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채 남편이 일제에 강제징집돼 행방불명된 뒤에도 수십년동안 결혼생활을 계속 이어갔다면 아내에게 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1944년 4월 정모씨는 이모씨와 결혼해 경북 예천군의 이씨 본가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도 잠시였다. 결혼 3개월여 뒤, 이씨는 일제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 지역에 강제동원됐고 이내 행방불명됐다.
홀로 남은 정씨는 시댁에서 계속 살면서 20여년동안 중풍에 걸린 시어머니의 병간호를 도맡았다. 남편 이씨의 집안에서는 정씨의 공을 기리기 위해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정씨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묘비에도 며느리로 이름을 올렸고, 시아버지로부터 부동산도 일부 이전받는 등 이씨의 부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2011년 정씨는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씨의 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보상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위로금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는 "희생자지원법에 따라 이씨가 국외강제동원 희생자는 맞지만, 이씨가 행방불명 되기 전 정씨와 혼인한 사실이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정씨는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법원은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는 정모씨가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를 상대로 낸 위로금 등 지급신청 기각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강제동원 희생자들이 생겨난 그 당시에는 법률혼주의가 채택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위안부 동원 등을 피하기 위해 긴박하게 결혼이 이뤄지거나 이씨와 같이 결혼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제동원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CBS노컷뉴스 박초롱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