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끝나면 태풍 물가 또 '들썩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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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에 흔들리는 민생

스쿠프 제공)

 

팍팍한 살림살이에 물가까지 오르면서 사람들은 "사먹을 게 없다"며 아우성이다. 날씨 탓이 크다. 한반도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은 과일값과 채소값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추석 전까지 물가가 한바탕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출산을 앞두고 있는 황순환(31)씨. 그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곧 있으면 출산인데 과일을 맘껏 먹을 수 없어 속상하다"는 글을 올렸다. 그가 글을 올린 후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댓글이 10개 정도 달렸다. "저는 과일 값으로만 하루 1만원씩 써요." "비싼 돈 주고 사먹어도 맛이 없어요." "눈 딱 감고 사 먹은 비싼 자두, 그런데 무슨 맛이지" 등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 8월 14일 오전 11시. 서울 등촌동의 한 재래시장 어귀의 과일 가게. 작은 수박 하나에 1만5000원, 사이즈가 큰 바나나 한 송이가 9000원이다. 천도복숭아는 8개에 1만원이다. "왜 이리 가격이 비싸냐"고 묻자 상인은 "요즘 과일값이 비싸다. 덥기도 하고…"라며 말문을 흐린다.

# 서울 충무로 지역에서 과일 주스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 "수박 큰 게(10~11㎏) 2만6000원 정도 해요. 며칠 전이랑 비교하면 1만원 정도 오른 거 같아요. 올라도 너무 올랐어요. 어제 수박 주스 150개 단체 주문이 들어왔는데 거절했어요. 재료값 빼면 남는 게 있어야죠. 요즘 과일은 다 비싸요.

# 8월 14일 오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지하 식품매장. 천도복숭아 가격은 5개에 1만원. 친환경이라지만 턱없이 비싼 가격이다. 바나나는 한송이도 아닌 네개 포장들이 제품이 4500원이다. 이곳의 청과물 코너는 유독 썰렁하다. 바로 옆 푸드코트에만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과일값이 치솟고 있다. 재래시장에 가도 복숭아ㆍ자두ㆍ참외 등이 하나에 1000원 꼴로 비싸다. 한 가족이 하룻밤 과일을 제대로 먹으려면 기본 1만원은 줘야 할 판이다. 그나마 싸다고 자주 사먹던 바나나도 예전 같지 않게 값이 올랐다. 소비자들이 "과일값이 비싸다"고 아우성을 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과일을 먹고 싶어도 가격이 너무 올라 섣불리 사먹을 수가 없다"며 "조금이라도 싸다 싶으면 맛이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과일을 파는 상인들도 힘들다고 야단법석이다. 8월 14일 오후 2시. 영등포 청과물 도매상가. 손님 한명이 "과일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며 푸념을 늘어 놓자 파는 상인도 민망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우리도 미치겠어요. 과일값이 너무 비싸요. 그나마 수량이 달려서 팔 수 있는 과일도 얼마 없어요."

(스쿠프 제공)

 

영등포 청과물 도매시장의 한 상인에게 "과일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었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이렇게 말했다. "요즘 과일 씨가 아예 말랐어. 과일 배송차량이 하루 3~4대밖에 안 와. 평소와 비교하면 정말 적게 들어오는 거야. 들어오는 과일 물량 자체가 적어. 그나마 들어오는 과일 품질도 너무 떨어져. 우리도 장사할 맛이 안 난다니까. 팔 물건이 없으니 쉬는 사람들도 있고. 장마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덥기만 하니 과일들이 버틸 수 있겠냐구."

