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기록물 열람,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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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을 앞둔 민주당 우윤근 의원,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을 비롯한 열람위원들이 15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보안서약서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항해 들어보이고 있다. 황진환기자

 



- 대통령 지정기록물 제도, 만든지 1년도 안돼 뚜껑 다 열려
- 이미 두 번 열람했지만 국가적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어
- 대화록, 여야 합의 안 될 것. 그래도 제발 거기서 끝내 주길.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7월 15일 (월)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안병우 교수 (기록 관리단체협의회 대표)


◇ 정관용> 오늘 국회 여야 의원들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과 관련된 자료에 대해서 예비 열람을 마쳤죠. 그리고 여야 합의로 추가 검색어를 제시한답니다. 그래서 17일날 다시 국가기록원에 가서 한 번 더 예비열람을 할 예정이라고 현재 보도가 나와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 시사자키에서는 이 국가기록물 관리에 대한 전문가분들,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서 지금의 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바 있는데요. 오늘 여야 의원들이 국가기록원에 간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직접 스튜디오에 기록 관리단체협의회 대표를 초대했습니다. 한신대 국사학과 안병우 교수님, 스튜디오에 나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안병우> 안녕하세요.

◇ 정관용> 역사학자이시죠?

◆ 안병우> 역사학을, 우리나라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기록관리학이라고 하는, 기록학이라고 하는 거는 주로 역사학도 있을 거고.

◆ 안병우> 네. 기록학은 역사학 그리고 문헌정보학.

◇ 정관용> 문헌정보학.

◆ 안병우> 전산학. 이런 것들이 같이 관련을 맺고 있는데요. 역사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속성상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기록학은 역사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에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관용> 즉 기록학의 중심은 역사학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군요.

◆ 안병우> 그렇게만 이야기하면 또 문헌정보학이나 이런 분들이 좀 섭섭해 하실 텐데.

◇ 정관용> 그래도 상식적으로 볼 때 문헌정보학은 아마 분류체계나 이런 쪽에 좀 전문분야일 것이고.

◆ 안병우> 그런 쪽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고요. 기록관리의 의미라든가.

◇ 정관용> 그렇죠. 정신, 철학 뭐 이런 거.

◆ 안병우> 활용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역사학하고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 정관용> 우리나라의 이런 기록학 관련된 무슨 단체 이런 것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 입니까?

◆ 안병우> 대략 한 2000년 전후한 무렵부터라고 볼 수 있는데요. 1999년에 처음으로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라고 하는 것이 제정이 됐고요. 그것을 전후해서 민간 쪽에서, 특히 학계에서 선진 외국의 사례들을 참고하면서 이제 우리도 본격적으로 기록을 관리해야 되겠다, 이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고요. 그런 민간 쪽의 요구하고 그 당시에는 정부기록보전소라고 하는 기구가 있는데요. 그쪽에서도 그런 의식을 갖고 되어서 이제 법도 만들고 또 연구원들도 만들고 또 그후에 학계에서 기록관리 전문가를 양성하게 되었고요. 그에 따라서 학회도 만들어지게 됐고. 그리고 그에 이어서 기록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배출이 되면서 그들의 모임인 기록관리전문가협회라고 하는 것도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 정관용> 공공기관 기록물 관리법이 만들어진 게, 처음에 만들어진 게 99년입니까?

◆ 안병우>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말씀하신 선진국, 외국들은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체계화합니까?

◆ 안병우> 서양의 경우는 기록물을 근대적인 의미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가 혁명 이후에 정부가 갖고 있던 기록물들을 일반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면서부터 시작이 되었고요.

◇ 정관용> 프랑스 혁명? 1789년 그때.

◆ 안병우>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많은 국가들에서는 특히 외교문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을 해서 외교문서의 관리가 기록관리의 시작이라고 하는 대체로 그런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 정관용> 공공기관의 기록이라든지 대통령 기록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별도의 법률로 제정해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선진국으로 보면 언제부터라고 봐야 됩니까?

