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나홀로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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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편지]

 

그녀의 이십대에는 부모의 이혼도, 영화사 인턴십이란 것도, 어학연수를 위한 휴학도 상상할 수 없었다.

부모의 그늘을 떨치고 나갈 생각 같은 건 할 수도 없고 뛰어들 장(場)도 없었다. 그러니 젊음에게 하는 기성세대의 조언이란 가당찮은 것인지도 몰랐다.

스스로 향수에 젖어 효력 상실한 낡은 정보를 조언이라고 착각하는 것인지도…….

서령은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신세대와의 한집살이. 이 자신만만한 젊음과 한지붕 아래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젊음에 주눅 들지 않고 주인으로서의 특권 따윈 내세우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서로에게 방해받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중략)

죽음이 상실의 고통으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서령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알았다. 질긴 인연의 고리에서 풀려나는 해방감이 슬픔 뒤에 위안처럼 따랐다. 죽음에도 타이밍이 있다면 아버지는 아주 적절한 때에 세상을 하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부재가, 남은 가족에게 슬픔과 해방을 동시에 안겨주는 순간이 사별의 적기(適期) 아닐까. 어느 한쪽이 더 크거나 모자라면 그 죽음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은 것이다. 서령에게는 그랬다.

슬픔, 꼭 그만큼의 해방감이 따랐다. 부모란 인연의 끈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에게 베풀고 떠나는 존재였다. 안녕 자식들아, 이제 내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처음엔 슬픔에 겨워, 나중에는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에 감동해 서령은 장례식장에서 누구보다 오래 눈물을 흘렸다.
― 「하우스메이트」 중에서


우리나라 가구 수의 25퍼센트, 즉 네 가구에 한 집 꼴로 독거인 가구라지요. 늦은 결혼에다 비(非)혼과 이혼이 늘어나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나홀로족이 많아진 결과랍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만약 아파트에 산다면, 긴 복도를 걸어가다 두어 집 지나고 난 다음 집은 혼자 사는 이웃일 확률이 높습니다. 당신이 문을 두드리면 그 집 주인은 놀라며 당신을 '경계'하거나 아니면 '아주 반가워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그들은 으레 타인의 존재에 서툴고 예민하게 반응하지요.


원하든 원치 않든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독거인 시기를 겪습니다. 당신이 지금 가정이라는 튼튼한 울타리 안에 몸담고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가족은 한시적 동거인이니까요. 우리가 이 지구라는 별의 임시 탑승자인 것처럼.


나홀로족도 마찬가지지요. 아무리 자발적인 경우라도 하우스 푸어 시대에는 그 생활을 접어야 할 형편에 처하기도 합니다. 경제적 위기에 내몰린 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말입니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즐기는 게 최선의 방어책.

그럴 땐 하우스메이트를 한번 만들어 보세요. 혼자 나선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길동무와 동행하듯 말입니다. 나의 또 다른 자아를 바라보듯 스스로의 여정을 되돌아 볼 수도, 공유 생활에 대한 적응력을 기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표명희 올림


표명희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제4회『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에 단편「야경」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2004)과 서울문화재단 신진작가 작품발간지원사업(2005) 지원금을 받았다. 지은책으로 소설집『3번 출구』(창비, 2005)와 장편소설『오프로드 다이어리』(창비, 2010) 등이 있다.

※원문은 책읽는 사회 문화재단 문학나눔의 행복한 문학편지 (http://letter.for-munhak.or.kr)에서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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