8월 14일 기준 수박 개당 가격은 평년 도매가격인 1만5820원(상품)에서 2만3800원으로 50.4% 치솟았다.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6.1%나 오른 수준이다. 청량리 청과도매시장의 한 과일 도매상은 "폭염 때문에 수박이 물러(익어) 물량이 줄어들었다"며 "끝물이라고 해도 수박값이 정말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제철과일이 싼 것도 아니다. 재래시장에서 팔리는 복숭아(백도)는 하나에 1000원이 넘는다. 천도복숭아도 비싸다. 하나에 1000원 정도에 팔린다. 8월 14일 영등포 롯데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팔리는 천도복숭아는 '5개 1만원'이었다. 복숭아 가격이 비싼 이유 역시 날씨 때문이다. 복숭아 재배지로 유명한 이천시 장호원읍의 한 과수원에 물었다. 조한열 동구밖복숭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이상기온이 문제였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이틀 이상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면 죽어요. 그런데 지난 겨울 영하 28도까지 떨어졌죠. 꽃을 피워야 하는 봄에도 날씨가 추웠어요. 추운 날씨 때문에 서리가 생기면서 농작물 조직이 얼어버리는 '상해'를 입은 거예요. 그나마 살아남은 복숭아나무는 45일 동안 지속된 장마에 시달렸어요. 비가 많이 내리면 병균에 취약해져요. 거기다가 최근에는 폭염까지 겹쳤죠. 날씨가 더우면 벌레가 많이 생깁니다. 한마디로 4중고죠. 올해 우리 과수원 복숭아 수확량은 평소에 3분의 1도 안되요. 다른 과수원 사정도 비슷할 겁니다."

◈ 더운 날씨 탓에 과일 공급량 줄어

천도복숭아로 유명한 경산 지역의 복숭아영농조합 관계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올 봄에 기온이 너무 내려가 결실을 보지 못한 나무들이 많아 수확량이 적었어요.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전국 최대 자두·포도 생산지인 김천 지역도 날씨 피해를 입었다. 지난 겨울 추위와 올봄 이상기온으로 인해 과수가 심각한 동상해(이른 봄의 새싹의 명아기萌芽期에서 성장기에 걸쳐 새싹이 동결로 입은 상해)를 입었다. 올 6월 말부터 7월까지 경북 김천시의 '과수 동상해 피해 정밀조사'에 따르면 전체 과수 재배농가 9725농가 중 529농가, 316.7㏊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면적은 전체 4263㏊의 7.4%였다.

자두가 본격 출하되는 시기인 7월 말 생산량이 대폭 감소했고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겨울 이상기온 현상이 과일값 폭등을 야기했다는 얘기다.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이어지는 기간 유난히 추워 동상해를 입은데다 올여름 긴 장마와 폭염까지 겹치면서 피해가 커진 것이다.

그럼에도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이례적인 폭염은 그칠 줄 모른다. 매일 낮 전국의 수은주는 30도 이상을 가리킬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1971년 이후 최고온도를 기록한 지역도 여럿 된다. 울산은 연일 40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시달리고 있고 강원도 지역의 일부 지방의 낮 최고 기온은 35도를 웃돈다. 문제는 이같은 폭염이 과일값뿐만 아니라 채소값까지 올려놓고 있다는 거다.

친구들 사이에서 몸짱부부로 통하는 김미정(30)씨. "신랑이랑 다이어트를 하느라고 샐러드를 자주 만들어 먹어요. 그런데 최근 양상추 값이 어마어마하게 올랐어요. 평상시 대형마트에서 하나에 1500원하던 양상추가 지금은 3900원이에요. 양상추가 비싸면 양배추라도 싸야 되는데 양배추값도 비싸요. 가끔 닭가슴살에 상추를 싸먹는 데 상추값도 어마어마하게 올랐어요. 도대체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스쿠프 제공)

 

8월 14일 기준으로 양배추 상품(10㎏) 도매가격은 1만1600원, 평년 가격이 6513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1만100원)과 비교해도 14.9% 상승했다. 배추 가격도 상품 1㎏ 기준으로 평년(865원) 대비 1240원으로 43.3%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1.9%(940원) 오른 수치다. 상추값도 마찬가지다. 4㎏(적상추ㆍ상품) 기준 2만92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6960원) 대비 72.2%, 평년(1만8717원) 대비 56% 올랐다.

◈ 고공행진하는 밥상물가

이들 채소가격이 폭등한 이유는 폭염에 있다. 8월부터 9월 중순에 걸치는 기간 전국 채소 공급 절반은 강원도 지역이 책임진다. 그런데 강원도 고랭지에서 역대 최장 기간의 장마에 이어 최근 폭염까지 덮치면서 배추ㆍ무 등의 저온성 채소가 썩는 피해를 입은 것이다.

