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편법세습, 이번엔 제동 걸릴까…공정위 업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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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조항 신설, 대기업 조사 전담조직도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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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 비상장회사인 삼성 SDS는 긴급자금 조달 명목으로 230억 원 상당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321만6천738주 전체가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등 총수 자녀와 삼성그룹 임원이던 이학수, 김인주 등 모두 6명에게 주당 7천150원에 배정됐다.

그 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주인수권부 사채의 정상가격은 1만4천536원인데,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이를 매입하도록 해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158억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4년 9월, 주식을 매입한 특수관계인들이 거래분야의 시장에 소속된 사업자가 아니고, 공정거래 저해성도 없다는 이유로 부당지원 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부당지원의 요건으로 ''''현저히 유리한 조건''''과 ''''공정거래 저해성'''' 두 가지를 만족해야 하는 공정거래법 23조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지난 2001년 5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현대 글로비스는 23일 현재 시가총액이 6조4875억원에 달한다.

현대기아차는 물론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계열사들이 일감을 대거 몰아주면서 급성장했다. 설립 당시 20억원을 투자한 정의선 부회장은 현재 글로비스 지분의 31.88%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주식가치로 환산하면 2조원이 넘는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 이를 부당 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로 보고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에 모두 63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대 측은 소송을 제기했고, 판결은 5년이 지난 2012년 11월에야 확정됐다. 과징금 규모도 485억원으로 깎였다. 거래가 ''''현저히'''' 부당하다는 점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반증한다.

게다가 비슷하게 정의선 부회장을 포함한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면서, 현대기아차의 광고물량을 도맡은 이노션의 경우는 공정위가 손을 대지 못했다. 광고대행업무의 경우 정상가격의 산정이 어려워 일감 몰아주기가 ''''현저히 부당''''한지 여부를 판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그동안 손 못 댄 사익편취 행위도 규제''''

공정위는 24일 업무보고를 통해 그동안 제대로 손대지 못했던 대기업 총수 일가의 편법 증여 등 사익편취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일단 공정거래법에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규제하는 조항(11조의 5)을 신설하는 방안을 국회 정무위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

신설 조항은 ①삼성SDS 주식 헐값 배정 같은 ''''총수일가 개인에 대한 지원'''', ②현대 이노션의 사례처럼 ''''정상가격 산정이 곤란한 순수 일감몰아주기'''', 또 ③사업부서나 자회사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총수일가 소유의 회사에 맡기는 ''''사업기회 유용 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위 한철수 사무처장은 ''''(신설조항은) 일감 몰아주기 그 자체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을 통한 일감 몰아주기로 총수일가에게 부당한 이득이 돌아갔을 때 규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부당 내부거래를 금지한 기존의 공정거래법 23조 규정도 위법성 성립요건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또 거래 중간에 필요없는 특수관계인이나 계열사를 억지로 끼워 넣어 수수료를 취하도록 하는 이른바 ''''통행세 관행''''도 부당 내부거래 유형에 추가된다.

공정위는 내부거래의 지원 객체에게도 부당지원을 받지 않을 의무를 신설하고, 이를 위반하면 제재하는 조항도 만들기로 했다.

◇신규순환출자 금지, 대기업 전담조사 조직도 신설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대기업 집단을 지배하는 순환출자구조 해소를 위한 대책도 강화된다.

공정위는 법 개정을 통해 일단 신규 순환출자는 원천 금지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예를 들어 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취득해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차 그룹의 경영권을 세습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총수 3~4세에 대한 상속과정에서 순환출자를 활용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비금융계열사의 주식을 보유한 금융.보험사는 해당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이 총수일가 등 특수관계인과 합해 15%로 제한된다. 여기에 금융계열사 자체로 행사할 수 있는 지분율 상한은 첫 해에 10%로 설정했다가 해마다 1%p씩 인하해 5%까지 내린다는 것이 공정위의 복안이다.

대기업 집단이 금융보험사의 고객자금을 활용해 지배력을 확장하는 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의 주식을 가진 금융계열사가 의결권 행사 가능한 지분율은 특수관계인과 합해 최종 13.93%까지 감소하게 된다. 호텔신라의 경우는 10.24%까지 떨어진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대기업 집단을 감시, 조사할 전담조직을 신설할 예정이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등 관련 규정이 신설되거나 강화돼도 이를 집행할 조직과 인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실효성을 잃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노대래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은 유능한 법률가와 연구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비해 공정위는 이 분야가 취약하다''''며 ''''연구인력과 조직을 정비해서 시장감시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재벌 대기업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은 오는 6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거쳐, 오는 12월 공정거래법 시행령까지 개정되면 본격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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