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신뢰외교…'우리만' 美中 신뢰하다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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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개선-신뢰 외교'만으로는 국익관철 한계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촉발된 한중일 갈등과 관련해 한국만 안이하고 일방적인 '신뢰외교'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번 사태가 태평양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의 결과물인 만큼, '주변국과의 관계가 과거와 다르다'는 정부의 인식 갖고는 국익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6일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은 사실상 미국이 그어놓은 선이고, 그 전엔 이어도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도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며 "중국이 이번에 이어도를 포함한 CADIZ를 선포하면서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수중암초'인 이어도에 '영토'의 개념이 덧입혀지고, 이번 논란이 영토분쟁의 양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분쟁 등 최근 중일 간 갈등 때문에 해당 논란이 확대된 측면이 있지, 방공식별구역은 각국이 뚜렷한 근거 없이 선포한 것이고 법적 효력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KADIZ를 새로 설정하는 등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배타적경제수역(EZZ) 등 실질적 권리가 있는 해상수역 설정에서 이어도가 근거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주의적 관점 대신 실리주의적 접근을 취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이는 동시에 '한중일 하늘전쟁' 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일단 박근혜 정부들어 한중 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이번 선포에서 한국을 배려한 흔적은 발견하기가 어렵다. 공식발표 30분 전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게 전부다. 중국은 앞서 2006년 한국과 '이어도 귀속 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고 결론내는 등 EEZ 설정과 관련해 신경전을 벌여왔고, 따라서 이어도가 한국에 어떤 의미인 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 '과감하게' CADIZ를 선포했다.

애초에 1969년 JADIZ가 그어질 때도, 이를 주도한 미국은 일본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 등 공산권을 견제하는 데 목적이 있었지 한국의 목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반세기 가까이 미중이 서로를 견제하는 동안, 이어도는 철저히 양국의 국익에 근거해 해석돼 왔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시종일관 안이했다.

한국이 미중 세력대결의 지정학적 요충지가 되는 만큼, 방공식별구역을 포함해 갈등이 빚어질 모든 분야에서 '한국의 입장'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관련국에 일찌감치 외교전을 벌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무급에서 장관까지 수시로 전화통화가 가능하다(외교부 관계자)"는 자체 평가는 실제 국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26일 "앞서 집단적자위권 논란에서는 한국이 미국을 과도하게 믿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데, 이번 방공식별구역이나 EEZ 문제에서는 또 중국을 너무 믿는 듯하다"며 "냉정한 현실외교의 측면에서, 우리 쪽에서만 '신뢰외교'를 얘기하는 것이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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