◆ 안병우> 그건 19세기쯤 되면 대체로 법들을 갖게 되고요. 차츰차츰 정비된 그런 기록관리 기관들을 갖게 됩니다.

◇ 정관용>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정말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돼 있는 조선왕조실록 같은 그런 위대한 기록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역사에.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기록에 관한 인식이 아주 희미해져 버렸던 겁니까?

◆ 안병우> 우리나라는 실록을 편찬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 이미 실록을 편찬했고요. 조선왕조에 들어서도 실록을 편찬하는 전통을 계속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조선왕조실록이 남아 있고 그것이 세계기록유산으로 그렇게 등재도 되어 있죠. 그런데 그런 기록관리의 전통이 사실은 일제 식민지가 되면서 단절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된 이후에도 조선과 그 이전의 기록관리 전통이 복원되지 못했고요.

◇ 정관용> 왜 그랬을까요?

◆ 안병우> 그런 데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사실 좀 부족했다고 보고요. 왕조시대의 기록관리하고 근대 이후의 기록관리는 그 의미가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왕조시대의 기록관리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치자들을 위한 기록관리였다고 할 수 있고요.

◇ 정관용> 그렇죠. 다음 왕이나 그 사람들이 참고해라 이런 거죠?

◆ 안병우> 그렇죠. 그리고 신록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사료들을 모아서 편찬한, 가장 윗 등급에 속하는 그런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근대 이후의 기록관리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편찬된 기록물보다는 원래 생산된 기록물을 그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통치자뿐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그 기록의 주인이고 그 기록을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그런 개념으로 기록관리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기록관리의 전통이 전근대의 것을 계승하면서 근대의 것을 받아들여서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죠.

◇ 정관용> 오랜 군사정권 이런 것에 영향을 미쳤겠죠?

◆ 안병우> 그것은 이제 기록관리라고 하는 것이 한 국가나 사회의 발전 정도, 특히 민주화 정도하고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얼마만큼 투명하게 이루어지느냐. 또 정부가 국민에 대해서 얼마만큼 책임을 질 수 있느냐. 또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공무원들이 시민들에게 얼마만큼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느냐. 또 그런 책임이 있느냐에 따라서 기록을 생산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고. 또 생산했다고 하더라도 관리하기도 하고 그냥 폐기해 버리기도 하고 이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한 사회의 기록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하고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한마디로 말해서 국민들 앞에 떳떳하지 못한 뭘 하게 되면 아예 기록을 안 남기려 할 것이다.

◆ 안병우> 그렇죠.

◇ 정관용> 혹시 어디 남아있더라도 다 없애려할 것이고.

◆ 안병우> 그렇죠.

◇ 정관용> 금방 이해가 됩니다.

◆ 안병우> 그래서 우리나라의 기록이 그렇게 현대 들어와서 많이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주 불행한 일이죠.

◇ 정관용> 그러다가 2000년대가 되면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인식이 확산이 되고. 그게 그래서 참여정부 때에 이게 지금 대통령의 기록 관련된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 안 교수께서 그 참여정부 당시에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을 하셨던데. 국가기록관리위원회라는 게 만들어진 게 참여정부 때가 처음입니까?

◆ 안병우> 네. 그거는 처음 만들어진 것이고요. 그 국가기록관리위원회라고 하는 이제 일종의 회의체 기구인데요. 소속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되어 있고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만들어진 기구입니다. 여기에는 입법, 사법, 행정부 3부 뿐만이 아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까지 참여해서 그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기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하는 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책을 심의하고. 또 국가가 사용하는 표준을 정하고 그런 역할을 했고요. 그거하고 또 그 당시에는 별도로 대통령 기록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대통령기록관리위원회를.

◇ 정관용> 따로 뒀어요?

◆ 안병우> 따로 두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그 후에 그것은 법령이 고쳐지면서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산하의 한 분과위원회로 편성이 되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게 해서 거기서 대통령 기록 관련된 법률을 처음 만든 거죠?