농식품부유통공사 관계자는 "올여름 폭염의 영향으로 저온성 대표 작물인 배추ㆍ상추 등의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며 "기온이 떨어지면 가격도 떨어지겠지만 폭염 피해가 워낙 커 이들 작물의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채소값 상승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도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충무로 지역의 한 식당 주인은 "요즘 상추값이 한달 전과 비교해 2배 정도 오른 거 같다"며 "경기 불황이라 손님은 줄어드는데 채소값에 고기값까지 올라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폭염은 수산물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40년 가까이 있었다는 도매상인은 "폭염 피해가 심한 울산의 방어진(항구) 같은 경우 들어오는 어획량이 확실히 줄어들었다"며 "폭염으로 원래 잡히던 어종들도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은 농수산물 공급 차질뿐만 아니라 재래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상인들의 피해가 큰 이유다.

(스쿠프 제공)

 

노량진 수산시장의 한 상인은 "시장 어귀쪽에 생선을 파는 할머니가 한번도 마이너스를 보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하루 3만원씩 손해를 본다더라"며 "매상은 늘지 않는데 얼음값이 더 나가니까 그런 거 같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바로 옆으로 상인들에 얼음을 공급하는 이동 차량이 바쁘게 움직였다.

청량리 지역의 한 수산물 시장 상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원래는 한달에 두 번 쉬었는데 이제는 매주 일요일마다 쉬고 있다"며 "경기 불황에 날씨까지 더우니까 사람들이 시장 자체에 오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요즘은 얼음값만 하루에 7만원"이라며 "한쪽에는 물건을 아예 진열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 지역에 사는 한 주민은 "너무 더워서 불앞에 설 엄두도 안나 요즘에는 아예 장을 보지 않는다"며 "그냥 외식을 하는 게 더 싸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스쿠프 제공)

 

경기불황에다가 폭염까지 겹치면서 재래시장 상인들은 불볕더위 속 더욱 고군분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어귀에서 "오이 4개에 1000원"이라며 큰 소리로 외치는 상인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싸게 파나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얼굴을 보세요. 어떻습니까." "무슨 이야기냐"고 되묻자 그는 "사람들이 물건을 안 사니 이렇게라도 싸게 팔아야 먹고 살지 않겠냐"고 말했다.

실제 시장 상인들의 체감경기는 최악이다. 실제로 시장경영진흥원이 지난달 발표한 '7월 시장경기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시장 상인들의 경기 체감지수는 47.9로 사상 최저치였다. 2009년 65.6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는 이 지수는 100을 넘어야 '경기가 좋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경기불황으로 힘든데 폭염까지 겹치면서 상인들의 사정이 더욱 팍팍해진 것이다.

이례적인 폭염은 제주도까지 강타했다. 8월 초 휴가철 찾은 제주 동부 지역의 한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맞는 3번째 여름인데 올 들어 가장 더운 것 같다"며 "옆에 있는 밭에다가 이것저것 심었는데 벌레 먹은 과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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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의 경우 7월 강수량이 고작 16.8㎜이었다. 이는 예년 평균 강수량 227㎜의 3.6%에 불과한 수치로 역대 최저치다. 8월 15일을 기점으로 제주도 가뭄은 49일째를 맞고 있다. 이는 1994년 기록한 47일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제주도의 이같은 이례적인 폭염은 농수산물에도 직격타를 주고 있다.

신양수 제주도농업기술원 농업환경담당은 "20년 전 47일 동안의 가뭄 이후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정확한 피해규모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콩ㆍ참깨ㆍ감귤ㆍ당근 등의 작물 자람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비가 오면 다행이지만 가뭄이 계속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감귤 작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우리도 기상예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올겨울 감귤값 폭등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내 당근 최대주산지인 구좌ㆍ성산ㆍ표선 등 동부 지역은 당근 발아가 제대로 안 돼 다시 파종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서귀포시의 한 양식장에서는 수온 상승으로 광어 30만 마리를 폐사시키기도 했다.

◈ 경기불황에 폭염까지 이중고

앞으로 추석까지 한달 남짓 남았다. 문제는 폭염 때문에 한바탕 오른 식탁물가가 아직 정점을 찍은 게 아닐 수 있다는 거다. 기상청에 따르면 8월 말 태풍이 한반도를 할퀴고 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물가가 추가로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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