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본 한주간]"850억"..벤 버냉키, 양적완화라는 시지프스의 돌을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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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화원 미 연준의 말 한마디로 요동치는 세계 경제. 효과와 부작용?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밴 버냉키 의장의 기자회견 모습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공개한 유튜브 화면 캡쳐)

 

■ 방송 : FM 98.1 (06:10~07:00)
■ 진행 : 김윤주 앵커
■ 출연 : 미디어 오늘 이정환 기자

김윤주(앵커)> <좋은 아침="" 김윤줍니다=""> 토요일 첫 순서는<숫자로 본="" 한="" 주간="">입니다. 미디어 오늘 이정환 기잡니다. 이번 주의 숫자는 뭔가요.

“850억”.. 비둘기파 버냉키? 채권발행해 경기부양하는 양적완화..
사실상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겠다는 것인데.
경기가 안 좋으니 주가가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어져.

이> 850억달러.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달마다 사들이고 있는 채권 금액입니다. 지난달 19일, 이른바 버냉키 쇼크라는 게 있었죠. 올해 안에 양적완화를 축소하겠다고 밝혀서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이 폭락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일, 당분간 양적완화는 없다고 밝히자 다시 주가가 폭등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코스피 지수가 2.93%나 뛰어올랐죠.

김> 양적완화라는 말 많이 듣는데 감이 잘 안 오는데요. 간단히 설명 좀 해주시죠.

이> 중앙은행이 경기를 끌어올리려면 돈을 풀어야 하는데, 보통은 금리를 낮춰서 돈이 더 잘 돌게 만드는 방법을 씁니다. 그런데 금리를 낮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이 되면 정부가 직접 돈을 푸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윤전기를 돌려서 달러를 찍어내서 뿌릴 수도 없고 그래서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고 그걸 사들이는 방법을 씁니다. 채권이라는 게 빚을 낸다는 건데,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고 그걸 돈으로 바꿔주면 정부에 돈이 생기겠죠. 장부에는 정부 부채가 늘어나는 걸로 찍히지만 사실상 윤전기를 돌려서 돈을 찍는 거나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가 사들이고 있는 채권이 모기지담보부증권 400억 달러, 국채 450달러, 850억 달러나 됩니다. 우리 돈으로 95조6675억 원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은 1272조원.)

김> 계속 돈을 뿌려서 경제를 살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니까 출구전략 이야기가 나오는 거겠죠?

이> 돈을 계속 풀면 인플레이션과 자산거품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경기 침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죠. 지난달 19일 발언은 “올해 하반기 채권 매입 규모를 축소하고 내년 중반에는 완전 중단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11일 발언은 “미국 경기에 상당한 수준의 통화정책이 당분간 필요하다”는 내용이고요. 그런데 이게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당장 중단하지는 않겠다는 말인데 약간 조삼모사 같기도 하죠. 버냉키는 “미국 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 낙관한다”면서도 “6월 실업률 7.6%는 여전히 취약한 미국 고용시장의 상황을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경기가 안 좋아서 출구전략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건데, 경기가 안 좋다고 하니까 주가가 오르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 버냉키 의장이 매파인줄 알았더니 비둘기파더라, 그런 이야기도 나오네요.

이> 비둘기파(Doves)는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온건론자를 의미하고, 매파(Hawks)는 통화정책 기조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시스템 안정을 추구하는 급진적이고 강력한 강경론자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가 매파로 분류됩니다. 버냉키의 이번 발언은 나는 매파가 아니라 비둘기파다, 이런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버냉키는 처음부터 매파적인 신호를 보낸 적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건강해지면 링거 뽑겠다더니, 건강해지니 링거 뽑으면 죽는다고 하는 셈”

김>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하면 세계 경제가 무너진다, 그런 분위기네요.

이> 병원 가면 링고 맞잖아요? 건강해지면 뽑겠다고 했더니 뽑으면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는 꼴입니다. 결국 그저께는 “실업률이 목표치 6.5% 아래로 떨어져도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조금 더 건강해져도 계속 링거를 맞게 해주겠다는 거죠. 실업률이 경기 회복의 지표로 보고 있는 건데요. 이게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실제로는 고용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하다는 거죠.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야 한다.
3차 양적 완화...효과와 후유증은?

김> 지금이 3차 양적완화라고 하잖아요. 그동안 효과가 좀 있었나요?

이> 버냉키의 별명이 헬리콥터 밴입니다. FRB 의장이 되기 전부터 “디플레이션을 막으려면 돈을 헬기에서 뿌릴 만큼 과감한 통화확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던 사람인데요. 전임 앨런 그린스펀 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저돌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1조7000억달러의 은행 부채와 모기지담보부채권(MBS)를 사들입니다. 그래도 경기가 안 살아나니까 2010년 11월, 2차 양적완화를 시작해서 6000억달러의 국채를 더 사들입니다. 이와 별개로 유럽에서 재정위기가 확산되니까 FRB가 단기 국채를 장기 국채로 바꿔주는 이른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를 시행해 6670억달러를 또 뿌립니다. 그래도 안 살아나니까 3차 양적완화를 시작한 겁니다. 그게 지난해 9월입니다. 효과를 보자면 일단 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머징 마켓 나라들도 많이 올랐고요. 큰 위기도 넘겼고요. 연준은 미국 경제가 올해 2.4~2.6%, 내년에는 3~3.5%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목표입니다.