◆ 안병우> 거기서 만든 건 아니고요. 대통령 기록을 관리하는 법은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라고 하는 명칭의 법률인데요. 그것은 2007년에 제정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만들게 된 것은 참여정부에서, 특히 노무현 대통령께서 기록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갖고 계셨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 정부기록보전소라고 하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행자부 산하의 중앙기록물 관리기관을 국가기록원으로 승격을 시키고 조직을 크게 확대를 해서 정부의 기록을 관리하는 중앙기록물 관리기관으로 위상을 잡게 했고요. 그 당시에 대통령의 자문기구였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라고 하는 그 위원회 산하에 기록물, 기록관리혁신전문위원회를 설치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에 그때 간사로 책임을 맡았었는데요.

◇ 정관용> 이거는 그러면 정권 초기부터?

◆ 안병우> 저희는 2004년도에.

◇ 정관용> 2004년.

◆ 안병우>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또 대통령 비서실에도 기록관리비서관실을 별도로 독립적으로 설치를 했죠. 그래서 이 정부혁신위원회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에 기록관리비서관실, 또 국가기록원 이 삼자가 모여서 이제 국가기록관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도록 사실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작업을 했고요. 그래서 1999년에 만들어진 기록물관리법을 전부 개정해서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그때 법을 개정하면서 국가기록관리위원회라고 하는 기구를 두게 되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대통령 관련 기록은 별도의 법으로 만들고.

◆ 안병우> 네. 그 법을 전부 개정할 때 대통령 기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놓고 사실 심도 있게 논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기록은 보통 다른 기관들이 생산하는 공공기록물하고는 여러 면에서 좀 차별성이 있습니다. 우선 기록을 생산하는 주체인 대통령이 정치인이고요. 그다음에 임기가 있고. 대통령 기록은 아주 민감한 여러 가지 사안들 외교, 국방, 안보, 경제 이런 내용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보존기간이나 보존방법 같은 것을 다른 공공기관이 생산한 기록물하고 같이 하기가 어렵고요. 그래서 하나의 법속에 넣으려고 하면 여러 가지 예외를 자꾸 만들어 놔야 돼서 법체계상으로 이게 어울리지 않고 맞지 않는 점이 있어서 별도의 입법을 추진을 한 것이고요.

◇ 정관용> 그리고 국가기록원도 대통령기록관을 따로 떼고?

◆ 안병우> 네, 그렇게.

◇ 정관용> 기관 상으로도.

◆ 안병우> 기관 상으로는 국가기록원 산하에 있지만.

◇ 정관용> 어쨌든 별도로.

◆ 안병우> 대통령기록관의 관장은 퇴임하는 대통령이 임명을 하게하고 임기를 5년으로 한다든가 이렇게 해서 그 자리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그런 제도들을 만들었고요. 저희들이 그런 것을 통해서 추진했던 기록관리 혁신의 목표는 이 기록관리가 정치적으로 좀 중립적인 위치에 서게 되고 또 독립성을 갖고 또 기관이 전문가들이 많이 참여해서 전문성을 증대시키는 그런 쪽으로 국가기록관리를 혁신하고자 그렇게 했던 것이고요.

◇ 정관용> 이 기록관리를 철학적으로 보면 핵심의 내용이 기록을 최대한 많이 남겨야 한다, 있는 그대로. 그다음 그것은 일반에게 공개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정기간 비밀을 지켜야 한다. 이게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겁니까?

◆ 안병우> (웃음) 기록을 남기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활용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활용할 수 없는 기록은 있으나마나한 것이고요. 그런데 활용을 하려고 하면 일단 기록이 있어야 되죠.

◇ 정관용> 네.

