 숨지게 하면서 함께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부검 결과를 받아야겠으나, 아들을 숨지게 한 뒤 사망한 김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내사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혈육의 비극'은 개인 속에 있는 왜곡된 가족주의가 그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개인보다 가족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가치관을 가진 상태에서 가족 간 통합이 깨지는 요인이 생기면 극단적인 일탈을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숙 배재대 미디어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자녀를 상대로 부모가 행하는 이 같은 형태의 사건은 왜곡된 가족주의 가치관이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며 "내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연결돼 있다는 한 인간의 개인성이 가족에게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자녀 살해-부모 자살' 현상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 이 교수는 "이런 때 동반자살로 표현되곤 하나 정확하게는 부모에 의해 자녀의 생명 권리가 빼앗기는 타살이 자행된 것"이라며 "아무리 가족이라도 자녀가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식될 수 있는 사회적 규범 형성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물질적인 부족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생명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사회적 안전망 구축과 동시에 생명중시 가치관 교육을 체계적이고도 꾸준하게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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