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기간 잠시 제쳐놓았던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과 사표수리문제가 또다시 현안으로 등장했다.

지금까지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수사 지휘권을 행사하거나 감찰 등 불신임 등의 조치가 있을 경우, 보직을 사임하고 사퇴하는 것으로 일단락돼 왔다.

이번처럼 청와대가 진상규명을 위한 감찰을 끝까지 실시하겠다고 나온 것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매우 드문 사례다.

감찰은 채동욱 총장의 사의표명 이후 검찰이 반발하자 이를 제압하기 위해 내놓은 '회심의 카드'였고 이 조치가 먹혀들었다는 점에서, 청와대와 법무부가 없었던 일처럼 거둬들이기도 쉽지 않게 됐다.

그러나 검찰은 혼돈속에 빠져 있다.

총장에 대한 사표 처리 지연으로 '권한 대행'조차 선임되지 않은 상태여서 검찰은 지휘 공백에 빠져 있다.

길태기 대검 차장 검사는 지난 17일 주례간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대검 차장검사로서 검찰 제반 업무가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의 사태를 관망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서울 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사표도 안 받아 주고 대행도 안되고 어쩌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검찰을 통째로 흔들고 뒷짐 지고 있는 모양새인데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고 한탄 했다.

이 검사는 "요즘 기업 수사는 정치권과 연관된 부분도 많고 혼맥으로 엮인 부분도 많고 해서 쉽지 않다"며 "결국 총장의 의지와 방패가 중요한데 지금은 모든 것이 사라졌으니 조용히 하던 일이나 처리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검의 고위 간부도 "언젠가 사표가 수리되면 검찰총장을 다시 뽑아야 하는데, 그게 한두달 걸리면 연말이고, 연말이 지나면 내년 초 인사이고....올해 수사는 다 끝난 것 아니냐. 검찰 견제도 심해질 수 밖에 없으니 수사는 당분간 휴업 상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검찰과 법조계의 시선은 당장의 수사보다는 향후 '검찰권의 정치적 독립'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채 총장의 혼외아들 논란에 대한 진위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검찰 총장의 사퇴 과정을 지켜 본 검사들이 느낀 감정은 비슷했을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담당할 경우, 검사들이 뒷감당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야의 한 법조인사는 "검찰도 행정부의 일원인 만큼 대통령의 정책과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 한 수사는 원칙대로 수사하고 결과를 발표해야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며 "이명박 정부에서의 '정치 검찰'의 폐해를 기억해 보라"고 상기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중도 사퇴'를 불러 오는데 도화선이 됐던 '국정원 댓글 사건'의 공소유지는 물론, 30여년만에 '내란 음모죄'가 적용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수사도 검찰 수장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는 사건들이다.

A변호사는 "당장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나 남북정상회의록 실종 사건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이 제대로 진행될 지도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검찰이 청와대·법무부와의 갈등 끝에 선거법 위반죄를 적용했던 사건이어서 공소유지에 험난한 도전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