◆ 안병우> 현재 기록이 있으려고 하면 기록을 생산해야 되고. 생산된 기록을 잘 관리해서 남겨야 되는데. 특히 대통령 기록 같은 경우는 대단히 민감한 사항들. 예컨대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 그 기록이 공개되면 정치적으로 아주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될 수 있는 그런 기록들도 있거든요. 그런 기록들을 사실 어느 대통령이 잘 남기려고 하겠어요? 대통령이 특별한 의식을 갖고 이것은 내가 역사에 대해서 책임을 지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남긴다 하면 모르겠지만 그런 대통령의 어떤 자의적인 결정에만 맡길 수는 없기 때문에. 이 대통령 기록에 대해서는 특별히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런 판단을 했고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대통령 지정 기록물 제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들을 이때 연구를 했는데. 가장 비근하게는 미국의 제도를 참고를 했습니다. 미국에도 이와 같은 제도가 있고요. 미국에서도 역시 12년 동안, 그 12년이라고 하는 것은 미국의 대통령 임기가 4년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세 번 바뀐 후에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요. 그런 것을 우리가 원용을 해서 우리도 15년 한도 내에서 대통령이 지정하는 기록물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이 공개하고 보호라고 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 정관용> 그래도 일단 보호를 해야 생산이 될 것이다?

◆ 안병우> 네. 보호를 하는 장치를 강하게 만들어놔야 대통령 기록이 생산되고 보존될 것이다. 이렇게 판단을 해서 말하자면 할 수 없이 그런 제도를 만든 것이죠.

◇ 정관용> 그런데 지금 그 제도가 여야 합의에 의해서 어떻게 보자면 지금 들여다보여지고 있는 상태다?

◆ 안병우> 네.

◇ 정관용> 기록관리 전문가분들은 다 작금의 사태를 걱정하시고 개탄하시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단 그런 평가들을 보여주시던데. 하지만 일단 벌집은 건드려졌거든요. 앞으로라도 무엇무엇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거.

◆ 안병우> 지금 갑갑하고요. 사실은 좀 참담한 그런 심정입니다. 대통령 기록을 잘 남기기 위해서 그런 제도를 만들어놨는데 그 제도가 만들어지고 사실 2008년에 처음으로 대통령 기록물이 대통령기록관이 만들어지면서 이관이 됐거든요. 이관된 지 1년도 안 돼서 사실 뚜껑이 열렸습니다.

◇ 정관용> 그때 쌀 직불금 관련된?

◆ 안병우>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봉화로 대통령 기록을 복사해간 적이 있는데요. 그것을 대통령기록관으로 반납하면 검찰이 다 돌아왔는지를 확인하겠다 이러면서 열람을 한 거죠. 그리고 또 한 번은 그해 12월 달에 쌀 직불금 때문에 국회가 3분의 2의 의결을 해서 역시 한 번 열람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통령 기록법은 특히 지정기록물 제도는 만든 지 1년도 안 돼서 사실 뚜껑이 다 열린 셈입니다. 그 지정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말씀드린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거든요. 그런데 그 두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해서 이미 열어봤습니다.

◇ 정관용> 하나는 법원의 영장. 그리고 하나는 국회 3분의 2의 동의.

◆ 안병우> 국회 3분의 2 이상의 동의. 이번에는 세번째인데요. 그 두 번의 열람 결과, 저희들이 평가할 때는 국가적으로는 아무런 이득을 얻은 것이 없습니다. 역시 그때도 여야가 대립하는 바람에 국회가 관련된 회의록을 열어본 것인데요.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죠. 여야가 대립하면서 결국 대통령 지정 기록물을 포함한 대통령 기록물들을 열람하게 되었는데요. 일어나지 말아야 될 그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일단 아무튼 벌어졌습니다. 그럼 앞으로라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 안병우> 앞으로는 대통령 기록물을 다시는 열어보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되겠고요.