김> 문제는 후유증일 텐데요. 출구전략을 늦추는 게 맞을까요?

이> 문제는 이렇게 돈을 찍어서 뿌리면 달러화 가치가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 화폐가치는 평가절상되겠죠? 환율이 떨어지고요. 그러면 수출도 잘 안 되고 하니까, 다른 나라들도 앞다투어 돈을 뿌리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양적완화 경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결국 무시무시한 인플레이션이란 재앙을 맞게 될 것이란 경고도 나옵니다. 자산가격 거품도 우려됩니다. 거품은 언젠가는 빠지게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크게 뛴 건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 덩달아 빠지겠죠.

‘비밀화원’미국 연준, 말 한마디에 세계 경제가 요동치는 의장 자리.
그리스펀과 버냉키의 화법 차이 비교하기도..

김>버냉키의 말 한 마디에 이렇게 세계 경제가 요동을 치는 것도 놀라운데요.

이> 이랬다저랬다 말을 바꿔서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그린스펀하고도 비교되는데요. 그린스펀은 두루뭉술하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된 선문답 같은 발언으로 시장을 통제했습니다. 눈치를 보게 만든 거죠. 의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한 의원이 “무슨 얘기인지 잘 알겠다”고 투덜거리니까 “내 이야기를 이해했다면 내가 말을 잘못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반면 버냉키는 말이 너무 많아서 시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스타일입니다. 실제로 경기가 살아나면 양적완화를 축소할 수도 있다는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이죠. 당연히 시장에서는 양적완화 축소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원래 연준이 비밀의 사원'(secret temple)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버냉키는 소통을 강조하는 스타일인데, 소통이 늘 좋은 건 아니다, 그런 이야기도 나오고요.

김> 연준 의장은 말을 아껴야 된다, 그런 이야기가 되나요?

이> 21914년 연준 출범 이후 의장이 기자들 앞에서 회의 결과를 직접 설명한 것은 버냉키가 처음이었다고 하죠. 지금까지는 한 장짜리 입장을 발표하는 것으로 금리나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쳤는데, 버냉키는 직접 언론에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오해와 억측을 부르고 과민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시장은 똑똑하지만 참을성이 없어서 연준이 여지를 남겨둔 발언을 내놔도 직설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브레이크를 밟는 게 아니라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기 시작하는 거다”
마켓워치, 버냉키의 노력을 시지프스의 돌에 비유하기도.
양적 완화 확대와 축소를 거듭 반복..

김> 결국 한동안 돈을 더 쏟아 붓겠다는 건데 전망은 어떤가요.

이> 브레이크를 밟는 게 아니라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기 시작하는 거다, ‘테이퍼링(tapering)’과 ‘타이트닝(긴축tightening)’은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테이퍼링이라는 건 자산 매입 축소를 말합니다. 타이트닝은 본격적인 긴축이고요. 그렇지만 테이퍼링이 결국 타이트닝 아니냐는 관측이 많습니다. 말장난이고 부질없는 짓이라는 거죠. 마켓워치는 테이퍼링과 타이트닝을 구별하려는 버냉키 의장의 노력을 그리스 신화인 '시지프스의 돌'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3차 양적완화가 1년이 되는 오는 9월이면 양적완화 축소가 시작될 것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김> 뉴욕증시가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요.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분위기가 좋았죠?

이> 주가는 뛰고 환율은 내리고. 버냉키 쇼크에서 버냉키 효과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외국인들도 주식을 사기 시작했고요. 버냉키 발언이 있었던 11일, 원달러 환율이 1년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내렸습니다.

김> 한국은행도 마침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을 높여 잡았어요.

이> 네. 2.6%에서 2.8%로 끌어올렸습니다.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하기로 했고요. 그렇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미국 경제가 살아난 것도 아니고 여전히 경기 회복이 안 되고 있기 때문에 돈을 더 뿌리겠다는 정도입니다. 중국 경기 부진도 심상치 않고 위안화도 계속 절상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보다는 중국 영향이 더 크다고 하죠. 수출 전망도 불확실하고요. 주가가 오를 이유가 없는데 오른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미국 보다는 중국이 더 중요한 변수다, 그런 지적도 나옵니다.

김> 결국 출구전략은 불가피할 거다, 버냉키 발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될까요.

이>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 그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출구전략 시기 자체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출구전략은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시행될 것으로 예상됐던 절차라는 거죠.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장기적 관점으로 준비하는 것이 맞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출구전략의 방향이 정해지고 시기 조절만 남은 만큼 작은 메시지에도 시장이 일희일비하는 불안한 상황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김> 앞으로 전망은 어떻게 되나요.

이> 일단 연말이 되면 출구전략이 가시화될 거라고 봐야 합니다. 실업률이 6.5%까지 떨어질 때까지 경기부양을 하겠다는고 했죠. 이게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양적완화는 축소가 되더라도 저금리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자산 버블 가능성도 우려되고요. 펀더멘털이 확실하게 개선될 때까지는 무리한 모험 투자를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보수적 접근이 좋고 저가매수보다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할 때라는 지적은 이번 버냉키 발언 이후에도 유효할 것 같습니다.

김> 숫자로 본 한 주간. 이번주의 숫자는 850억달러,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의 양적완화 유지 발언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국내 투자 전망까지 살펴봤습니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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