◇ 정관용> 일단 이번 건에 대해서. 앞으로 의원들이 17일날 다시 또 가서 목록을 다시 한 번 보고 오늘 본 게 조금 부족했나 봐요. 그래서 키워드를 더 주고 목록을 좀 더 본 다음에 이거 이거 이거라고 지정하면 두 부씩 복사해서 국회로 가져온다는 것 아닙니까? 그럼 국회의 폐쇄된 방 안에 들어가서 그걸 열심히 읽는다는 거고. 다른 건 못 들고 들어가지만 종이하고 펜은 가져갈 수 있다고 그러고 이러는데. 이거 어떻게 되느냐 그다음에 공개문제 이런 거 말이죠.

◆ 안병우> 지금 열람은 일단 최소한으로 해야 되는데요.

◇ 정관용> 일단 5명, 5명 가기로 했습니다.

◆ 안병우> 네. 국회가 추가로 검색어를 요구해서 아마 추가 자료를 요구하는 것으로 오늘 보도가 됐습니다. 그걸 보면 최소열람의 원칙도 사실 지키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우려스럽고요. 일단 예비열람을 통해서 열람대상 기록물을 확정한 후에 복사본을 만들어서 국회에서 열람을 하게 되겠죠. 거기에서는 엄중한 경비를 해야 할 것이고요. 어떤 경우에도 기록물의 내용이 유출되거나 누설되어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종이를 가지고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종이도 사실 안에 비치해 놓으면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종이로 가져갈 필요는 없다고 보고요. 거기에서 보고, 거기서 서로 회의를 해서 내용을 확정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거기서 뭔가를 메모해서 가지고 나오는 것은 안 되는 거다?

◆ 안병우> 그러지 않는 게 좋죠. 그렇게 하는 것은 안 됩니다. 거기서 열람을 하고난 후에 여야 합의해서 결과를 발표하기로, 운영위원회 보고를 통해서 발표하기로 그렇게 합의를 했는데요. 열람의 목적은 과연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느냐라고 하는 것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열람을 하면 되고요. 따라서 NLL 관련 부분만 열람을 하면 될 거고요. 열람한 결과를 놓고 여야가 협의를 해서 결론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결론지을 수 있을까요?

◆ 안병우> 모르죠. 그건 장담할 수 없겠지만 과연 포기 발언을 했는지 아닌지 그것은 했다, 안 했다 둘 중의 하나밖에는 답이 없는 거 아닙니까? 거기에서 합의를 해서 국회에서 보고를 할 때.

◇ 정관용> 합의가 안 되면요?

◆ 안병우> 포기를 했다 안 했다 보고를 해야 될 테고. 그런데 지금 우려하시는 것처럼 제 생각도 합의가 잘 안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합의가 안 되면 합의가 안 되었다고 발표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그냥 합의가 안 됐다?

◆ 안병우> 합의가 안 됐다.

◇ 정관용> 이러이러한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안 해도 좋다?

◆ 안병우>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합의가 안 되는 경우에 이런 내용들이 있었는데 이것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 합의가 안 됐다, 이렇게 얘기할 가능성이 있죠. 그런데 그 내용이 이미 밝혀진 대화록 이외의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합의가 안 됐다고 하는 사실을 보고하고. 그걸로 거기서 그치는 것이 제일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또 하나 열람을 통해서 확인을 해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은 제 생각에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대화록하고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이 가지고 있는 대화록이 완전히 일치하는지 그것은 확인해서 그 결과도 역시 발표해야 된다고 봅니다.

◇ 정관용> 국가정보원이 갖고 있다가 공개한 것과 같은 것이냐 아닌 것이냐. 같다, 다르다 여기까지만 일단 밝혀야 할 것이고. 양쪽이 읽어보니 그동안 논란이 됐던 이른바 포기발언 있었다, 없었다. 했다, 안 했다. 합의가 되면 합의된 사실, 합의 안 되면 합의 안됐다까지만. 이 가이드라인을 제발 정치권이 지켜줄 수 있을지.

◆ 안병우> 만약에 어느 당이든지 자기주장이 옳다고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내용을 공개하거나 먼저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 내용을 공개하면.

◇ 정관용> 알겠습니다. 우리 안병우 교수의 이야기를 정치권이 귀담아 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 특별히 초대했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안병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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